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노후준비는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투자의 구루(Guru)에게서
배우다

글 ·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엔데믹 시대의 실질적인 첫해를 맞은지도 한 달이 넘었다. 올해도 기후변화 등과 같은 디스토피아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가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으로 바뀔 기류가 어떻게 될 것 인지가 2024년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투자의 구루라고 불리는 부자들을 통해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에 대해 알아본다.




버핏은 ‘디리스킹’으로 소로스는 ‘디커플링’으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의 실체는 게임이론을 통해 보면 명확해진다. 각국 간 관계를 조명할 때 자주 활용되는 이 이론은 참가국 간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게임’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섀플리-로스식 게임’으로 나뉜다. 디커플링은 이기적 게임인 전자에, 디리스킹은 공생적 게임인 후자에 해당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모두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를 꿈꾼다. 그만큼 세계 금융권에서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관점에서 보면 버핏과 소로스의 삶은 확연하게 구별된다. 버핏은 ‘디리스킹’으로 소로스는 ‘디커플링’으로 부자가 됐지만 세상의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이 양대 투자 구루는 정확히 얼마를 갖고 있는가 알려진 것이 없다. 특히 소로스의 경우가 더 그렇다. 분명한 것은 기업경영을 통해 돈을 번 사람을 제외하고는 돈을 굴려 부자가 된 전형적인 재테크형 부자 가운데에서는 두 사람이 쌍두마차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두 투자 구루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버핏은 ‘오마현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거부반응이 없다. 마치 ‘이웃 아저씨’와 같은 인상을 풍긴다. 반면 소로스는 ‘냉혈 인간’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모든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 국민에게는 부정적인 인상이 더 강했다. 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왜 이렇게 다른 평가가 나오는 걸까. 단순히 수퍼-리치(Super-Rich)라는 점 이외에도 두 구루가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기에 이 두 투자 구루를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두 투자 구루가 걸어온 길

무엇보다 두 투자 구루가 걸어온 길부터 다르다. 버핏은 부모로부터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어릴 적부터 배웠다. 소위 몸에 밴 체화된 부자다. 이에 반해 소로스는 성장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 초에 유럽 지역을 커다란 혼란에 빠트렸던 통화 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로부터다.
추구하는 돈에 대한 관념도 다르다. 버핏은 부모 세대로부터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 돈을 벌거나 쓰는 데 있어서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반면 소로스는 돈이 주는 다양한 이점보다 돈 그 자체만을 버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달러화로 푹 둘러싸인 소로스의 웃는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돈에 대한 개념은 일상생활이나 투자 방법, 부자가 된 이후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버핏은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오래된 뿔테 안경과 20년 이상 된 캠리 자동차, 오마현의 작은 집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검소하다’는 말 그 자체다. 얼마를 버는 것보다 얼마를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소로스도 일상생활에서 검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버핏과 다른 점이다. 투기적인 성향이 높은 투자 구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돈에 대한 개념은 돈을 버는 방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돈에 대해 여유가 있는 버핏은 돈을 버는데 조급해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인 방법은 가능한 한 피한다. 그렇기에 단기적인 투기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때그때 시장 흐름보다 큰 추세만을 중시하기에 투자에 따른 비용과 피로도 함께 줄어든다.
같은 맥락에서 우량 종목은 언젠가는 시장에서 평가받는다는 소위 가치투자가 가능해진다. 지금은 낮게 평가되고 있지만 이를 사서 오랫동안 보유할 경우, 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가치투자의 원칙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증시의 큰 축이 되고 있다. 이 원칙을 지킬 경우, 시장을 교란하지 않으면서 예상할 수 있고 투명성이 확보되는 투자 문화와 기업에는 정도경영(正道經營)을 촉진시키는 장점도 따른다.
반면 소로스는 상당히 다르다. 장기적인 투자보다 초단기적인 투기를 더 선호한다. 소로스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 경우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주식과 각국의 통화를 사고판 적이 많았다. 특히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환과 같은 시장일수록 이런 투기행위를 즐긴다. 투기행위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장에 순응하기보다 시장을 교란시켜야 한다. 또 조금이라도 틈이 있고 비정상적인 흐름이 나타날 때 이것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소로스가 운용하는 타이거 펀드와 퀀텀 펀드는 시장의 주도력을 십분 활용해서 1990년대 초반의 유럽통화와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통화를 실제 여건보다 심하게 흔들어 놓으면서 궁극적으로는 위기로 몰아넣었다. 물론 시장을 쉽게 흔들어 놓기 위해서는 고도의 금융기법이 요구된다. 1990년대에 타이거 펀드와 퀀텀 펀드가 사용했던 파생 금융 기법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소로스가 다양한 파생 기법 등을 통해 세계 금융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국가와 투자자들의 희생이 뒤따르고 금융시스템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떨어뜨린 부정적인 평가도 긍정적인 평가에 못지않다. 대표적으로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민이 당한 고충을 생각하면 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확연하게 알수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전적으로 소로스의 책임은 아니지만 아시아 국민이 당한 피해액은 당시 한해 전 세계 국민이 만들어 내는 소득(GDP)과 맞먹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짐작이 간다.
부자가 된 이후에도 이 두 투자 구루의 걷는 방향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2006년에 버핏은 평생 번 돈의 4분의 3을 사회에 환원해 ‘오마현의 달인’과 함께 ‘박애주의자’라는 칭송을 함께 받았다. 그것도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재단보다는 빌 게이츠가 운용하는 재단에 기부했다. 세금을 회피하거나 보다 큰돈을 벌기 위한 ‘나쁜 기부’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순수한 ‘착한 기부’다자녀들에 대한 상속도 인색하다.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 이외에는 상속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상속은 자녀들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오히려 2007년 11월에 열렸던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상속세 등은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또 한 번 미국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반면 소로스는 아직 이 점에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다. 심지어는 자녀들이 정확하게 몇 명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바라건대 나중에 인류 공영 차원에서 갖고 있는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면 좋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잇따른 투자 실패로 재산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관점에서 보면 버핏과 소로스의 삶은 확연하게 구별된다.
버핏은 ‘디리스킹’으로 소로스는 ‘디커플링’으로 부자가 됐지만 세상의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명확한 결과, 어떤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모든 것들이 똑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두 투자 구루에 대한 평가가 다른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버핏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그의 말 한마디와 행선지, 보유 종목 등은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면 버핏은 ‘세계 투자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소로스는 어떤가. 한 마디로 갈수록 영향력이 줄고 있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최근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의회 등이 정책적으로 조언을 구하고자 부르는 경우는 없다. 국내 출판업계에서조차도 버핏과 관련된 책들은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으나 소로스와 관련된 책자는 이제는 거의 없다. 한국 부자들은 버핏을 따르려는 사람이 많다. 미·중 관계가 디커플링으로 계속되면 결과는 양국이 파멸로 끝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디리스킹 전략으로 간다면 양국은 경제패권 다툼을 지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발전되고 세계 경제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버핏과 소로스의 삶에서도 그대로 보여줬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숨 쉴 틈도 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전략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명확하다. 어떤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Profile.
글. 한상춘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겸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는 한국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선임연구원,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겸 국제경제팀장,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경제패널, 미국 와튼계량경제연구소 한국 측 자문위원, 중국 연변시 해외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 한국경제TV 월가 특파원 등을 거치면서 국제금융 전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UR과 한국 경제≫, ≪또 다른 10년이 온다≫, ≪2만회 통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