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의
궁극적인 목적은
땅과 사람의
조화다.
자연이 주는 안정적인 멋
건축을 한다는 것, 집을 짓는다는 것은 세 가지 이상의 자아가 만나는 일이다. 우선 그곳에 살려고 하는 사람의 자아와 그 집을 설계하는 사람의 자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집을 허락해 줄 땅의 자아이다. 물론 사람의 이야기는 귀가 있고 머리가 있으므로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땅의 이야기는 우리가 들을 수 없다. 땅이 입이 있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손이 있어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듣겠는가. 그래서 땅의 의지를 모른 채 사람이 원하는 방향만으로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결국 사람과 땅이 원하는 바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집이 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풍수지리일 것이다. 풍수의 궁극적인 목적은 땅과 사람의 조화이며, 큰 건축이란 ‘큰 자연’과 사람이 화합하여 화목하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몇 년 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대학의 초청을 받아 일주일 동안 머물며 강연을 하고 학생들과 실습 스튜디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업무 때문에 미국에 다녀올 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그 나라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왔었지만,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 여기저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거닐어본 미국의 도시 풍경은 상상하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어떤 멋진 장소를 스펙터클하고 빠른 속도의 홍보 영상으로 보다가 실물을 보며 실망하는 경우처럼, 예전처럼 아주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도 말이 통하지 않을 뿐이지 마치 늘 만나는 동네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머무는 내내 무엇이 하나 빠진 것처럼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원인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대학가 노천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주변에 산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평생 서울에서 고개만 돌리면 사방에 있는 산이 빼꼼히 쳐다보며 눈을 맞추는 환경에서 살다가, 산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그런 허전함을 느낀 모양이다.
건축의 출발점, 땅
도착하고 며칠 동안 우리를 초대한 대학의 배려로 필라델피아의 오래된 도심을 구경하고 건축물을 보고 학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예정된 강연을 하게 되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있는 넓은 강연장에서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강연했다. 내용은 우리나라 자연에 대한 설명과 그런 자연에서 오랜 시간 만들어진 한국 건축의 특수성에 대한 것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많았던 질문은 “건축에서 왜 땅이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명한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그걸 묻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기했다. 자연관의 차이에서 나오는 질문일 수도 있고, 혹은 주변 지리 환경의 차이에서 나오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들에게 나는 오히려 반문했다. “땅이 중요하다는 것을 왜 따로 설명해야 하는가. 건축은 땅에서 이루어지고, 건축의 출발점이며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땅 아닌가?”
돌이켜보면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아주 특이한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우선 화산 활동이 거의 끝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다. 전 세계 공룡의 발자국과 고인돌의 반 이상이 우리 땅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땅이 오래되었고 지질이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땅은 건축이
이루어지는 곳이자,
건축의 출발점이며,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자연과의 조화는 당연한 이치
지리 시간에 배운 대로 국토의 70%가 산지이다 보니, 국토의 면적은 22만 평방㎞로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주름이 많아 실제 표면적은 무척 넓은 땅이다. 골이 많고 깊으니 사연도 많은 땅이다. 그리고 그 산과 들을 이루는 기반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인 화강암이다.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온은 혹서기에는 영상 40도, 혹한기에는 영하 20도로 연교차가 60도 정도 된다. 물론 극한 상황에서의 수치이지만 평균적으로 연교차가 50도를 넘나드는 아주 가혹한 기후 환경이다.
즉 우리의 땅과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수가 수려한 외관과는 달리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많은 요소를 품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오래 살아온 이 땅의 사람들은 자연과 정면 대결을 한다거나 자연을 압도하고 정복하려고 하는 무모한 짓을 포기하고 땅과 타협하고 자연과 상생의 길을 선택해왔다.
흔히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을 하는데, 사실 그 말처럼 웃기는 말이 없다. 자연은 인간에 비해 훨씬 오래 존재했고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하룻밤 내린 비에 흙이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넘어 엄청난 피해를 안겨준 사고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장소는 원래 물이 흐르는 자리였는데 흙으로 물길을 메운 뒤 넓은 콘크리트 옹벽을 세우고 그 뒤편에 아파트를 세웠다. 그런 인간의 자만을 비웃기라도 하듯 물은 원래가던 길로 다시 흘렀고, 결국 다치는 것은 연약한 존재인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호하자’가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자’로 구호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이 우리나라 풍수 사상의 근간이다. 멀리는 신라 말의 도선국사부터 조선 초에 활약했던 무학대사의 생각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떤 땅에 가면 발복을 하고 아들을 낳고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된다는, 그런 삶의 자잘한 요령보다는 국토를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는 어머니로 본 것이다. 땅에 늘 감사하며 잘 모시는 자세, 다시 말해 땅에 대한 경외감이 우리나라의 전통 풍수이다.
그런 생각들이 반영된 결과물로 대표적인 것이 서울의 도시 계획이다. 14세기 말 새로 개국한 조선의 수도 한양의 도시 계획은 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수도들과 사뭇 다르다.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교토나 북경, 혹은 유럽의 수도들은 도로와 시설의 배치가 정연한 기하학적 질서로 구성되어 있다. 즉 위계가 뚜렷하고 도시 계획의 의도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건축이란 결국
사람과 땅
그 둘을 중재하는
일이다.
건축, 만드는 것이 아닌 생겨나는 것
반면 한양의 도시 계획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뭔가 이상하다. 큰물인 한강과 작은 물인 청계천이 서로 방향을 엇갈리며 가로지르고, 마치 실핏줄이 퍼져있는 인체처럼 가느다란 물길들과 골목들이 가득 들어차있어, 그 안에 담긴 원칙이나 의도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런 특이한 형태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 이유는 원래의 땅에 엄청나게 오랜 시간 자리를 잡고 있던 산의 흐름과 물의 흐름, 즉 자연의 질서 안에 인간의 질서를 아주 얇게 입혀 놓았기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일본의 미술평론가이며 공예연구자이다. 그는 특히 조선의 예술과 공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고, 많은 저작을 통해 조선 예술의 우수함을 예찬하였다. 그는 식민지 지배하에 사라져가는 조선의 문화적 자산에 아쉬움과 우려를 여러 경로를 통해 표현하곤 했다. 그가 쓴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지나치게 서정적인 측면과 애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 전통미에 대한 관점은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통찰력으로 본질을 파고드는 예리함에 눈이 뜨이는 부분이 많다. 그가 쓴 글 중 깊은 인상을 받았던 대목이 있다. 조선과 일본 장인의 작업 성향을 비교하며 두 나라의 미의식을 비교한 글이었는데 아주 명징하다.
그 글은 “예를 들어 나무를 켜서 찻잔 받침대를 만든다고 하자.” 하며 시작된다. 일본의 장인은 우선 자신이 원하는 나무를 신중히 고르고 오랜시간을 들여 충분히 건조 시킨다. 그리고 작업 도구를 정돈하고 날을 세워두고 맵시 있게 나무를 깎고 정성껏 닦아 광택을 낸다. 완성된 찻잔 받침은 약간의 흠도 없이 완벽하다.
한편, 조선에서 나무로 찻잔을 만든다고 치자. 나무는 쉽게 손에 닿는 것을 고른다. 그리고 칼은 굳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 않는다. 웬만큼 드는 칼이라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찻잔 받침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찻잔 받침이 앞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느낌일까? 무네요시는 결론을 이야기한다. “조선의 물건에서는 인간인지 자연인지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이 일을 한다. 좋고 나쁘고를 넘어선 경지에서 물건이 생겨나는 것이다. 만든다기보다는 생겨난다고 하는 편이 더욱 알맞다.” 생겨난다는 말이 무척 와닿는다. 사람이 만들지만,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하고 나무의 결대로 마음의 결대로 크게 만드는 그런 미학이 우리에게는 있었다. 그것이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었고 우리의 자세였을 것이다.
우리는 건축 실무를 시작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많은 집을 지었고 많은 건물을 세웠다. 그러는 동안 얻은 결론은 건축이란 결국 무언가를 만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땅을 만난다. 그리고 사람과 땅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을 중재하는 일을 한다.
이제 세계는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연과 인간을 분리된 시각으로 보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이용물로 보던 과거의 태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그런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인간과 대등한 혹은 더 큰 존재로서의 자연에 대하여 경외하고 화합을 중시하던 관점과 태도가 얼마나 앞선 생각이며 지혜로운 생각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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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임형남(위), 노은주(아래) 임형남, 노은주는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의 공동대표이며, 임형남은 현재(사)새건축사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금산주택’, ‘루치아의 뜰’, ‘북촌길 및 계동길 탐방로’, ‘제따와나선원’ 등을 설계했고, 한국공간디자인대상 대상,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가온건축은 2023년 미국의 건축 포탈 아키타이저(Architizer)에서 뽑은 한국 건축사사무소 1위에 선정되었다. EBS <건축탐구-집>의 프리젠터로 활동했으며, 조선일보, 세계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에서 건축칼럼을 집필한 바 있다. 《집의 미래》 《나무처럼 자라는 집》 등 18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