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의 삶이 깃든 옛 수도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나일강의 길이는 수천km에 달한다. 사막 위 누비아인의 삶이 녹아난 아스완, 파라오의 무덤이 웅크린 룩소르를 거친 강줄기는 카이로를 경유해 지중해로 흘러든다. 바다와 만나는 비옥한 델타 지대 끝자락에 알렉산드리아는 ‘섬’처럼 드리워져 있다. 해변 도시는 카이로 이전에 이미 천 년 동안 이집트의 찬란한 수도였다.
황량한 사막과 피라미드의 이집트가 익숙했다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고즈넉한 포구와 바닷가 정취에 시선이 머문다. 파라오 대신 20대에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사연이 도심 골목을 맴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4세기 이집트에 입성한 뒤 본인의 이름을 딴 30여 개의 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세웠다. 그중 가장 먼저 정복의 단초를 마련하고, 유일하게 현재까지 남은 도시가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다. 알렉산더는 파로스 섬 연안의 바위투성이 땅에 델타 지역과 바다를 향한 교두보인 항구를 건설했다.
아프리카 북부의 알렉산드리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국과 헬레니즘 문화의 축이었다. 유럽,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와 뱃길이 이 도시에서 교차했으며 상아, 향료 등 갖가지 물건이 거래됐다. 지중해와 접한 세계적인 무역항에서는 문화, 예술의 교류 또한 빈번했다. 클레오파트라의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도 알렉산드리아가 주무대였다. 안토니우스 등 로마의 장군들과 연정을 주고받았던 클레오파트라의 스토리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세인들의 화젯거리였다. 이시스를 기리는 아스완 신전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나일강을 거슬러 여행 온 흔적이 새겨져 있다.
세계 불가사의 등대와 최대 도서관
독일의 시인 릴케는 줄곧 이집트를 연모했다.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나일강 전역을 수년간 여행하며 찬미의 시와 편지를 남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집트에서 맞닥뜨린 황홀한 체험을, 삶이 고통에서 희망으로 바뀐 ‘분수령’으로 적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해변에는 카이트베이 요새가 수많은 예술가와 상인, 철학자가 드나들던 지중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 섬의 등대가 있던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다. 15세기에 축조되고 재건된 요새 자체로도 의미가 큰데, 요새의 일부는 기원전 3세기 무렵 건설된 것으로 부서진 등대의 석재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파로스 섬 등대의 높이는 135m로, 등대 꼭대기를 장식했던 이시스 여신상과 클레오파트라 궁전의 일부가 바다 밑에서 발견됐다.
도심 곳곳에서 알현하는 유적들은 애틋하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던 숱한 유적은 지중해의 변덕스런 날씨까지 겹쳐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했다. 기둥 하나만이 덩그렇게 남은 폼페이의 기둥을 비롯해 지하 무덤인 카타콤, 원형 극장 등이 그레코로만 시대의 흔적을 강변한다. 몬타자 궁전, 나시르 거리의 박물관에도 세월의 온기가 전해진다.
알렉산드리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을 간직했던 도시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 제패의 꿈을 지식의 세계에서도 이루려 했으며, 그 뜻을 이어받아 프톨레마이오 2세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완공했다. 도서관에는 문학, 지리학, 천문학, 의학 등을 총망라하는 70만여 권의 책이 소장돼 있다. 도서관에 속했던 연구 집단 ‘무세이온(mouseion)’은 그리스어로 ‘지식의 전당’을 뜻하는데, 영어 단어 ‘박물관(museum)’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화재로 인해 건물과 소장된 책이 모두 불타버렸다. 옛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2002년 유네스코의 협력을 받아 과거의 영화를 계승한 새로운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유적과 영웅담 뒤로 펼쳐지는 어촌 풍경
알렉산드리아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윤곽은 그동안 조우한 이집트와는 사뭇 다르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수도로 융성했던 시기에는 그리스인, 유대인, 이집트인들이 영역을 나눠 공존하며 살았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수도가 카이로로 옮겨진 뒤 쓸쓸한 어촌 마을로 퇴락했던 때도 있었다. 인구 수백만 명인 이집트 ‘제2의 도시’로 부활한 것은 서구 열강이 주도한 19세기 근대화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복잡한 이곳 도심 길에는 덜컹거리며 트램이 다닌다. 알렉산드리아의 트램은 1860년에 처음 등장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투박하게 단장된 트램은 카타브 거리의 시장(수크) 길을 오가며 옛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시절을 묵묵히 대변한다.
알렉산더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잔상 뒤로 지역 주민들의 삶이 잔잔하게 투영된다. 포구로 접어들면 고깃배가 드나들고, 꼬마들은 해변에서 물장구를 치며,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 해풍을 맞는다. 지중해와 맞닿은 오래된 도시의 풍취는 일상 속에서 한 템포쯤 더디 흐른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어선들이 도시의 중심인 오바리 광장 앞바다를 유유자적 오간다. 해안도로를 지나 알무르시 아불 아바스 모스크는 돔과 첨탑을 드러내며 이곳이 현재 이슬람의 도시임을 보여준다. 도심 골목에는 전통 빵이자 이집트인의 주식인 ‘에이쉬(aish)’를 즉석에서 구워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왕국의 위용이나 영웅담과는 별개로 지중해 낯선 골목의 일상은 평화롭게 흘러간다.
- Tip알렉산드리아 가이드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와 로마가 이집트를 지배한 1000여 년간 그레코로만 시대의 수도였다. 7세기 이후 이슬람 시기를 이어오고 있다. 도시는 카이로, 룩소르 등과 달리 지중해성 기후를 띠며 겨울에는 비가 많은 편이다. 이집트 ‘제2의 도시’로 통하며, 유럽과 중동의 항공편이 수시로 운행한다. 지중해를 유람하는 대형 크루즈도 정박하는 항구 도시다.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교통수단은 트램이고, 외지인의 출입이 빈번해 노란색 택시들도 도심에서 흔하게 목격된다. 카이트베이 요새, 폼페이 기둥,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등이 필수 방문 코스다.
해산물 요리가 인기라 카이트베이 요새 인근에는 해산물 레스토랑이 다수 분포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생선과 요리법 등을 직접 지정해 주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