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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해외)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크로아티아 트로기르

글 · 사진 서영진

크로아티아 트로기르는 서성거림이 즐겁다.
트로기르는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세월이 겹겹이 쌓인 중세의 건축물과 투박하고 빛바랜 돌길이 골목을 채운다.
아드리아해의 순풍은 성당 종탑과 요새, 붉은 지붕의 섬마을을 푸르게 스쳐 지난다.

  • #크로아티아
  • #트로기르
  • #세계문화유산

트로기르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도시의 연속성’이 등재
이유다.

트로기르 섬 해안에 드리워진 중세 건축물과 요새

세월이 겹겹이 쌓인 중세 건축물

트로기르는 크로아티아 본토와 큰 섬 치오보 사이의 작은 섬이다. 크로아티아 ‘제2도시’ 스플리트에서 버스로 40여 분이면 섬 입구에 닿는다. 좁은 다리와 아치형 문 너머에 중세의 섬은 고즈넉하게 들어서 있다. 섬 초입에는 소소한 아침 시장이 열린다. 과일과 채소, 기념품이 뒤섞인 좌판을 지나면 섬의 상징인 이바나 파블라 광장과 빠르게 맞닥뜨린다.

육지에서 중세의 구도심 중심에 들어서는 데 불과 5분. 아담한 섬은 걸어서 둘러보는 데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유네스코는 이 작은 중세의 섬을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도시의 연속성’은 유네스코가 등재 사유로 기록한 첫 번째 이유였다.

트로기르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이 정착하며 도시가 처음 형성됐다. 염소를 뜻하는 ‘트라구리온’이 도시의 옛 이름이다. 아드리아해의 길목에 위치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섬의 과거는 유구한 세월 속 파란만장했다. 헝가리 왕국에 편입됐다 15~18세기에는 다른 달마티아 지역과 함께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하기도 했다. 1차 대전 이후에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의 일부였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다시 이탈리아에 점령되는 질곡의 시절을 겪었다.

요동치는 너울 속에서도 도시는 온전히 옛 모습을 지켜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베네치아 시기를 겪으며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들이 덧씌워졌다. 성로렌스 대성당은 도시의 깊이를 반증하는 대표 유적이다. 이바나 파블라 광장 중앙에 우뚝 선 성당은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종탑은 14~16세기에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돼 완성됐다. 성당 내성 요한 예배당은 달마티아 최고의 르네상스 양식이며, 대성당 초입의 사자 조각과 달마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아담과 이브 조각상은 명물로 사랑받는다. 종탑에 오르면 붉은 지붕의 섬마을과 골목, 푸른 아드리아해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광장 주변은 15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시계탑, 시청사가 에워싸고 있다. 대성당 맞은편의 치피코 궁전은 15세기 마을 귀족의 거주지였다. 광장에는 이방인과 거주민이 뒤섞인 평화로운 오후가 녹아든다. 여행자들은 노천카페에 앉아 중세의 건축물을 감상하며 햇살을 만끽한다.

시계탑 뒤로 펼쳐진 구도심의 붉은 지붕들
이바나 파블라 광장의 여행자들
중세의 양식이 혼재된 성 로렌스 성당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구시가 골목

헬레니즘 시대의 호흡 서린 골목길

트로기르는 ‘달마티아의 보석’으로 불리는 섬이다. 섬의 가치는 굳건하고 오래된 중세 건축물들을 감상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트로기르는 걸어서, 혹은 건물을 오르내리며 향유하는 섬이다. 섬 동쪽이 카이로스의 부조를 간직한 성 니콜라 수도원과 대성당 등 유적으로 채워진다면 섬 서쪽은 주민들이 머무는 일상의 골목들이 흐른다.

헬레니즘의 흔적이 깃든 직각 형태의 골목길은 트로기르의 또 다른 보물이다. 두 개의 고대 주요 거리인 ‘카르도 막시무스’와 ‘데쿠마누스’는 옛 모습의 돌길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중세와 근대사를 겪으며 묵묵히 도시를 지켜온 이 골목들을 세계 유산등재의 또 다른 사유로 적고 있다.

트로기르의 구시가 골목은 차들이 다니지 못한다. 사람 두세 명이 어깨를 맞대고 지나는 좁은 길은 빛바랜 돌들이 청아한 빛을 뿜어낸다. 진흙으로 다져진 벽, 개성 넘치는 문양과 창틀까지 어우러져 낯선 미로여행이 흥미롭다. 흩날리는 흰 빨래조차 골목을 음미하는 정겨운 소재가 된다.

골목의 홈과 장식, 문양에는 옛 장인들의 손길과 흔적이 닿아 있다. 초승달, 꽃, 나뭇잎 등 장식들은 건축물이 마무리된 표시나 거장들의 서명으로 사용됐다. 현지 트로기르 여행안내서는 이 작은 오브제들을 숨은 그림 찾듯 발견하기를 권유한다. 도시의 예술미는 골목 속 작은 문양과 소품들이 전하는 사연에서 더욱 보석처럼 빛난다.

해안 따라 이어지는 부디슬라체바 거리
성 로렌스 성당에서 조망한 트로기르

푸른 바다와 만나는 요새와 삶터

어느 골목을 서성이든 길 끝은 푸른 바다와 연결된다. 거주지와 해변 사이에는 루치 궁전, 세가 궁전 등 귀족들의 궁전들이 늘어서 있다. 13~14세기 형성된 궁전의 벽들은 도시를 지키는 요새 역할을 했다. 레스토랑과 야자수, 요트들이 들어선 부디슬라체바 거리는 성도미니크 수도원을 지나 육중한 카메를렌고 요새에서 마침표를 채운다. 베네치아인이 축성해 궁과 군사기지로 활용했던 굳건한 요새는 최근에는 콘서트 공연이 열리는 평화로운 공간으로 변신했다. 카메를렌고 요새에 오르면 섬의 구시가와 해변, 운하 건너편 치오보 섬의 윤곽이 한눈에 담긴다.

섬을 거닐며 만나는 작은 상점과 붉은 모자를 쓴 크로아티아 소년들이 정겹다. 섬에 사는 주민은 1만 명 정도. 규모에 비하면 비좁은 트로기르 섬은 다채로운 풍광을 지녔다. 카메를렌고 요새와 성 마르크 탑 사이에는 축구장이 들어서 있다. 트로기르는 크로아티아 축구 3부리그 소속인 ‘HNK 트로기르’를 보유했던 섬이다. 홈구장이었던 축구장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섬 서쪽 세계유산들 사이에 들어서 있다.

트로기르에서 개폐교로 연결되는 치오보 섬은 제법 듬직한 모습이다. 치오보섬은 중세의 세월을 거둬내고 섬 주민들의 일상이 차분하게 담긴다. 치오보 섬을 잇는 바다에는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오붓한 해변들도 숨어 있다. 트로기르 포구에서는 스플리트까지 아드리아해의 순풍을 맞으며 유람선이 오간다.

트로기르와 치오보섬을 연결하는 개폐교
  • Tip트로기르 가이드

트로기르는 스플리트 공항에서 3km 떨어져 있으며, 스플리트 도심에서 섬까지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대도시 스플리트에 묵으며 트로기르까지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스플리트, 두브로브티크에서 유람선으로도 닿을 수 있다. 여행자들은 구시가 북문에서 투어를 시작해 이바나 파블로 광장의 대성당과 옛 골목길을 둘러본 뒤, 산책로를 따라 카메를렌고 요새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트로기르 구시가에는 ‘sobe’로 불리는 민박집 숙소들이 다수 있다. 트로기르의 식당들은 해산물과 달마티아 요리가 주를 이룬다. 해변 산책로에 맛집 명소로 등록된 이탈리아 피자 식당들도 운영 중이다. 트로기르의 3월 기온은 섭씨 15~20도로 한국보다 따뜻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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