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BK 특집

슬기로운 생각

Make Time
To be
Happy

‘시간을 내서’
행복해지는 게 올해의 숙제
글 · 김신지
연말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들뜹니다. 좋아하는 문구 브랜드에서 새로 출시한 다이어리나 스케줄러를 기웃거리며 새해엔 어떤 것을 써볼까 고민하는 시간이 좋거든요. 책상 위에 놓인 올해 다이어리가 ‘뭐야. 이것도 제대로 안 썼잖아…’ 하며 서운함을 내비친대도 별 수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반성이 아니라 희망이니까요.

김신지 작가
에세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평일도 인생이니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등을 펴내며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기를 참 정성스럽게 해왔다. 그동안 <PAPER>, <AROUND>, <대학내일> 등에서 글을 썼고, 트렌드 당일배송 미디어 캐릿(Careet)을 운영했다. 최근, 2024 ‘나를 위한 시간’ 달력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판을 선보였다.


새 다이어리 첫 장을 펼치고 크고 작은 바람을 적어 내려갈 때, 지금은 비어 있는 칸들을 공백으로 두지 않고 성실히 채워가겠다고 다짐할 때 우리는 얼마나 희망에 찬 사람이 되던가요.
옅은 설렘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준비하는 기분, 이번에야말로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분이 좋아서 연말마다 서점의 다이어리 코너 앞에 서는지도요.





‘행복의 ㅎ’ 기록하는 법

다이어리는 매년 바꾸지만, 바꾸지 않고 이어가는 기록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5년째 쓰고 있는 ‘행복의 ㅎ’ 일기가 그중 하나예요. ‘1 Day 1 Moment’라는 계정을 만들어 하루에 딱 하나씩 나를 웃게 만든 사소한 기쁨의 순간을 모아두고 있습니다. 처음엔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지쳐 잠드는 나날들 속에서 시간에 떠밀리듯 산다는 느낌을 지우고 싶어 시작한 기록이었어요. ‘행복의 ㅎ’이란 표현은 저 자신을 위해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나는 행복했던가?’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긴 힘들지만, ‘오늘 어떤 순간이 좋았지?’ 하고 질문을 조금 더 잘게 쪼개보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아, 점심 때 먹은 연어초밥 맛있었지.
회의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동료가 바나나우유랑 쪽지를 남겨둔 게 고마웠어. 오늘 공기가 맑아서 창밖으로 보는 노을이 근사했지.
이런 식으로요. 행복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고 사소한 순간이니 혼자서 그것을 ‘행복의 ㅎ’이라 불러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말이란 건 참 신기합니다. 이전에도 그런 순간들은 일상에 무시로 흩어져 있었을 텐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땐 스쳐지나갈 뿐이었어요.
알아보지 못하니 붙잡을 생각도 못할 수밖에요. 하지만 그런 순간에 ‘행복의 ㅎ’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작지만 반짝이는 순간을 훨씬 자주 발견하게 되었어요. 별거 아닌 장면에 자주 카메라를 드는 사람이 된 것은 덤이고요. 마른 은행잎을 밟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사진 한 장, 라테 아트가 근사하게 그려진 커피잔 사진 또 한 장…. 그런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니 알게 되었어요. 아무리 바쁘게 보낸 나날 속에도 좋은 순간이 하루에 꼭 하나씩은 나를 다녀가고 있었다는 걸.





기록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혹시 지금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디에다 기록할지만 우선 정해보세요.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하나 만드는 것도 좋고(비공개 계정으로 시작하면 부담을 덜 수 있어요), 이미 쓰고 있는 블로그나 일기장이 있다면 그것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기록 자체는 어려울 게 없어요. 하나,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좋은 순간을 딱 하나만 주워야지’ 마음먹어보세요. 둘, 하루를 보내면서 ‘아, 좋다’라고 느낀 짧은 순간을 알아채는 연습을 합니다. 셋, 하루를 마치며 오늘 주워온 순간을 내가 기록하기로 정한 장소에 넣어두는 거예요. ‘행복의 ㅎ’ 기록은 나만의 좋은 순간 모음집이자 스스로에 대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장소에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구나, 이런 것을 할 때 기분이 회복되는구나, 알게 된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를 좀 더 자주 데려가세요. 그것이 일상을 사랑하는 방식이자 이 기록의 선순환이기도 하니까요.



나를 위한 시간 달력

아,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새해엔 새롭게 하려는 기록도 하나 생겼네요. 오늘 쓰는 내일 일기처럼 새해를 앞두고 미리 할 수 있는 기록, ‘나를 위한 시간 달력’ 이야기입니다. 이 달력은 책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정판 에디션을 출간하며 연말 선물 세트처럼 함께 만든 것이에요.
스스로에게 조금 더 나은 시간을 주자고 말하는 책을 펴낸 후로, 한 해 동안 여러 자리에서 ‘하지만 어떻게 하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이 달력은 그 질문에 대한 답처럼 만든 것이기도 해요.

시간이 나면 해야지.(X)
시간을 내서 해야지.(O)
시간을 내서 행복해지는 게 올해의 숙제. 달력의 첫 장을 열면 맞닥뜨리는 이 문장은, 지난 몇 년 사이 시간을 대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달라진 제 태도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전엔 바삐 살면서, 눈앞의 일들을 해치우면서, 늘 ‘시간이 나면 OO을 해야지’ 생각하곤 했어요.
물론 시간은 날 리 없었고, 하고 싶은 바로 그 일—고향집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거나 좋은 계절에 한강을 걷는 일—을 계속 미루는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할머니를 사랑해서 자주 찾아가는 손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산책인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그때부터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하는 것 말고, ‘시간을 내서’ 하자고. 한 달 전부터 고향집에 찾아갈 날짜를 일부러 비워두고, 산책도 나 자신과의 데이트 약속처럼 미리 정해두고 하자고요.





새해 달력에 ‘나를 위한 시간’을 심어두는 법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마련해본 경험을 이 달력에 담았습니다. 꼭 제가 만든 달력을 활용하지 않아도 되니 이제부터는 새해에 나를 위한 시간을 심어둘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볼게요. 준비물은 2024년 달력과 세 가지 색깔 펜. 새해 우리는 매달 세 가지의 예정된 기쁨을 심어두려고 해요. 각각 다른 컬러를 지정해 표시해보시길. 첫 번째는 ‘랜덤 럭키 데이’. 연초에 무작위로 12개의 날짜에 붉은 동그라미를 쳐두세요. 달력을 넘기다가 내가 붉은 동그라미를 쳐둔 럭키 데이에 이르면 그날은 나를 위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한 가지씩 해주는 거예요. 장바구니에 담아둔 것 결제하기, 퇴근길에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사주기, 오늘따라 유난히 운동이 가기 싫다면 하루쯤 거르고 친구 만나기 등. ‘내가 나한테 잘해주는 날, 나를 좀 봐주는 날’로 삼는 셈이죠.
두 번째는 ‘이달의 제철 행복’. 계절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시간을 내 즐겨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겨울엔 방어회, 봄이면 미나리전을 먹는 것처럼 제철음식이나 과일을 챙겨 먹는 일도 그렇고요. 꽃이 지기 전에 꽃놀이를 가고 단풍이 지기 전에 단풍놀이를 가는 일도 그렇죠. 이번 주는 바쁘니까 다음에, 그런 식으로 미루다 보면 제철 음식은 끝나버리고, 꽃과 단풍은 다져버린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번 달엔 어떤 ‘제철 행복’을 누리면 좋을지 미리 찾아두고, 그것을 위한 날짜도 빼두는 거예요. 지금 가야 풍경이 가장 근사한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와도 좋고, 친구와 제철음식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죠. 핵심은 숙소나 식당을 예약하듯이 나만의 제철 행복 역시 미리 찜해두는 준비성!
세 번째 예정된 기쁨은 ‘○○의 날’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 ‘문화가 있는 날’인 것 아시죠? 전국의 고궁과 박물관 등에 이날 하루는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정해 두었기에 충분히 ‘갈 이유’가 되어주는 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우리도 저마다 ‘셀프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소소한 취미를 즐기는 날이라 생각하고 ‘OO의 날’을 만들어보세요. 전시의 날, 영화의 날, 캠핑의 날, 책방 투어의 날, 카페 투어의 날, 위스키의 날 등등. 안 해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한다면 내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는 것. 이런 활동이야말로 시간이 날 때 하려고 하면 영영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 동그라미를 쳐둘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시간을 조금 더 기쁘게 쓰기 위해서라도요.
시간 ‘내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미리 빼둔다는 것, 달리 말하면 미래에 행복을 ‘심어두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계획한 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날이 생겨도 괜찮아요. 언젠가 책에 쓴 것처럼 중요한 건 ‘내일상을 그냥 흐르게 두지 않겠다는 마음. 누구의 뜻도 아닌 내 뜻대로 행복해지겠다는 의지’일 테니까요.
새해가 되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같은 시간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내가 걸은 자국이, 내가 보낸 시간이 결국은 나를 말해줄 거예요. 2024년의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는 어떤 사람일까요? 올해 우리의 숙제는 하나, 시간을 내서 행복해지는 일이란 걸 잊지 마세요.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