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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해외)

블루라군 녹아든
‘에코투어의 섬’

호주
로트네스트 아일랜드

글 · 사진 서영진

호주 남서부는 ‘격리된 감동’의 공간이다.
바다와 황무지 사이의 낯선 땅은 푸른 대자연이 외곽을 채운다.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는 ‘친환경’의 타이틀을 달고 에메랄드빛 바다 한가운데 고요히 들어서 있다.

  • #호주
  • #로트네스트아일랜드
  • #에베랄드바다

자전거로 둘러보는 에메랄드빛 바다

로트네스트섬은 원주민인 애버리진의 언어로 ‘와제뭅’이라 불린다. 와제뭅은 ‘물을 건너는 장소’라는 뜻이다. 서호주 프리맨틀에서 페리로 30분쯤 바다를 건너면 로트네스트에 닿는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바다, 야생동물이 뛰노는 날것의 생태가 섬의 자랑거리다. 로트네스트섬을 소개하는 간판 글은 예상과 달리,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찬미가 아니다. 섬이 삶터였던 와제뭅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으로 시작된다. 와제뭅 원주민을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과 그 해역에 대한 지속적인 유대와 보호를 약속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친환경 섬인 로트네스트는 ‘다짐의 땅’이다. 부당한 투옥의 장소로 훼손되고 피해를 본 원주민들에 사과하고, 섬을 그들이 누렸던 옛 모습대로 고스란히 보존하겠다는 약속과 의지가 담겨 있다. 섬 안에는 휘황찬란한 리조트가 드물고,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도 않다. 로트네스트 아일랜드가 ‘에코투어의 섬’으로 자리 잡은 데는 깊은 치유의 사연이 담겨 있다. 서호주의 대표도시 퍼스, 프리맨틀은 친환경 섬인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로 향하는 경유지다. 도심 골목의 와인 숍과 식당들은 ‘오르가닉’을 내세운 메뉴들이 익숙하다. 친환경의 분위기는 섬에 들어서기 전부터 곳곳에서 묻어난다.

페리를 타고 섬에 닿으면 교통수단 대부분이 자전거로 채워진다. 배에는 자전거용 승선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외부 차량은 진입이 금지되며, 섬 안에는 셔틀버스가 오간다. 자전거를 타고 순풍에 의지해 느리게 섬을 둘러보는 게 로트네스트를 즐기는 에코투어의 수순이다.

자전거는 섬을 둘러보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로트네스트 섬의 마스코트인 ‘쿼카’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바다,
야생동물이 뛰노는 날것의
생태가 섬의 자랑거리다.

포구 일대는 순백의 요트들이 수를 놓는다.
섬 잔디밭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관광객들

아늑한 독립 해변과 귀염둥이 ‘쿼카’

섬에는 해안선을 따라 20여 개 비치가 들어서 있다. 로트네스트를 에워싼 인도양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블루라군의 변색이 선명하다. 선착장 인근의 톰슨 베이를 시작으로 캐서리 베이, 리틀 새몬 베이 등 독립된 해변과 등대, 전망대 등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로트네스트 아일랜드는 단순한 휴양의 섬이 아니다. 섬의 가치는 섬의 동식물들이 철저하게 보호되고, 자연 그대로 보존돼 더욱 뜻깊다. 섬의 중심부는 12개의 소금 호수로 이뤄졌다. 소금 호수의 물은 바닷물보다 4배나 더 짜며 특이한 염생 식물들이 자란다. 투명한 바다에는 135종의 열대어와 20종의 산호가 산다.

섬에서만 서식하는 쿼카 역시 어렵지 않게 만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섬 주변을 무심코 거닐다 보면 귀염둥이 쿼카를 쉽게 마주한다. 다람쥐 얼굴에 아기 캥거루만 한 몸집을 지닌 쿼카는 섬의 마스코트로 사랑받는다. 17세기 섬을 처음 발견했던 네덜란드인들은 쥐 모양의 쿼카를 보고 ‘쥐들의 보금자리(Rat’s nest)’라는 뜻으로 로트네스트라 이름 지었다.

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마음에 드는 해변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즐기면 된다. 리틀 새몬 베이는 스노클링의 명소이고 베이신 비치는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방문객에 인기가 높다. 운치 넘치는 바트허스트 등대는 부두에서 걸어서 닿는 거리다. 수영복을 뒷주머니에 꼽고 자전거로 섬 한 바퀴를 도는 데는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달리다 보면 젖었던 몸은 햇살과 해풍에 금세 건조해진다.

섬 서쪽 끝 ‘웨스트 앤드’의 블라밍 전망대는 가장 수려한 풍광을 선사한다. 서호주의 짙푸른 하늘 아래, 인도양의 에메랄드빛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말에만 문을 여는 프리맨틀 마켓

포구 도시 프리맨틀의 카푸치노 거리

로트네스트섬은 소담스러운 규모다. 길이 11km, 폭 4.5 km로 가로로 길게 뻗어 있다. 최근에는 섬의 둘레길을 트레킹하는 걷기 여행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요트 위에 걸터앉아 낚시를 즐기는 망중한은 섬의 익숙한 풍경이다. 난파선의 흔적, 작은 갤러리들도 둘러볼만하다.

정겨운 에코투어의 섬에는 반전의 과거가 담겨 있다. 로트네스트에는 예전 원주민들을 가뒀던 감옥이 들어서 있었다. 감옥에 억류된 원주민들이 동원돼 지은 건물은 박물관으로 남아 여운을 더한다. 와제뭅 등대는 1849년 외부 선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올리버 힐에는 미로로 조성된 군사 터널과 포대가 남아 있다. 원주민 남성들과 소년들의 묘지는 섬 초입에 고즈넉하게 마련돼 있다.

로트네스트섬의 바다 너머는 낭만의 서호주를 대변하는 프리맨틀이다. 프리맨틀에서는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어울린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리 이름도 카푸치노 거리다. 배들이 한가롭게 드나드는 포구, 시청사가들어선 킹스스퀘어 광장에서 10여 분 거닐면 노천카페가 줄지은 카푸치노 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호주의 푸른 하늘 아래 이 지역 커피인 ‘롱블랙’이나 ‘플랫 화이트’를 홀짝이는 오후가 곁들여진다.

프리맨틀은 예전 영국 죄수들의 유배지였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프리맨틀 교도소, 라운드 하우스 등 교도소 건물들이 관광명소다. 주말에 열리는 프리맨틀 마켓은 감옥과 마주 보고 서 있다. 뒷골목에서 만나는 아담한 갤러리들은 포구 도시에서의 휴식에 품격을 더한다.

노천카페가 줄지어 들어선 카푸치노 거리
로트네스트로 향하는 관문인 프리맨틀 포구
  • Tip로트네스트 아일랜드 가이드

로트네스트섬까지는 퍼스 하버에서 익스프레스 페리로 1시간 30분, 프리맨틀에서는 30분이 소요된다. 퍼스에서 출발하면 스완강과 요트들의 정취를 만끽하며 이동할 수 있다. 퍼스에서 경비행기도 운항한다. 섬에서는 자전거와 스노클링 도구, 보트 등을 대여할 수 있다. 자전거가 가장 대중적인 이동 수단이다. 서호주 주민들은 피크닉 삼아 섬까지 당일투어 여행을 즐긴다. 섬 안에는 외지인들을 위한 방갈로 등의 숙소가 마련돼 있다. 호주는 환경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편이다. 쿼카 등 야생동물을 함부로 만지면 벌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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