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은 풍요로운 들판과 바다를 품은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판소리의 신재효와 진채선, 시인 미당 서정주 등 출중한 예인들이 화려한 문화를 일구었다. 예전의 선운사 일대 지형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인천강을 따라 바닷물이 선운사 앞까지 흘러와 선운사 앞쪽은 길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운산 일대는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다.
그렇다면 예전에 선운사로 드나들던 길은 어디였을까? 참당암 뒤편 참당고개를 통해 바닷가 마을인 심원과 연결되는 길로, 이름은 서해랑길이다. 이 길에 선운사 창건 설화가 서려 있다. 선운사 창건 설화는 도솔암 마애불에서 이야기를 푸는 것이 순서다. 15m 높이의 마애불은 1500년쯤 전에 살았던 검단 선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전한다.
검단선사는 선운사를 창건한 승려로, 그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선운산은 도적떼의 소굴이었다. 검단선사는 도적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생계 수단으로 삼도록 했다. 양민이 된 그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매해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검단선사에게 보은염(報恩鹽)을 보냈는데, 그때 소금을 운반했던 길이 서해랑길 42코스다.
출발점은 심원면이다. 출발에 앞서 사등마을 검단소금전시장과 진채선 생가에 들러보자. 마을의 이름인 사등(沙登)은 ‘바닷모래가 쌓여 등성이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곳은 자염(煮鹽)으로 유명하다. 자염이란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갯벌 흙에서 바닷물을 걸러 가마솥에 넣고 졸여 만든 우리나라 전통 소금을 가리킨다. 예전에 소금을 만들던 모습이 바닷가 시멘트 둑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전시관 건물 옆에는 소금 굽는 벌막을 복원해놓았다. 여름철엔 화염 만드는 법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유리로 만든 전시관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심원 갯벌 너머로 부안 변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소금전시장 근처에 진채선 생가 터가 있다. 진채선(1842~?)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소리 여류 명창이다.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신재효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우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고, 고종 때 경회루 낙성연(落成宴)에서 출중한 기예를 발휘하며 대원군의 눈에 든다. 진채선의 빼어난 솜씨에 깜짝 놀란 대원군은 그이를 애첩으로 삼고 총애했다. 낙성연을 마치고 진채선은 고창으로 돌아가려 했겠지만, 대원군은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진채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신재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4년 뒤 대원군이 실각하자, 진채선은 고향으로 돌아와 신재효를 찾아간다. 다시 만난 진채선과 신재효는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고도 하고, 이미 진채선이 왕가와 연분을 맺은 터라 손 한번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고도 한다. 1884년 신재효가 세상을 뜬 뒤 진채선은 꼬박 삼년상을 치른 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진채선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바닷가에서 소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동편제의 우렁찬 소리가 마을은 물론 갯벌을 쩌렁쩌렁 울렸을 듯하다. 이제 화산마을 앞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화산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를 비롯한 고목이 즐비하다. 다른 지역은 사라져버린 마을 숲이 잘 보존되어 있다. 길은 포장도로지만, 차는 거의 다니지 않는다. 길은 마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연천마을에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나무 아래 벤치에서 한숨을 돌리기 좋다. 겨우내 우리나라는, 12월에는 서해안 쪽에서 눈이 많이 내린다. 선운산, 내장산 등지에는 폭설이 내리곤 한다.
느티나무 앞에서 마을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안내판이 잘 나와 있다. 서걱서걱. 길에는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과 묵은 낙엽이 첩첩 쌓였다. 산길은 비탈을 타고 돌면서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참당고개에 올라선다. 험악해 보이는 선운산 줄기에 이렇듯 쉬운 길이 있을 줄 몰랐다. 옛길의 지혜를 두발로 체험한다.
참당고개에서 참당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을 따라 개이빨산(견치산) 방향을 따른다. 완만한 오르막을 따르면 곧 개이빨산 꼭대기에 닿는다. 바다 건너편은 변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변산과 선운산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발길을 재촉하면 그윽한 대숲이 나타난다. 능선에 이렇게 빽빽한 대숲이 있는 게 신기하다.
대숲을 지나면 대망의 소리재 전망대가 나온다. 42코스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전망대 격인 암반에 오르자 두루뭉술한 암봉들이 즐비한 천마봉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마치 선운산의 속살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비경 속으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자, 수려한 바위가 솟구친 낙조대가 나온다. 이곳은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 상궁이 마지막 순간을 맞은 바위로 유명하다. 낙조대란 이름처럼 멀리 서해가 아스라하다.
낙조대에서 천마봉은 지척이다. 천마봉에서 내려다 본 마애불과 도솔암, 그리고 도솔계곡의 설경은 선운산의 제1일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마애불이 장난감처럼 작고 귀엽게 보이고, 그 머리 위에는 내원궁이란 작은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내원궁은 도솔천의 천상 세계를 상징하고 마애불은 미륵하생의 지상 낙원을 의미한다.
하산은 도솔암으로 직접 내려서는 길을 따른다. 미끄러운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애불 앞이다. 마애불을 유심히 보면 유독 배꼽이 크다. 그곳에는 검단선사가 봉해놓은 신비스러운 비결이 있는데, 그것이 세상에 출현하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한다. 비결과 함께 벼락살을 동봉해놓았기 때문에 누구든 그 비결을 꺼내려고 손대면 벼락을 맞는다고 했다.
실제로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것을 꺼내다가 벼락이 쳐 도로 봉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세상 사람들은 마애불의 전설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하지만 비결은 1893년 가을 동학접주 손화중이 꺼냈고, 다음 해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전라도를 휩쓸었다. 비결의 개봉은 세상을 개벽하려는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 일조했다.
내원궁과 도솔암을 구경하고 내려오면 진흥왕이 말 년에 왕위를 버리고 수행했다는 진흥굴과 600년 쯤 묵은 소나무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을 만난다. 이제부터는 평지처럼 완만한 숲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기 좋은 길은 선운사까지 이어진다. 해 질 녘의 선운사 경내는 고요하고, 대웅전 뒤편 동백나무는 깊이 잠들어 있다.
화산마을~연천마을~참당고개~천마봉~도솔암~선운사~선운사관광안내소. 거리 8㎞, 넉넉하게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길은 전체적으로 수월하고 산길구간도 비교적 어렵지 않다. 완주가 부담스럽다면 참당고개에서 솔봉 방향으로 가다가 참당암으로 내려가는 길을 추천한다. 참당암에서 선운사로 내려오면 된다.
자가용은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로 나와 심원면을 찾아간다. 서울-고창, 센트럴터미널에서 1일 16회(07:05~19:30) 운행. 고창에서 선운사행 버스는 약 20분 간격(06:20~20:15)으로 다닌다. 이 버스를 타면 심원마을로도 갈 수 있다.
심원면에 있는 설가네 한식백반뷔페(063-561-5732)는 가족이 운영하는 집으로, 살가운 서비스가 인상적이다. 보통의 뷔페 식당은 음식 가짓수만 많고 실하지 못한 편이나 이곳은 다르다. 가짓수가 많고, 다 맛있다. 특히 깨죽이 훌륭하다. 자꾸 가져다 먹게 되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