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마일은 이름 그대로 물류의 중간 단계를 가리킨다. 물류산업은 운송 단계에 따라 퍼스트마일, 미들마일, 라스트마일로 나뉜다. 퍼스트마일은 대형 물류사가 컨테이너로 수출입을 주선하는 단계다. 화물의 규모가 크다 보니 삼성SDS, SK FSK L&S와 같은 대기업 계열사가 활약하는 시장이다. 라스트마일은 택배사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단계다. 과거엔 택배사들의 무대였지만 최근엔 쿠팡처럼 자체 라스트마일 물류망을 구축한 e커머스 사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두 단계를 잇는 미들마일에선 이렇다 할 업계 강자가 없다. 미들마일의 핵심은 ‘주선사’다. 주선사는 화물 주인인 화주에게서 의뢰를 받아 이 화물을 운반할 차주를 이어주는 업체다. 지역 기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보니 영세 주선사들이 인맥을 살려 차주를 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계약서 작성, 화물 인수증 제출, 운임 정산 등의 업무도 이 시장에선 수기로 처리되는 경우가 흔하다. 업계 관행과 차주의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디지털화가 더뎠던 탓이다.
시장 규모로 보면 미들마일은 다른 물류 시장을 능가한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미들마일의 국내 시장 규모는 33조 원 수준이다. 퍼스트마일(5조 6,000억 원), 라스트마일(7조 5,000억 원) 등을 합친 규모보다 2배 이상 많다. 미들마일 사업을 하고 있는 주선사의 수만 1만여 곳. 이들 대부분이 개인 사업자로서 알음알음 건별로 운송 계약을 따는 구조다. LG유플러스는 미들마일 시장에 있는 차주의 수를 43만 명으로 보고 있다.
운송 단계 | 운송 경로 | 국내 시장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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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마일 | 생산지 → 제조 공장 | 5조 6,000억 원 |
미들마일 | 제조 공장 → 물류센터 | 33조 원 |
라스트마일 | 물류센터 → 최종 소비자 | 7조 5,000억 원 |
주선사의 아날로그 업무 모습은 카카오모빌리티가 등장하기 이전의 콜택시 시장과 비슷한 풍경이다. 주선사 직원은 화주에게서 일일 20~30건의 화물 운송 계약을 의뢰받는다. 화물 유형이 다르고 상 · 하차지가 제각각인 탓에 화물별로 적합한 차주를 찾는 게 주선사 직원의 핵심 업무다. 적합한 차주를 찾느라 직원 한 명이 전화를 하루에 수십통 거는 경우도 흔하다. 주선사가 자체 차주 네트워크에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온라인상의 화물 정보망을 통해 다른 차주를 구해야 한다. 배차에 성공하더라도 화물이 제때 운송되고 있는지, 안전히 도착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남아있다.
아날로그 업무는 차주에게도 불편하다. 차주들은 하차지에서 복귀할 때도 화물을 운송하려 한다. 화물칸이 빈 트럭을 모는 걸 반길 차주들은 많지 않다. 문제는 복귀하는 길에 딱 들어맞는 화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차주들은 적당한 화물을 선점하기 위해 스마트폰 상의 화물 정보망에 의존한다. 벌이가 괜찮은 화물은 다른 차주도 눈독을 들일테니 차주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마땅한 화물을 찾지 못한 차주는 기름값이라도 벌기 위해 통상 운임보다 싼 가격에 화물을 나르는 경우도 생긴다.
정산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쉽다. 미들마일 시장에선 화주가 주선사에게 대금을 지급하면 주선사가 그 대금에서 수수료를 뗀 나머지를 차주에게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주선사가 월별 정산을 하다 보니 차주의 통장에 실제 돈이 들어오기까진 운송 이후 한 달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수기로 업무를 관리하다 보면 실제 차주의 운행 거리와 인수증에 있는 운행 실적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긴다.
미들마일 시장을 노리는 IT 기업들은 DX(Digital Transformation) 플랫폼을 통해 주선사와 차주의 업무 편의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주선사와 차주 사이를 이어주는 앱인 ‘카카오T 트럭커’를 지난 10월 출시했다. 이 앱으로 차주들이 화물 중량과 종류, 상 · 하차 지역 등에 따라 주문을 골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세금계산서 발행, 운임 정산 등의 업무도 앱으로 지원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미들마일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연합회와 손을 잡았다. 이 연합회가 운영 중인 화물 정보망인 ‘화물마당’의 지분 49%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택시업계와의 갈등으로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시도였다. 지난 7월엔 화물마당을 고도화한 서비스인 ‘로지노트 플러스’도 출시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빠른 정산’을 플랫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차주가 운임을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을 주선사의 지급승인이 완료된 직후 평균 1시간 이내로 만드는 게 목표다. 시장 입지를 빠르게 다지기 위해 서울, 충남, 충북, 대전, 전남, 대구, 울산, 부산 등 각 지역의 개인화물자동차운송사업협회와도 업무 제휴를 체결했다.
LGU+도 지난 10월 주선사와 차주를 잇는 플랫폼인 ‘화물잇고’를 내놓으면서 카카오모빌리티에 맞불을 놨다. 주선사가 웹으로 화물을 등록하면 차주가 모바일 앱에서 원하는 화물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세금계산서 발행, 인수증 관리, 보험료 지금 등의 업무도 지원한다. 신한카드와 협업해 화물 운송료 전용 결제 카드도 도입하고 대금 지급 기간도 1일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이 통신사만의 무기는 화물잇고 앱에 탑재된 화물차 전용 내비게이션이다. 이 내비게이션은 유턴 불가 구간을 알려주고 화물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길이나 터널 · 교량의 높이 제한 등을 반영해 최적 경로를 설정한다. 물류센터 내 정확한 상 · 하차지도 알려준다. 운행기록 관리기능과 불량 화물이나 상습 운임 미지급 화물을 필터링하는 기능 등도 제공한다. 전반적인 기능이 차주의 편의성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선사처럼 화주와 차주 사이를 직접 이어주려는 플랫폼 업체들도 있다. KT는 지난해 5월 화물 중개 운송 플랫폼인 ‘브로캐리’를 선보이며 통신 3사 중 가장 먼저 미들마일 DX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 4월엔 AI로 운송 관제와 화물 추천을 하는 ‘브로캐리 2.0’을 내놨다. 이 플랫폼으로 화주는 화물차 도착 예상 시간과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KT는 기업 고객에게 최적의 운송 방법과 단가를 제공하는 물류 종합 컨설팅 서비스도 이 플랫폼과 연계해 제공하고 있다.
출발이 빨랐던 KT는 사업 성과도 속속 내고 있다. 지난해에만 브로캐리 관련 매출로 750억 원을 거뒀다. 지난 10월 브로캐리를 통해 성사한 중개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700% 이상 늘었다. 이달 정부 인증 우수 화물정보망에도 선정되면서 서비스 신뢰도를 높였다.
티맵모빌리티는 화주의 마음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이 업체의 화물 중개 플랫폼인 ‘티맵 화물’은 운임 산출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았다. 이동거리, 운송 시간, 화물 종류, 날씨, 유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화주, 차주 모두에게 적정한 요금을 산출한다. 2021년 인수한 주선사인 와이엘피를 통해 운송 데이터 111만여 건을 분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티맵모빌리티 관계사인 SK텔레콤은 트럭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마스오토와 최근 손을 잡았다. 향후 티맵모빌리티의 미들마일 사업에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될 여지가 생겼다.
미들마일 플랫폼들이 내세우는 강점과 공략 지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시장 충돌은 불가피하다. 화주와 차주가 같은 화물을 놓고 서로 다른 플랫폼을 이용할 순 없는 노릇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플랫폼 시장에 한발 앞서 진입했던 덕분에 지금도 90%가량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들마일 시장에 진출한 IT 기업들이 적극적인 영업과 판촉을 전개할 것이 분명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