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도에서 출렁다리 건너 연대도로

통영 달아항에 연대도로 가는 배가 다니지만, 연명항에서 만지도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연대도로 가는 배편보다 만지도로 가는 배편이 많고, 만지도와 연대도가 출렁다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출렁다리 앞에서 바라보는 연대도 풍광은 일품이다. 다리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가는 맛 또한 놓칠 수 없다. 만지도로 가기 전, 연대도 지겟길을 걸으며 섬 구석구석 둘러보고, 하룻밤 묵어보는 걸 추천한다.

연대도에서 1박을 한 뒤, 연명항에서 작은 여객선을 탄다. 배 안으로 들어가려면 나무 미닫이문을 열어야 하는데 꼭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배의 실내는 아담하다. 조타실이 따로 없기에 키를 잡은 선장님의 뒤태와 창밖의 바다를 번갈아 볼 수 있다. 만지도까지는 불과 15분. 시나브로 출렁다리가 보이면 연대도에 다 왔다는 뜻이다.

만지항에서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르면, 해변 데크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데크길을 걷는 맛이 일품이다. 이때부터 연대도가 어떻게 등장할지 마음이 일렁인다. 데크길이 끝나면, 두둥~ 빨간색의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길이 98m, 폭 2m의 현수교다. 출렁다리 왼쪽으로 원뿔처럼 생긴 연대봉 품에 폭 파묻힌 마을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연대봉 꼭대기 위로 큰 새들이 빙빙 날고 있다. 나중에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겨울철이면 찾아오는 독수리라고 한다. 아마도 먹이를 찾아왔을 텐데 연대도에서 무엇을 먹는지 궁금하다. 인간이 모르는 섬의 풍요로움을 독수리는 알겠지.

출렁다리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리 중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짙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물속에서는 진초록의 수초가 하늘거린다. 연대도 마을은 앞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반짝이고, 뒤로 220m 높이의 연대봉이 든든하게 마을을 품어 준다.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봉화와 연기 피우던 연대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연대도의 이름이 시작됐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이름은 ‘구들’이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어른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경로당을 지나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걸어본다. 모든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대문 옆의 문패가 특히나 재미있다. ‘점빵집으로 불렸어요, 김재기 할머니 댁’, ‘연대도 유일한 담뱃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집’ 등등.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녕하세요. 마을이 예쁘네요.” 골목길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예쁘고 편안한 섬이에요. 구경 잘하고 가세요.” 다정한 말이 건너온다. 자전거가 세워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이 나온다.

빈집이라 슬쩍 들어가 구경한다. 바닥에 조약돌을 깔고, 여기저기 예쁘게 치장한 집이다. 주인이 알뜰살뜰 가꾼 흔적이 엿보여 더 안타까우면서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샘솟는다. 골목 끝에 제법 널찍한 몽돌해변이 숨어 있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다. 해변 오른쪽으로 우뚝한 기암들이 버티고 있다. 기암은 풍광도 좋지만, 마을에 닥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소중한 존재다.

마을 골목길과 지겟길 걷는 재미

몽돌해변에서 골목길을 따라 연대도 지겟길을 따른다. 나무하러 지게 지고 다니던 길이라 해서 ‘지겟길’이라 이름 붙었다. 지겟길은 산허리를 한 바퀴 도는데, 거리는 2.3㎞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초입에 아담한 태양광발전소가 있다. 거대한 태양광 패널로 에너지를 모아 마을에 전기를 공급한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집들도 많다. 덕분에 전기가 귀한 섬이 에너지 자립을 이뤘다.

지겟길은 온순하다. 울창한 대숲, 전망대 등이 번갈아 나온다. 길은 곡선의 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구불구불 따르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긴다. 걷는 게 상쾌하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전망대는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북바위 전망대에서 안내판에 나온 연화도, 우도, 욕지도, 두미도 등과 눈을 맞춘다. 전망대에서 모퉁이를 돌면 학림도, 저도, 송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뒤로 달아항이 보이고 통영의 최고봉인 미륵산이 우뚝하다. 미륵산은 통영의 수호신으로 꼭대기에서 올라 한려해상에 흩어진 섬들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지만, 바다 위의 섬에서 미륵산을 올려다보는 맛도 괜찮다.

다시 숲길을 따르면 에코체험센터가 나온다. 이곳은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숙소다. 화석 연료를 쓰지 않고 태양광과 지열만을 이용해 냉난방을 해결했다. 숙소, 캠핑장, 카라반 시설 등도 잘 갖춰졌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몽돌해변에서 노을을 감상한다.

두 개의 기암 사이로 아주 천천히 노을이 졌다. “배가 다 떠났는데요.” 산책하던 노부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네 자고 가려고요.” 대답과 함께 숙소 문을 열었다. 창문으로 마을과 바다가 잘 보인다. 관광객이 사라진 겨울철의 연대도의 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달빛을 머금은 바다에 파도는 없다. 어떻게 섬의 바다가 이렇게 잔잔할 수 있을까. 천혜의 섬이 아닐 수 없다.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덕분인지 마치 잔잔한 바다 위에 누워 하룻밤을 청한 느낌이다.

연대도 옆의 만지도 여행은 덤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났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연대봉 뒤로 해가 떠오른다. 연대도가 붉은 후광으로 빛난다. 빛이 쏟아지는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인다. 연대도의 밝고 따뜻함을 품고 섬을 떠난다.

연대도를 나오면 출렁다리로 연결된 만지도 구경은 덤이다. 만지도는 연대도보다 더 작아 부담 없이 구경할 수 있다. 만지도 이름은 인근 다른 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사람이 입주한 섬이라는 데서 유래해 ‘늦은 섬’이란 뜻을 담고 있다. 또 섬의 형상이 지네와 같이 생겼다 하여 만지도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만지도는 지네에 비유되며, 북쪽에 자리한 저도는 닭에, 동쪽에 자리한 연대도는 솔개에 비유되어 서로 먹이사슬에 있어 함께 번성할 길지라는 설이 있다.

견우길과 바람길 전망 포토존 등 아기자기한 숲길이 끝나면, 만지봉 정상에 닿는다. 정상 아래로 섬 북쪽 해안의 할배바위와 구렁이모양 바위 등 수려한 바위들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산길이 끝나면 해안으로 이어지고 곧 선착장에 닿는다. 이 모든 것을 둘러봐도 1시간이 걸리지 않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섬을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비경과 여유를 품은 만지도를 뒤로한 채 연대도와 만지도 여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