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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적립형 퇴직연금의 필요성

글 ·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됐다. 이들의 은퇴와 함께 현재 인구 고령화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봤을 때 연금 시장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필요가 있다. 은퇴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baby boom generation)를 어디까지로 보는지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넓게 보면, 한국전쟁이 끝나고 출생아 수가 급증한 1955년부터 1974년생을 일컬을 수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가 넘쳐났다. 이에 정부는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펼쳤고 1964년부터 출생아 급증이 꺾였다. 그래도 1968년 이후 다시 출생아 수가 증가하고 1971년에 정점에 달했다. 1971년에 태어난 아이가 무려 102만 명이다. 2022년 출생아 24만 9천 명의 4배가 넘는다. 1974년부터 점차 출생아 수가 감소하였지만,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출생아는 매년 줄곧 90만 명을 넘었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 동안 태어난 아이 수를 합하면 총 2,002만 명이다. 1955년에 한국의 총인구는 2,100만 명에 불과했다. 이 2,100만 명이 20년 동안 아이 2,002만 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 5,200만 명이 아기 울음소리도 듣기 힘든 요즘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1955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이 2,002만 명이 이제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1955년에 태어난 아기는 벌써 69세, 1959년생은 65세가 되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15년이 지나면 이 거대한 2,002만 명이 모두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 이 노인들을 한 해 30만 명 이하로 태어난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한다.


<그림 1>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자와 연금수급자 수 추이

출처: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2023.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재정추계 시산 결과”




인구 고령화에 취약한 연금 부과방식

인구 고령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공적연금(국민연금,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같은 특수직역연금)은 모두 인구 고령화에 취약한 부과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부과방식(PAYG, pay-as-you-go)은 현 노동 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세금으로 은퇴자들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세대 간 소득 이전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행히 국민연금에는 베이비부머들이 축적해 놓은 기금이 존재한다. 2022년 말 현재, 1,000조 원이 쌓여 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다 쌓아 놓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베이비부머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2041년에 정점을 찍은 기금은 불과 14년 만인 2055년에 눈 녹듯이다 사라지게 된다. 기금이 존재할 때는 보험료 수입과 기금에서 인출한 돈을 더해 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기금이 없어진 다음에는 보험료 수입만으로 약속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보험료율을 부과방식비용률 혹은 필요보험율이라 부른다. 이 필요보험율이 2080년에는 35%가 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세금은 차지하고 인구 고령화 때문에 기초연금과 건강보험료도 오를 수밖에 없는데, 국민연금 보험료만으로 35%를 낼 수 있을까?





평균 수명 증가로 은퇴 이후 삶은 늘어만 가는 데,
연금을 깎아 버리면 노인들은 도대체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




일찌감치 대처한 서구의 연금 제도

사실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같은 부과방식 연금제도는 서구에서 생산인구가 늘고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시절에 도입된 제도다. 보험료나 세금을 납부하는 인구가 증가할 때는 제도 부양비가 줄어든다. 보험료 내줄 사람이 연금 받는 사람보다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소득 증가가 동반되면, 같은 보험료율이라도 보험료 납부액은 늘어난다. 국가의 보험료 수입이 덩달아 늘어나는 것이다. 과거처럼 1년에 신생아가 100만 명씩 태어나고 경제성장률이 10%에 달하는 시대라면, 세대 간 소득 이전의 부과방식 연금은 멋진 제도다. 낮은 보험료율로 넉넉한 연금을 지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우리보다 10년 앞선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베이비붐을 겪었다. 따라서 서구 복지국가들은,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연금 재정문제를 일찌감치 경험하고 나름 개혁을 통해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서구에서도 근로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연금 보험료가 계속 올랐다. 그리고 그 끝을 모르고 계속 인상되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되자, ‘보험료 폭탄’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발이 확산되었다. 정치적 반발이 아니더라도, 너무 높은 연금보험료는 근로의욕에도 또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연금 보험료 인상에 상한을 두기 시작했다. 1999년 스웨덴이 소득의 18.5%로 연금 보험료에 상한을 두었다. 독일은 22% 그리고 일본은 18.3%로 그 뒤를 따랐다.
연금 수급자는 늘어만 가는 데, 보험료율에 상한을 설정해 버리면, 보험료 수입이 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연금 급여액을 삭감하여 지출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연금액이 자동 삭감되도록 연금 개혁을 하고 있다. 이를 자동안정화 장치의 도입이라 한다. 고령화율에 따라 자동으로 소득대체율을 낮추든가 아니면 연금개시연령을 인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균수명 증가로 은퇴 이후 삶은 늘어만 가는 데, 연금을 깎아 버리면 노인들은 도대체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






인구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적립형 연금

이에 대해서는 인구 고령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적립형’ 연금을 키워서 대처하고 있다. 스웨덴은 프리미엄 연금이라는 적립형 연금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운영한다. 독일은 보조금을 지급해 리스터연금이라는 적립형 연금 가입을 유인하고 있다. 또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같은 나라들은 우리의 퇴직연금 같은 기업연금을 의무화해 대부분 근로자가 적립형 연금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감소하는 부과방식 연금액을 늘어가는 적립형 연금을 통해 상쇄하도록 하는 것이다.
적립형 연금은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각자 보험료를 내면 자기 연금 계좌에 돈이 차곡차곡 쌓인다. 여기에 이자가 붙는다. 은퇴 시 납입한 원금과 이자를 매달 연금으로 나눠 받는다. 각자 소득 활동을 할 때, 미래에 자기가 받을 연금을 저축하고 투자해 수익을 더해 놓는 것이다. 따라서 후세대가 보험료를 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 적립형은 인구구조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연금 제도인 것이다.
우리도 스웨덴이나 독일 같은 복지선진국처럼 해야한다. 기초연금도 문제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를 계속해서 인상할 수는 없다. 인상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더라도 13~15% 수준에서 동결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9%로 근로자와 사용자가 반씩 부담하나, 사용자는 퇴직(연)금 보험료를 의무적으로 전액 부담한다. 이것이 월 8.33%이다. 따라서 현재 실질적인 총연금 보험료율은 17.33%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면, 총보험료율은 20.33%가 되고,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리면 22.33%가 된다. 서구 복지국가 수준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를 넘어서긴 힘들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이 다소 올라 수입이 늘어난다 해도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에 대한 연금 지출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30% 정도로 낮출 필요가 있다. 아니면 복지선진국처럼 자동안정화 장치를 넣어야 한다. 어찌 됐든 미래에 약속된 연금액보다 낮아지거나 늦게 받기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서구처럼 적립형 연금을 활성화해 국민연금을 보완해야 한다. 이때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중에 법정 연금제도이며 막대한 보험료가 이미 투입되고 있는 퇴직연금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개혁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수령액을 보완하게 하려면,
퇴직연금이 연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퇴직연금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고용주는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퇴직연금 보험료를 책임지고 있다(혹은 퇴직금을 주어야 한다). 이 보험료 규모가 막대하다. 2021년 한 해만 해도, 사용자가 납부한 퇴직연금 보험료가 총 49.9조 원이다(같은 해 사용자와 전 국민이 납부한 국민연금 보험료는 51.3조 원). 엄청난 보험료가 투입되는데, 실제 퇴직연금을 받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95% 정도가 연금대신에 일시금으로 받는다. 일시금으로 받는 돈도 얼마 되지 않는다. 평균 1,000만 원대다. 왜 그런가? 직장을 옮길 때 퇴직연금을 IRP(개인형퇴직연금)로 옮겼다가 해지해서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주택 구매 등 중도 인출해서 사용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은퇴 시에 보면 연금화할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일시금으로 받고 마는 이유다.
불가피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수령액을 보완하게 하려면, 퇴직연금이 연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처럼 중도인출과 일시금 수령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프리미엄 연금은 중도 인출도, 중도해지도 불가하고 연금으로만 수령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기업연금도 중도 인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퇴 후, 소액을 제외하고 연금 형태로만 수령이 가능하다. 스위스도 연금 자산의 25%까지만 일시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나머지는 모두 연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보험료를 내는 생산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세대 간 소득 이전 방식인 국민연금이 장기간 유지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조금 줄여 받고, 그 대신에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같은 적립형 연금이 모자란 노후소득을 보완해야 한다. 올해 총선이 끝나면 미뤄놓았던 국민연금 개혁을 재개할 것이라고 한다. 이때 퇴직연금 개혁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 이름값을 하려면, 연금자산이 충분하게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도해지나 중도 인출에 제한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퇴직연금사업자는 수익률을 높이고, 수수료는 낮춰 가입자의 연금 자산이 크게 불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대부분의 베이비부머가 생산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적립이 시작될 수 있게 빠른 개혁 조치가 단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