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기상을 살피니 오전에는 눈이 오다가 오후에는 맑아질 것이라고 했다. 산행하기 나쁜 날씨는 아니다. 온도는 영하 2도에서 영상 5도 사이,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다. 더 중요한 건 바람인데, 오전에는 바람이 거의 없다가 오후에는 초속 5m 정도의 바람, 산행을 일찍 마무리하는 겨울 산행의 특성상 이 정도면 산행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주왕산은 처음이지?”
“등산이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주왕산은 당연히 처음이지.”
“응, 나도 주왕산은 처음이야. ㅎㅎㅎㅎㅎ”
이번 산행을 도모한 건 대구 범어동 지점의 김하영 대리다. IBK 입행 10년을 기념해 뭔가를 하고 싶었고, 함께 입행한 동기들을 떠올렸다. 교육을 받을 때부터 친했던 동기들을 모았다. ‘야, 우리 10년이다. 기념으로 산에 가자!’ 동여의도 지점의 권현환 대리와 천안 생기원 출장소의 임한별 대리 그리고 아산탕정 호서대출장소 이신우 대리가 함께 했다. 홍일점인 김하영 대리가 장소를 정했다. 대구 근교의 산으로 잡으면 동기들이 모이기로 했다. 기념할 만한 산행인데 멋진 산행을 하고 싶었다. 눈길이 간 건 국립공원 주왕산. 국립공원이니 풍경과 안전은 기본이고 청송은 자주 찾기 어려운 지역이니 여행 기분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늘의 산행은 경북 청송 주왕산! 다만 당일의 날씨를 감안해 코스를 바꿨다. 원래는 장군봉으로 오를 계획이었으나 주봉으로 경로를 바꿨다. 주왕산은 신라 말부터 주왕(周王)이 은거하던 산인데, 봉우리 중 하나인 ‘주봉’은 ‘어느 지방이나 산맥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라는 뜻의 ‘주봉(主峯)’과 발음과 한자 표기까지 동일하다.
이른 아침 대전사 입구에서 만나 된장찌개에 밥을 한 그릇씩 비웠다. 따끈한 차도 한 잔씩 하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도 채웠다. 산꼭대기 컵라면은 빠질 수 없는 산행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날이 추우니 간단히 몸을 풀고 대전사 지나 몸이 데워지면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기로 한다. 모두들 스틱은 처음이다. 당연히 좀 번거로울 수 있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든든한 지원군이 될 터이니 각자의 몸에 맞게 세팅하고 간단히 사용법도 익힌 후 곧바로 출발.
대전사에 들어서자마자 전각 뒤로 보이는 주왕산 기암이 우뚝하다. 파이팅을 외치는 주먹처럼 생긴 바위는 기암단애(奇岩斷崖)다. 6,000만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화산재(응회암)들이 쌓여 주왕산을 만들었고, 이후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깎이고 무너져 남은 게 기암단애다.
고민 많은 20대를 지나 30대 초입에 막 들어선 네 명의 동기는 기암 앞에서 힘차게 “출발~!”을 외치고 산으로 들어선다. 우리는 주봉마루길로 들어 주봉에 오른 뒤 북쪽 능선을 따라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주왕산의 시그니처라 할 협곡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그마한 쉼터가 나온다. 몸은 이미 충분히 데워졌다. 두터운 겉옷을 벗고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하기에 좋은 위치다. 지나는 사람이 없어 쉼터에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스트레칭을 했다. 목과 어깨, 허리와 골반 그리고 대퇴근과 햄스트링, 무릎과 발목까지. 아 이제 주봉을 향해 출발.
대전사에서 주봉까지는 2.3km 남짓. 깔딱고개라 할 부분은 없어서 초보자들도 무난하게 갈 수 있는 코스지만, 군데군데 가파르고 고르지 않은 오르막이 있어서 눈이 쌓였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길, 중간중간 휴식도 취하고, 쉬는 김에 셀피랑 동영상도 찍고, 찍는 김에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면서 올랐다. 걷다 보니 도착한 주봉(726m). 안개가 가득해서 조망을 즐기진 못했지만, 산행의 성취감은 흘린 땀에 비례하는 법.
“등산, 생각보다 힘드네. 근데 겨울산이라 그런가? 풍경이 좋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네.”
“우리가 만난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라고? 시간 진짜 빠르다.”
“봄에도 산에 가면 좋겠다. 다음에도 가자~!”
“야, 라면 라면!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자.”
이제 갓 서른 문턱에 이른 네 동기는 어떻게 벌써 입행 10년 차를 맞이했을까. IBK는 2011년 고졸 행원을 뽑은 이후 이들의 긍정적인 성과에 기대어 이듬해에는 대폭 늘어난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채용했다. 오늘의 주인공 넷은 그렇게 IBK인이 되었다.
“우리는 1년 먼저 들어온 선배들 덕을 많이 봤죠. 우리가 잘못하면 안 되는 거죠. 초기에는 아무래도 관심의 눈길이 많았어요. 지금도 ‘우리가 잘 해야 한다’ 스스로 다짐하곤 해요.”
차가운 날씨에 패딩을 벗고 반팔 차림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이신우 대리처럼 저들 또한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이다.
하산 코스는 주왕산의 백미, 기암괴석 사이로 난 협곡을 따라 난 길이다. 사람들이 주왕산에 중국 주나라 왕이 도망을 왔다는 이야기를 붙인 건 그만큼 우리나라서 보기 힘든 지형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한 이 코스에는 협곡을 따라 곳곳이 암벽이고 곳곳이 폭포다.
그 물줄기 이름이 주왕동천인데, 동천(洞天)이란 아름다운 경치가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는 뜻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바위, 새로운 폭포가 등장하는데 조금 과장하면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용추협곡(폭 3~4m)은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고 경험이다.
용추협곡의 통로는 자연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게 아니다. 1970년대 협곡의 바위를 깎아 잔도를 깔았다.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었다면 모를까, 주왕동천이 말라붙을 정도의 가뭄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들어갈 수 없었던 곳에 들어가기 위해 망치와 정을 들고 위험한 협곡을 향했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IBK의 고졸 채용은 올해도 변함없다. 그 뜻을 아는 것일까, 그렇게 들어온 이들도, 그들을 맞는 이들도 잘 적응하고 잘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 이르지 못한 곳에 닿기 위해 애쓰는 도전을 이어가는 것인지 모른다. 네 젊은 동기들의 거침없는 발걸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