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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을 필두로
영양까지 챙기는
가공식품의 빛나는 진화

글 ·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에 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간다. 이러한 ‘건강’에 대한 관심은 ‘가공식품’ 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법. 건강까지 챙기는 똑똑한 가공식품들의 빛나는 진화가 시작되고 있다. 2024년 글로벌 식음료 시장을 이끄는 가공식품 트렌드에 대해 살펴보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급부상한 가공식품 시장

지난 몇 년간 엄격한 거리두기를 실시하면서 외식은 줄이고 집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 사항이었던 만큼 모두가 철저히 ‘집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디 세 끼를 직접 해먹기란 쉬운 일이던가. 그러면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에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일만 하며 몸을 혹사시키는 시대는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워라밸’을 삶의 최우선 요소로 두는 만큼 꼼꼼하게 건강을 챙긴다. 그렇기에 가공식품도 더 이상 편리하기만 해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소비자들은 기왕이면 ‘덜 가공된’ 식품을 찾는다.







‘덜’ 가공해야 주목받는 최신 트렌드

가공식품이 주는 거부감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 몸에 이로운 영양성분이 손실되는 무분별한 가공 과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공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기업들이 가공의 정도를 단계별로 분류하여 판매한다면 소비자들은 개인의 기호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진들이 개발한 ‘노바 식품분류법(NOVA Food Classification)’에 따르면 식품의 가공 정도에 따라 4개의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1그룹’은 가공을 거의 거치지 않은 신선식품, ‘2그룹’은 설탕, 소금과 같이 신선식품이나 자연에서 추출한 원료, ‘3그룹’은 1그룹 식품에 2그룹 원료를 첨가한 단순 가공식품을 말한다. 마지막 ‘4그룹’이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으로 방부제, 착색료, 인공 감미료 및 향료와 같은 화학적 첨가물이 첨가된 식품이다. 우리가 흔히 과다 섭취를 주의하는 음식들로 탄산음료, 사탕, 쿠키, 햄버거, 피자, 아이스크림 등이 있다. 이러한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비만, 심장병 등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음식을 우리 삶에서 완벽히 배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그나마 ‘덜 가공된’ 식품을 찾으며 음식을 먹는 만족과 건강의 밸런스를 잡아가려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식품업계에서는 가공 과정에서 손실되는 영양성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발 중이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가공 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첨가물의 개수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영양성분을 지키면서도 원재료본연의 맛과 풍미를 그대로 살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한 폐기물이 적게 나와 자연환경 보호에도 이롭다는 것은 덤이다. 두 번째는, 가공 과정에서 급속 냉동을 하여 영양 손실을 막는 방법이다. 특히 채소의 경우 신선한 상태에서 수확 후 급속 냉동시키면 천연 미네랄과 영양소가 그대로 보존되는 효과가 있다. 이 외에도 식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낮은 온도, 짧은 가공 시간, 공기와 빛에 대한 최소한의 노출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가공식품도 더 이상 편리하기만 해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소비자들은 기왕이면 ‘덜 가공된’ 식품을 찾는다.





버려진 음식물에 새로운 가치를 입히는 ‘업사이클링 푸드’

상처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이나 양조 후에 남은 곡물 찌꺼기 등 버려진 음식들이 주목받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들을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식품으로 바꾸는 ‘푸드 업사이클링’ 트렌드는 최근 글로벌 식음료 시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2년 약 520억 달러였던 글로벌 푸드 업사이클링 시장이 2032년에는 8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환경 보호’가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ESG 경영 활동을 강조하고 동시에 친환경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업사이클링 푸드 또한 식품 시장에서 각광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일명 못난이 채소는 형태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바삭한 칩으로 만들고, 못난이 과일은 수제 잼이나 마멀레이드로 만들어 디저트에 날개를 달아준다. 해외의 한 기업은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오카라(Okara)를 넣어 만든 두부 스크램블 제품을 생산했다. 또한 요구르트 제조공정에서 나오는 유청을 활용한 음료를 개발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건강뿐 아니라 환경 보호를 통한 심리적 만족까지 챙기고 있다.






‘정밀발효’ 기술과 ‘개인별 맞춤’ 서비스

‘정밀발효’ 기술은 미생물을 임의로 조정하여 특정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최근 가공식품 분야에서 떠오르고 있는 트렌드이다. 정밀발효 기술을 적용한 신상품들이 하나둘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아직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이기에 생소한 영역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미국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정밀 발효를 이용해 만든 식품에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트만 그룹(Hartman Group)이 미국 식품기업인 카길 (Cargill) 및 미국 생명공학기업인 퍼펙트 데이(Perfect Day)와 협력하여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정밀 발효 기술을 잘 모르는 상태더라도 41%는 제품을 구매할 의향을 보였다. 또한 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접한 뒤에는 80%가 구매 의향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앞으로의 가공식품 시장에서 정밀발효 기술이 차지할 영역이 상당할 것이란 결과를 추측할 수 있다.
‘퍼펙트데이(Perfect Day)’는 정밀발효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최근에는 정밀발효기술을 통해 젖소를 키우는 과정 없이 우유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원래 우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젖소를 키워야 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정밀발효 기술을 활용한 무동물성 유제품 성분을 사용하면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대체 식품으로서의 퀄리티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정확히 동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정밀발효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계란, 유제품 또는 감미료와 같은 제품은 일반 제품과 동일한 단백질,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고도의 기술 발달이 적용된 가공식품은 맛과 건강을 넘어서 환경 윤리 부분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가까운 미래에는 개인의 영양상태에 따라 적절한 가공식품을 골라주는 서비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개인별 유전자(DNA)를 분석하고 적합한 식품을 추천해주는 유전자 분석 기업이 등장했다. 식료품 시장에서 판매하는 약 50만 개의 식품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에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건강 상태에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준다.
소비자가 가정용 키트를 통해 DNA 검사를 받으면 모바일 앱에 당뇨나 심장병 등의 질환 위험도가 분석된다. 식품을 구매할 때 이 앱이나 손목 밴드를 이용해 상품 바코드를 스캔하면 소비자의 건강 상태를 분석하여 ‘적합’ 또는 ‘부적합’ 표시가 뜬다. 이를 통해 개인별로 맞춤 식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 편히 가공식품을 섭취할 수 있다. 가공식품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발상은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되어가는 중이다. 시대별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최근의 가공식품을 보면 그야말로 ’완전체‘에 가까워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2024년 글로벌 식음료산업을 형성할 3가지 트렌드로 Trust Process, Age Reframed, Eating, Optimised 세 가지 이슈가 거론됐다고 한다. ‘Trust Process’는 가공 과정과 성분 표시를 포함한 생산 과정의 투명성을 의미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투명한 의사소통은 소비자가 본인에게 적합한 가공식품을 구매할 때 꼭 필요한 고려 사항이 될 것이다. ‘Age Reframed’ 는 나이에 대한 재정립으로 건강한 노화를 위한 총체적인 개념이 이전과는 달라질 것을 의미한다. 특히 40세 이상의 소비자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시장의 식음료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식품 기업이 판매 전략을 세울 때 기성세대를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Eating, Optimised’는 AI와 같은 기술 적용으로 요리를 간소화 시키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본능과 함께 ‘편의성’은 항상 진화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건강한 음식을 향한 지름길을 찾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기에 가공식품의 시장 또한 첨단 기술의 영향을 받아 더욱 편리하고 고도로 똑똑한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Profile.
글. 이주현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강사, 요리 연구가로서 기고자, 심사위원,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 인문학>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