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탄의 감성에 매료되다
자연이 선사하는 평온함이란 이런 것일까. 공방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 늦겨울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공방에 도착한 네 사람의 얼굴엔 금세 환한 미소가 어렸다. 조명이 선사하는 감성과 따뜻한 공기가 어우러진 공방의 포근하고 안락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오늘 네 사람은 등나무와 자개를 이용해 선캐쳐를 만들기로 했다. 네 사람 모두 라탄 공예는 처음이란다.
라탄은 동남아 지역에서 재배되는 등나무 줄기로, 부드럽고 견고한 소재를 자랑한다. 본드나 접착제 등의 화학적인 재료를 쓰지 않고 오직 물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고 건조 시켜 사용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강사가 미리 모양을 잡아 놓은 등나무가 준비돼 있었다. 네 사람의 얼굴에는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났다.
“설명을 듣고 따라 하면 전혀 어렵지 않을 거예요. 등나무 공예는 집 짓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집을 지을 때 먼저 바닥을 다진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벽돌을 쌓아 올린 다음 지붕을 얹잖아요. 등나무 공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닥 다지기와 기둥 세우기는 시간 관계상 제가 미리 해놓았으니 여러분은 두 가닥의 기다란 등나무 줄기를 엮어가면서 모양을 만들어 나갈 거예요. 오늘 우리가 하는 작업을 ‘두 줄 꼬아 엮기’라고 하는데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작업을 할 때는 중간중간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세요. 등나무 줄기는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부드러워지니까요.”
강사가 시범을 보였다. 긴 등나무가 강사의 손놀림을 따라 기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공간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작업은 등나무가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교차하는 작업이라 네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강사가 “모두 잘하고 있습니다”라며 기운을 북돋웠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네 사람의 마음이 선캐쳐에
오롯이 담기는 듯하다.
10년 우정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자 서툴렀던 손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 신경은 손 끝에 집중되고 말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등나무를 엮어가다 보니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아요!” 잠시의 침묵을 깬 건 넷 중 막내인 박소연대리였다. 그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계기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클래스를 신청한 이여진 대리가 답했다.
“저희 네 명은 2013년 7월 처음 만났어요. 유머 코드가 비슷하고 성격도 잘 맞아서 빨리 친해졌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10년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선캐쳐를 만든다는 클래스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앞으로 더 좋은 기운을 우리 모두에게 불러오고 싶었다고 할까요? 시간의 흐름만큼 가족만큼 애틋한 것 같아요.”
이여진 대리의 말에 “와~”하는 감탄이 쏟아졌다.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가족 같은 존재’라는 말은 세사람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채정연 대리가 말을 이었다.
“결혼 전에는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어요. 이제는 넷 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 다니면서 육아에 전념하느라 예전처럼 자주 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성 들여 손수 만드는 선캐쳐가 네 사람에게 좋은 선물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캐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좋은 기운을 집안으로 불러오기 위해 사용하던 풍수 아이템이다. 창가에 선캐쳐를 걸어두면 밝은 태양 빛을 통해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부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변치 않을 우정을 다짐하는 네 사람의 마음이 선캐쳐에 오롯이 담기는 듯했다.
등나무를 엮듯이 우리의 추억을 엮다!
화기애애한 대화를 마치고 네 사람은 다시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강사의 설명대로 차근차근 전 작업을 이어 나가던 네 사람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렵게 보이던 작업이 생각보다는 순조로웠던 모양이다. 가장 먼저 작업을 끝낸 박소연 대리는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이제는 자개를 골라 낚싯줄로 이어줄 차례다. 자개는 장신구나 공예품의 재료로 가공한 조개껍데기로 선캐쳐 모빌로 많이 활용된다. 특히 자개가 바람에 부딪혀 내는 소리는 청아하고 맑아서 듣고 있노라면 절로 감성이 충만해진다.
“자개 여섯 장짜리 한 줄, 다섯 장짜리 두 줄, 네 장짜리 두 줄 해서 총 다섯 줄을 만들어 줄 거예요. 총 스물 네 장의 자개를 골라주면 됩니다. 자개를 자세히 보면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요. 낚싯줄을 구멍에 넣고 서로 이어주면 됩니다.”
형형색색의 자개는 곱디고왔다. 자개의 색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조합해보는 네 사람의 표정이 자못 신중해졌다. 오윤경 대리가 다른 직원들의 표정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3월에 드디어 복귀합니다. 설레는 마음 반, 긴장의 마음 반이었는데, 오늘 이 시간 덕분에 에너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오윤경 대리와 채정연 대리는 각각 올 3월과 7월에 복귀를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은 “그간의 육아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는 자리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네 사람은 정성스럽게 이은 자개 줄을 등나무에 걸어 선캐쳐를 완성했다. 그리고 물개 박수로 서로의 수고를 칭찬했다. 두 시간여의 작업 끝에 얻은 선캐쳐는 네 사람에게 큰 행복이었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밖은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네 사람이 서둘러 공방을 나섰다. 발걸음이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오늘 어렵게 시간을 내 정성껏 등나무를 엮고 자개를 이은 것처럼, 앞으로 네 사람의 우정이 더 곱고 아름답게 엮여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