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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稅)테크의 시작과 끝
연말정산에서 IRP 활용하는 팁

글 · 김동찬 파이낸셜뉴스 기자

소득 있는 곳에 반드시 세금이 있다지만 사전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 따라 그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2023년 세제 혜택이 늘어난 만큼 미뤄온 공부를 시작할 때다. 미리 준비하는 새해 연말정산.
우선 연금저축과 IRP를 파악하는 것부터 출발해보자.




연금계좌 제대로 알기부터

올해 52세인 박 모 씨는 찬바람이 불 때면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다. 직장생활 20년 차를 맞았지만, ‘13월의 월급’이라며 기대한 연말정산에서 한 번도 이렇다 할 세액을 환급받지 못했다. 부양가족이 없고 미혼인 박 씨는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없다고 단념한 채 살아왔다. 매년 2월이면 주변의 자랑에 귀를 닫고 지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연금계좌에 관한 영상을 접했다. 최대 16.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올해 연금계좌 세액공제 납입 한도가 200만 원 상향된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연금계좌 가입’을 검색했다. 설렘도 잠시, 박 씨는 이내 노트북을 덮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연금저축보험, 연금저축펀드 등 종류가 너무 많고, 상품 이름은 죄다 비슷하고, 구조가 복잡해 어느 상품에 얼마나 납입해야 효과적인지 알 수 없었다. 박 씨는 우선 연금계좌 가운데 ‘IRP’와 ‘연금저축계좌’는 어떻게 다른 지 차근차근 공부해 볼 심산이다.




과세이연 혜택 ‘뿜뿜’, 연 1800만 원까지 납부 가능

평생에 걸쳐 준비하는 연금계좌는 개인에게 중요한 계좌다. 미래가 달린 만큼 큰 계좌이기도 하다. 우선 IRP와 연금저축계좌의 차이를 알기 전, 연금계좌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핵심은 IRP, 연금저축계좌 중 어떤 걸 선택해도 관련 수익금이 발생할 경우 세금을 미뤄주는 ‘과세이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 계좌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15.4%의 이자소득세를 낸다. 배당도, 이자도 15.4%를 떼고 받는다.
그러나 연금저축, IRP 등 연금계좌는 15.4%의 세금을 떼지 않고, 훗날 연금 수령 시 ‘연금소득세’로 대신 내도록 미뤄준다. 연금소득세 세율은 3.3~5.5%로, 낮은 편이다. 소위 말하는 ‘저율 과세’다. 연금소득세를 내기 전까지 오랜 시간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더 큰 원금을 더 오래 굴릴 수 있다. 복리효과를 기대한다면 투자 활용도가 높다. 특히 연금계좌는 수십 년간 준비하는 경우가 많으며, 노후를 생각했을 때 과세이연에 최적화된 상품이다.
납입한도는 연 1800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이는 한사람에 부여되는 것으로, 연금저축과 IRP가 그 한도를 함께 공유한다. 계좌가 아무리 많아도 전부 합해 넣을 수 있는 금액이 1800만 원이라는 뜻이다. 한도 설정 때문에 계좌 개설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납입 가능한 한도이지 단 돈 1만 원만 넣어도 세액공제는 받을 수 있다. 저축을 열심히 했다면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개인이 얼마나 넣었는지 집계한 결과를 토대로 세액 공제를 받는다. 근로자는 연말정산, 사업자는 종합신고를 통해 세액공제받은 금액만큼 환급받는다. 원래 받았다면 그만큼 더 많이 받을 것이고, 뱉어 내야 했다면 더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연금 수령은 동일한 방식이다. 두 가지 다 55세가 지난 시점에 원할 때 연금 수령을 신청할 수 있다. 55세가 임박했거나 지나고 나서 계좌를 개설한 경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앞서 언급한 연금소득세를 내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세율은 낮아지므로 연금 수령을 늦게 할수록 유리하다. 자신이 모아 놓은 노후 자금은 목돈이지만, 매달 나오는 건 조금이다. 연금을 다 쓰는 동안에도 나머지 목돈은 여전히 자신이 선택한 상품으로 운영된다. 연금으로 사용하는 기간은 10, 20년처럼 긴 시간이므로 남아 있는 목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따라 자신의 노후 자산은 계속해서 달라진다. 과거처럼 시장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면 연금계좌는 일종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될 수 있다.






연금저축(펀드)에서는 불가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IRP의 장점이다.




세액공제액부터 투자 가능 상품까지 체크, 또 체크

IRP와 연금저축계좌 중 어떤 상품의 세액공제액이 많은지 확인해야 한다. IRP와 연금저축계좌 모두 환급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율은 ‘13.2%(총급여 5500만 원 또는 종합소득 4500만 원 이하는 16.5%)’로 같다. 차이는 ‘한도’다. 연간 납입 가능한 금액이 서로 달라 결과적으로 환급받는 금액 역시 달라진다. 특히 2023년부터 나이, 소득에 관계없이 연금계좌 세액공제 납입 한도가 200만 원 상향됐다. 이에 연금저축은 기존 4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IRP는 700만 원에서 900만 원으로 각각 확대됐다. 납입한 금액에 비례해 세액공제받을 수 있는 만큼 세액공제액만 두고 봤을 때는 IRP가 유리하다.
최대 납입액에 따라 환급액은 얼마나 달라질까? 우선 연금저축계좌에 세액공제 한도인 600만 원을 납입하면 소득 구간에 따라 최대 79만 2000~99만 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IRP에 세액공제 한도인 900만 원을 납입하면 최대 118만 8000~148만 5000만 원으로, 환급금액은 크게 늘어난다. 따라서 연간 저축 여력이 900만 원 이상이라면 IRP에 저축하는 편이 좋다. 연금저축과 IRP를 조합해 연금저축에 600만 원, IRP에 300만 원을 각각 나눠 저축하는 방식도 고려해봄 직하다. 돈을 얼마나 넣을 수 있는지 알았고 세액공제를 얼마나 받을지도 계산했으니, 이제는 투자 상품을 고를 차례다. IRP와 연금저축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IRP와 연금저축의 구분

연금저축은 현금, 연금펀드, ETF 등 총 세 가지 형태로 투자할 수 있다. 연금계좌 초보가 계좌 설 후 입금만 해뒀다면 계속 ‘현금’ 상태로 있을 것이다. 세액공제는 가능하니 천천히 공부하면서 다른 수익 상품을 매수하도록 하자. 연금펀드는 일반적인 펀드가 아니라 연금계좌에서 매수 가능한 ‘연금펀드’라는 종류가 따로 있다. 펀드 이름에 ‘연금’이 들어가거나 펀드 이름 끝에 P, P-e S-P처럼 ‘P’가 붙는데, 이것이 연금펀드다. 앱상에서 별도로 연금펀드 메뉴를 구분해놓기도 한다. ETF는 레버리지, 인버스 등 파생형 ETF를 제외한 대부분의 ETF를 담을 수 있다.
우선 IRP는 투자 대상을 좀 더 유연하게 선정할 수 있다. 예금·보험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부터 펀드·상장지수펀드(ETF)·실적배당보험·국내 상장 ETN(파생결합증권)·리츠·인프라펀드 등의 실적배당형 상품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금융 상품을 운용할 수 있다. 각자의 투자 성향에 맞게 금융시장의 변화를 따라가며 투자할 수 있다. 연금저축에서는 불가한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IRP의 장점이다. 그러니 안정지향형 투자 방식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퇴직연금정기예금에 투자하기를 권한다. 현재 IBK기업은행 IRP에서는 SBI저축은행·웰컴저축은행·애큐온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상품부터 신한은행·우리은행 등 시중 은행의 원리금 보장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또다른 원리금 보장 상품 가운데 가입자가 만기까지 보유하며 납입 시점의 적용이율을 만기까지 확정 적용하는 ‘보험사 이율보증형(GIC)’에 가입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IBK기업은행 IRP에서 롯데손해보험, 한화생명보험, DB손해보험 등의 상품 투자가 가능하다. 증권사가 원리금을 보장하고 중도해지 시 원금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원리금 보장 상품 ‘파생결합사채(ELB)’는 IBK기업은행 IRP에서 가입할 수 있다. 단, 중도해지 시 중도해지 이율이 적용되니 참고해두자. 또 IRP는 현금이 아니라 현금성자산을 매수하게끔 되어 있다. 즉,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매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금성자산은 증권사의 CMA 계좌에 두는 것과 비슷한데, MMDA 상품으로 운용된다. 투자 가능 상품 유형이 다양한 IRP는 선택의 폭이 넓은 데 반해, 한도 규정이 있어 주식형 펀드, ETF, 리츠와 같은 위험 자산은 잔고의 70%를 초과할 수 없다. 원리금 보장되는 상품과 채권형 ETF 등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ETF로 글로벌 자산 배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다면 연금저축이 낫다. 그러나 원리금 보장 상품을 좋아하는 보수적인 투자자 또는 부동산 펀드처럼 배당을 많이 주는 자산을 선호한다면 IRP를 선택하자. 이때 알아둘 것은 IRP는 연금저축펀드와 달리 계좌 관리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수수료는 금융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적립금의 0.3% 수준이다. 최근에는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 등 비대면 방법으로 IRP에 가입하거나 퇴직 급여를 IRP에 이체해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낮춰주는 금융회사가 늘고 있다. 참고로, IBK기업은행은 비대면 IRP 가입 시 수수료 전액 면제(0원)이며, 가입하기 전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두자.






IRP는 근로자만 가입 가능, 중도해지는 금물

세액공제액을 확인한 다음에는 가입 가능 대상을 확인한다. 연금저축은 나이, 소득 여부에 아무런 가입 제한이 없으며, 근로자가 아니어도 가입할 수 있다. 따라서 연금저축은 자녀를 위한 목적으로 가입해도 괜찮다. 5살 아이의 이름으로 연금저축을 개설하고 돈을 넣고 20년 동안 굴리다가 아이가 25살이 됐을 때 그대로 줄 수 있다. 원금 부분은 세액공제를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출금 가능하다. 수익 부분만 과세되는데, 25살이 된 자녀는 목돈을 뽑아 창업하거나 계속 납입하면서 노후자금을 모을 수 있다. 과세이연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인 셈이다.
반면 IRP는 퇴직연금 제도에 가입된 근로자나 퇴직금 수령(예정)자인 경우 가입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비대면 계좌 개설을 할 경우, 소득이 있다는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계좌를 개설할 때 소득이 있었다가 이후에 없어져도 상관없다. 개설할 때 있으면 된다. 큰 금액이 묶이는 만큼 중도인출에 대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중도인출에 있어 연금저축이 IRP보다 자유롭다. 연금저축은 계좌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특별한 조건 없이 부분 중도인출할 수 있다. 즉 연금저축은 55세 등 나이와 무관하게 계좌를 해지하지 않고, 0원이 될 때까지 출금할 수 있다. 이 계좌는 언제든 다시 저축할 수 있는 계좌로 남는다. 다만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하니 신중한 판단은 필수다. 세제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여유 자금만 불입하는 편이 좋다.
IRP에는 ‘자물쇠’가 달렸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요양 등 법정 사유를 제외하고는 중도인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 중간에 일부만 빼낼 수 없으며 전액 인출하는 방법뿐이다. 일부 인출이 가능한 경우는 개인회생·파산, 요양, 천재지변, 주택구입·전세보증금 등만 해당한다. 이때 3.3~5.5%(연금소득세) 세율이 적용된다.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앞서 언급한 연금소득세를 내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세율은 낮아지므로
연금 수령을 늦게 할수록 유리하다.




해지는 최후의 선택

IRP와 연금저축에 많은 혜택을 주는 이유는 연금으로 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16.5%의 기타소득세를 내야 한다. 세액공제받는 것이 연소득 5500만 원 기준으로 13.2% 또는 16.5%를 받는다는 걸 고려하면 손해가 막심하다. 아무리 오래 준비했더라도,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동안 모았던 걸 한 번에 일시금으로 목돈으로 다 쓸 수 없다. 어떻게 계산해도 속 쓰릴 정도로 많이 떼이기 때문에 연금저축과 IRP는 깨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럼에도 갑자기 급한 돈이 필요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담보대출을 이용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금저축은 담보대출이 그나마 잘된다. 한도는 50~60% 정도이며, 금리 조건 역시 나쁘지 않다.
다만 대형사 가운데 서비스하지 않는 곳이 있고, 중소형사 대부분은 취급하지 않으니 살펴봐야 한다. 또 ETF가 있으면 대출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참고하자. IRP는 담보대출이 거의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연금자산은 모으다 보면 생각보다 큰 목돈이 되고,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따로 대출받는 것이 복잡하니 연금 담보대출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사회초년생이라 결혼, 이사, 전세 보증금 등 큰돈 들어갈 일이 많다면 연금저축을, 결혼과 이사의 과정을 거쳤으며 소득이 더 올라 세액공제를 많이 받으면서 노후자금으로 쓰고 싶은 중장년층은 IRP가 더 효율적이다.




김동찬 파이낸셜뉴스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