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에 내리는 겨울비
호남지역의 IBK인들이 무등산에 모였다. 보통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산에 오르는데, 그렇다고 ‘오로지 산!’을 고집하진 않는다. 산에서만 친한 게 아니라 평소에도 교류하기 때문에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기도 하고, 볼링 등 취미활동을 즐기기도 한다. 수만리탐방지원센터에 모인 인원은 14명. 새벽부터 가늘게 내린 비를 뚫고 모였다.
“비가 오는데 진짜 산에 가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습니다! 우리는 비를 뚫고 무등산을 오를 겁니다!”
“피할 수 있는데요!”
“아닙니다! 우린 오를 겁니다!”
비옷을 입고 몸을 풀면서 농담들이 종횡무진한다. 이번 산행을 책임지게 된 일곡지점 김문수 과장의 받아치기와 동료들의 되치기가 웃음 속에 빗소리와 섞인다. 일곡지점에서는 최영인 대리와 정명환 대리, 박민지 대리가 함께했고, 광산지점 박혁 차장과 위종윤 대리, 남원지점 이현호 과장, 호남심사센터 임동민 과장, 수완지점 윤영재 대리, 상무지점 김채은 대리, 동광주지점 최효정 대리, 광주WM센터 박은지 대리, 서광주지점 이재우 대리, 하남공단중앙지점 나병현 대리가 함께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있었다. 오전에 시간당 최대 1mm, 우산을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수준의 강수량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바람인데, 산악기상예보에는 ‘무등산 북서풍 4m/s’였으니 나뭇잎이 흔들리는 정도, 걱정할 건 아니다. 다만, 산은 기압이 불안정해 날씨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주의를 기울이는 건 기본이다. 새벽엔 가늘었는데, 수만리에 모일 즈음에는 빗줄기가 조금 굵어져 있었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안전, 그 다음이 정상이다.
오늘 오를 코스는 수만리-장불재-서석대 코스다.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그렇듯 무등산 또한 수많은 등산로를 가지고 있다. 언저리를 돌며 무등산을 감상하는 길까지 따지면 대략 40여 개가 넘는 코스가 있다고 관리사무소에서는 말한다. 정상부에 오르고 싶다면, 크게는 북쪽 원효사에서 오르는 코스와 서쪽 증심사에서 오르는 코스, 남서쪽 수만리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증심사 코스는 평탄하되 코스가 긴 편이고, 수만리는 최단 거리로 오르되 조금 가파르다.
광주 뒷산 무등산
지난달 대구 팔공산에 이어 이번엔 광주 무등산이다. 두 산의 공통점이 뭘까? 국립공원이다. 해발 1,000m가 넘는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높고 큰 산임에도 지역 주민들에게 ‘뒷산’ 취급을 받는다는 점. 시내 어디서나 보일 정도여서 시내버스를 타고 쉽게 접근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학생들 또한 소풍 또는 체험학습으로 무등산을 한 번쯤은 올라 보게 된다. ‘뒷산’이라는 표현에는 그만큼 익숙함과 친근함이 배어 있다. 수만리에서 장불재까지는 내내 돌계단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중간에 쉴 만한 곳이 간혹 나타나지만 위로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을 보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그럴 땐 답이 없다. 그냥 오르는 거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산행 며칠 전에는 눈이 제법 내렸다는데 며칠 사이 날이 포근했고 새벽부터 내린 비에 길이 매우 질척하고 미끄러웠다. 돌계단으로 이어진 코스이지만 계단 옆과 일부 계단 없이 흙길로 이어진 구간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어야 했다. 길도 길이지만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위에서 내리는 비는 막기 쉽지만 옆에서 들이치는 빗방울은 난감하다.
장불재에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잠시 모여 휴식을 취하면서 어떻게 할 건지 논의했다. 당장의 날씨는 하산을 유혹했고, 어렵게 잡은 산행은 일단 올라 보길 권했다.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괜찮았기 때문에 일단 장불재까진 올라 보기로 한다. 진행하되, 날씨가 더 안 좋아지거나 안전에 무리가 된다 싶으면 미련 없이 하산하기로.
장불재는 서석대에 오르고자 한다면 어디에서 시작했건 들러야 하는 고개다. 곧 무등산의 모든 등산로는 장불재로 통한다 할 수 있다. 30분 정도 더 오르자 돌계단이 끝나고 평평한 길이 나왔다. 거대한 시설물 옆으로 이어진 길은 광장 같은 장불재에 닿는다. 이곳 대피소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어떻게 할건지 정하기로 한다.
사실 날씨가 좋았다면, 목적지인 서석대에서 인왕봉을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등산의 정상은 천왕봉(1,187m)이고 주변의 지왕봉과 인왕봉까지 정상부로 본다 이 ‘천/지/인’ 세 개의 봉우리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인왕봉이 지난해 가을에 해제되었고, 지왕봉과 천왕봉도 순차적으로 해제될 예정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구름 속이다.
올라오는 동안 산행객도 거의 없었고, 장불재에도 대피소에도 우리 말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는 아니라는 거다. 고도가 높아 온도가 낮아지면서 빗방울에도 우박처럼 얼음 느낌이 난다. 능선의 바람은 예보보다 훨씬 강력했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입석대와 우뚝한 장관을 보여줘야 할 서석대도 비구름에 갇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 사이에는 ‘무등산이 보이면 (비가 내려도) 경기를 할 수 있고, 안 보이면 순연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야구도 못할 날씨, 장불재에서 발길을 돌려 하산하기로 한다.
모두의 무등산, 언제라도 무등산
무등산(無等山)은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가리킨다. 산에 드는 모든 이를 보듬는 넉넉함 덕일 것이다.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편하게 와도 된다. 언제나 산행을 즐기며 ‘100대 명산’에도 도전하고 있는 임동민 과장에게도, 주말에는 푹 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박민지 대리에게도 서석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면 어떤가, 이날 함께한 IBK인들의 다음 만남이 꽃피는 무등산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석대의 주상절리는 무등산의 상징이다. 나라에서 지정하는 국가지질공원이자 유네스코도 인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서석대의 주상절리는 자그마치 8,5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한다. 그 두터운 시간의 층위가 넉넉함의 비결일지 모른다. 이번에 못 봤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단 이야기다. 괜찮다.
희망차게 시작했던 1월이 지나고 2월이다. 포부와 계획이 착착 진행되는 이도 있고, 현실이 의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뭐 어떤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솔직히 새로운 시작에는 1월보다 봄이 어울린다. 당신의 시작과 도전에 건투를 빈다.
수만리에 모일 즈음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안전,
그 다음이 정상이다.
무등산 INFO
- 주소광주광역시 북구 무등산천왕봉길 792
- 입산
시간하절기 04:00~17:00
동절기 04:00~16:00 - 코스수만리탐방지원센터-장불재-서석대(2.6km)
(※ 기상 악화로 장불재에서 회귀) - 문의무등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2-227-1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