IBK 컬쳐

그곳에 가면(해외)

‘알록달록’
운하로 치장된 섬마을

이탈리아 부라노

글 · 사진 서영진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바다 위를 부유하는 도시’다.
권력과 예술을 향유했던 ‘물의 도시’는 파스텔톤의 아늑한 뒷모습을 지녔다.
여행자들의 로망인 운하와 미로는 부라노 등 인근 섬에서 빛을 발한다.

  • #이탈리아
  • #부라노
  • #물의도시
부라노에는 운하와 고깃배, 파스텔톤 가옥이 가지런하게 공존한다.

파스텔톤 가옥의 ‘작은 베네치아’

부라노에서는 잠시 길을 잃어도 행복하다. 자줏빛 골목을 서성이며 섬 주민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거나, 형형색색의 담장과 발코니에 취해도 좋다. 광장 노천 식당에는 섬 어부들이 직접 잡은 생선을 곁들인 리소토가 식탁에 오른다. 아드리아해의 햇살과 훈풍은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지럽힌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작은 섬과 177개의 운하로 이뤄진 물의 고장이다. 나무 말뚝이 박힌 아드리아해의 뱃길은 부라노, 토르첼로, 리도, 무라노 등 북쪽 작은 섬들로 낯선 여행을 이끈다. 베네치아를 찬미한 헤밍웨이는 이곳 섬들에 머물며 <강을 건너 숲으로>라는 소설을 썼다.

베네치아를 분주하게 가르는 수상버스 바포레토는 부라노까지 단숨에 닿지 않는다. 인근 섬들을 경유해 느리게 다가선다. 부라노에서 호흡이 한 템포 느리고, 게으름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화려한 베네치아와의 ‘간극’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듯 닮은 부라노는 ‘작은 베네치아’로 사랑받는다.

부라노의 골목에는 어촌마을의 일상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운하들은 동화 같은 지붕과 담장을 무지갯빛으로 투영한다. ‘부라넬리’로 불리는 섬 주민들은 본업이 고기잡이이고, 알록달록한 선박들은 삶에 주된 버팀목이다.

담장과 집 앞에 늘어선 고깃배들은 사이좋게 색을 맞춘다. 안개 속에서 조업을 끝낸 뒤 각자의 집을 찾기 위해 예전부터 집마다 색을 달리했다고 전해진다. 최근에는 관청과 상의해 담장의 색을 정하고 비용을 지원받아 담장을 칠하고 있다. 핑크, 연두, 민트빛 가옥은 부라노섬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미국의 디즈니월드는 부라노 섬을 디즈니월드 패밀리 리조트의 모델로 삼았고, 가수 아이유도 뮤직비디오를 담기 위해 부라노를 찾았다고 한다.

부라노 출신 작곡가의 이름을 딴 ‘발다사레 갈루피’ 광장

레이스 수공예로 명성 떨친 어촌

부라노는 여러 섬마을이 운하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섬 선착장에 도착하면 이곳 출신 조각가인 레미지오 바르바로의 조각작품 뒤로 녹색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산 마우로 길목을 따라 레이스 상점 등 기념품 가게들이 빼곡하게 마중에 나선다.

무라노섬이 유리공예로 유명해졌듯, 부라노는 레이스 수공예로 세상에 알려졌다. 남편이 바다에 나서면, 부인이 남아 레이스를 뜨며 시간을 보냈다. 평범한 어촌마을은 16세기 이후 정교한 레이스 공예품으로 이탈리아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이면에는 레이스에 몰두해 시력을 잃은 여인들의 아픈 사연도 담겨 있다. 19세기 후반 레이스 학교가 들어섰던 자리에는 레이스 박물관이 남았고, 대량 공산품에 자리를 내준 뒤 일부 수공예 레이스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섬의 수로들은 중심가인 발다사레 갈루피 광장에 집결한다. 광장 이름은 부라노 출신의 작곡가 이름을 따서 지었다. 갈루피 동상과 돌로 만든 우물, 노천 카페의 여행자들이 오후 햇살 속에 한가롭게 어우러진다.

광장 뒤 산 마르티노 성당은 부라노섬의 주요 이정표다. 종탑은 한쪽으로 슬며시 기울어져 있다. 성당 주변에 미로처럼 늘어선 부라노의 집들은 창문, 문고리 장식이 제각각이다. 발코니에는 흰 빨래가 휘날리고, 화분을 손질하는 주민들은 이방인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눈다.

부라노에서 나무다리를 건너면 와인 산지인 마초르보로 연결된다. 인근 토르 첼로섬은 헤밍웨이가 오리 사냥에 나선 곳이다. 베네치아 영화제로 유명한 리도섬이나 유리공예로 알려진 무라노섬도 오가는 뱃길에 만날 수 있다. 리도섬은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배경이 됐다. 섬 안의 가옥들은 고급스럽고, 매년 늦여름이면 베네치아 국제영화제로 들썩거린다.

베네치아의 명소들이 새겨진 다양한 가면들

예술가의 숨결 깃든 ‘물의 도시’

섬 사이를 가르던 바포레토는 베네치아의 싼마르코 광장 앞 선착장에 안착한다. 베네치아는 예로부터 ‘세상의 다른 곳’이라는 의미인 ‘알테르 문디(Alter mundi)’라 불렸고, 예술가들에게는 오랜 안식처였다. 작곡가 비발디는 싼마르코 대성당에서 이발사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광장 한편에는 바이런, 카사노바 등 명사들이 단골로 방문했던 카페가 성업 중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명성에는 예술적 자산들이 큰 자양분이었다. 샤갈, 달리, 칸딘스키 등의 작품이 전시 중인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목조다리 건너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조르조네, 티치아노, 틴토렌토 등 화려한 빛과 색채를 구현한 베네치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그림이 전시돼 있다.

중앙 운하인 캐널 그란데는 베네치아를 ‘S자’로 가로지른다. 베네치아 최초의 석조교각인 리알토 다리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네치아의 상인>에 등장한다. 리알토 다리 건축에는 미켈란젤로가 응모하기도 했다. 리알토 주변은 곤돌라 탑승장과 어시장이 들어서 제법 북적한 풍경이다.

일몰쯤에는 두칼레 궁전 건너편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풍광이 아름답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는 베네치아로 망명해 이곳에 은신했다. 성당에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르네상스가 함께 투영돼 있다.

노천 식당이 어우러진 부라노의 골목
섬 주민들의 개성이 묻어나는 문과 창문
선착장 옆, 레미지오 바르바로의 조각작품

발코니에는 흰 빨래가 휘날리고, 화분을 손질하는 부라노 주민들은 이방인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눈다.

싼마르코 광장의 대성당과 두깔레 궁전

  • Tip부라노섬 가이드

베네치아의 섬들을 오가는 대표 교통수단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다. 수상버스는 별도의 노선과 번호가 있으며 섬 전역을 연결한다. 부라노까지는 버스터미널인 로마 광장이나 싼마르코 광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무라노섬에서 내린 뒤 환승한다. 산타루치아역 등에서 부라노까지 직행하는 보트도 있다.

생선이 곁들여진 리소토와 부라노에서 직접 만든 쿠키가 명물이다. 광장에서는 오징어 먹물 파스타나 계란 노른자가 들어간 까르보나라를 파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본섬이나 토르첼로에 숙소를 두고 부라노까지 반나절 여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섬 안의 호텔들은 성수기에는 숙소 예약이 일찍 마감된다. 최근 베네치아, 부라노 등을 당일 방문할 때는 1인당 5유로의 관광세를 지불해야 한다.

RELATED CONTENTS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