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보았던 진달래가 질 무렵이니 이제 철쭉이다. 철쭉은 워낙에 색이 화려하고 생존력이 좋아 도심 곳곳, 아파트 화단까지 빼곡하게 피어난다. 알지만, 탁 트인 산등성이의 철쭉만 하겠는가. 산수유부터 시작된 봄꽃 계주의 마지막 주자는 철쭉이고, 철쭉하면 소백산 아니겠는가. 5월 하순의 어느 일요일, 소백산 서북 자락의 어의곡 계곡 입구에 충청권 일대 지점에서 10명의 IBK인이 모였다.
“오랜 친분이 있는 모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 모인 것은, 특히나 산을 찾은 건 처음이죠.(웃음)”
오창지점의 박수규 팀장과 청주산남지점의 노재석 팀장은 이 모임의 축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학교 선후배로 시작됐다. 여기에 학교 후배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후배나 동료의 배우자로 자연스럽게 범위가 확대되었다. 모두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어서 모두 혹은 자주 모이진 못하고, 삼삼오오 만난다고.
오창지점에서는 권재원 차장, 김정겸 차장, 이진효 대리가 함께 왔는데 모두 학교 후배다. 청주산남지점에서는 노 팀장 외에 정태임 차장, 박송희 대리, 손태원 대리가 참여했다. 정 차장은 박수규 팀장의 아내이고 박 대리는 음성지점 온 백승엽 과장의 아내다. 당진에서 가장 먼 발걸음을 한 고힘찬 대리 역시 학교 후배. 청주산남지점에서 함께 근무하다 지난1월 당진으로 옮겼다. 이렇게 10명이 모두 모인 건 처음인데, 그게 소백산이라니. 모두가 평소 산행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이참에 다 같이 얼굴도 보고 산행도 하자니 흔쾌히 모였다고.
“자, 이번 산행은 ‘즐겁고 안전하게’가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가 있는 어의곡에서 능선으로 올라 정상 비로봉 갔다가 올라간 코스 그대로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럼 몸 풀고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몸풀기 스트레칭을 위해 조교 출신 손태원 대리(청주산남지점)가 호출되었다. 능숙한 안내와 구령으로 웃음과 함께 워밍업을 마치고 산행 시작.
소백산은 이름과 달리 거대한 산이다. 이웃한 ‘태백산’은 이름부터 크고 해발고도 역시 태백산이 1,546m로 소백산(1,439m)보다 높다. 하지만 산지가 많아 고원지대인 태백산과 달리 소백산은 평야에 우뚝하게 솟은 산이라 체감상 더 크다. 산행 역시 태백산보단 소백산이 고되다.
소백산에 오르는 길은 큰 산답게 여럿인데 어의곡 코스와 죽령 코스, 희방사 코스 등이 인기다. 희방사는 오랜 문화유적을 볼 수 있어서, 죽령은 대피소를 이용해 종주를 할 수 있어서. 어의곡 코스는 상대적으로 코스가 완만하고 비로봉에 바로 오를 수 있어 소백산을 입문하기에 좋다. 능선까진 약 5km에 걸쳐 오르막이 이어진다.
철쭉은 죽령에 가까운 연화봉이 더 많다. 하지만 산 능선에도 점점이 철쭉은 있을 테고, 정상은 보아야겠기에 어의곡 원점회귀 코스를 정했다. 골이 깊고 나무가 많아 걷는 내내 해가 거의 들지 않는다. 날이 좀 흐르기도 했지만 해가 뗬더라도 울창한 숲의 그늘을 뚫진 못했을 것이다.
“흐리고 빗방울도 살짝 떨어져 잠시 ‘기대’도 했는데 오니까 그래도 좋네요.”
엄살과 흥분 중간 어디쯤의 농담들이 오가는 사이 돌 박힌 흙길이 목재 데크길로 바뀌었다가 활엽수와 침엽수가 아름다운 흙길로 변하기도 하면서 고도를 높여가며 능선에 가까워졌다. 저지대 계곡길은 선선하지만 가만히 있어야 바람이 느껴졌지만 능선에 올라서자 그늘이 사라진 대신 바람이 모자를 날릴 듯 거셌다. 겨울 소백의 된바람이야 악명이 높지만, 그 바람의 명성은 계절이 아니라 지형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소백 능선의 바람은 언제나 센 편이다.
능선에는 곳곳에 철쭉이 피었다. 아무래도 연화봉 근처의 군락지보다는 개체 수가 적지만 조각구름처럼 산사면 곳곳의 연분홍 철쭉은 아름다웠다.
능선에는 곳곳에 철쭉이 피었다. 아무래도 연화봉 근처의 군락지보다는 개체 수가 적지만 조각구름처럼 산사면 곳곳의 연분홍 철쭉은 아름다웠다.
철쭉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 있는가. 철쭉의 꽃잎에는 적갈색의 반점이 있다. 꽃잎 중간부터 안쪽 깊숙한 곳까지, 마치 화살표처럼 이어지는데 꿀벌과 곤충을 유인하는 이정표다. 반점의 안내를 따라 꿀벌이 날아들어 꽃 깊숙한 곳 암술의 꿀샘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수술의 꽃가루가 꿀벌에 많이 묻게 된다. 잘 보면 반점이 있는 잎이 있고 없는 잎이 있는데, 수술은 죄다 반점이 있는 꽃잎 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번식을 위한 철쭉의 최선이다. 참고로 진달래는 반점이 옅으니 반점으로도 둘을 구분할 수 있겠다.
한번에 눈길을 잡아끄는 철쭉 말고도 소백산에서 기억할 게 있다면, 모데미풀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토종 야생화로 소백산의 깃대종이다. 국립공원마다 공원의 생태와 지리를 대표하는 야생동식물을 깃대종으로 삼는데, 소백산은 여우와 모데미풀이다.
800m 이상의 고지대 중에서도 빛이 잘 들지 않고 습한 곳에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식지가 소백산이다. 모데미란 이름은 처음 발견된 지리산 자락의 마을에서 가져왔는데, 정작 그곳에선 이제 볼 수가 없다고. 선선한 계곡가 이끼 낀 바위에서 별처럼 하얗게 빛나는 꽃이 있다면 가만히 살펴보시라. 참고로, 하얀 꽃잎처럼 보이는 건 꽃받침이다.
우리는 어의곡 계곡을 오르내리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곡 상류를 살폈지만 만나진 못했다. 모데미꽃은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핀다 하니 대략 진달래와 철쭉 사이 정도로 기억하면 편하겠다. 철쭉이 연화봉 주변에 많듯, 모데미풀은 천동계곡 상류에 많다. 내년에 철쭉을 보러 소백산에 오를 계획이라면 참고하시길.
“은행 일이 생각보다 많이 바쁩니다. 평소에 다른 지점의 지인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어려워요. 이렇게 다 같이 모이기는 더욱 힘들고요. 뭔가 계기가 있어서 모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이런 자연에서 만나니까 참 좋네요. 제 생애 첫 번째 1,400m를 찍었습니다.(웃음)”
“다음에도 계기를 또 만들면 되죠. 다음 산행은 한라산, 콜?”
“내려가시죠.”
산행 중에 다음 산행을 계획하는 건 무모하다. 산행의 고됨이 추억이 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니까. 마지막 휴식에서 나온 다음 산행지는 끝을 맺지 못하고 흐려졌다.
사실 오늘 모인 IBK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던 모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만남이기 때문이다. 따스한 봄을 만나 피어나는 꽃처럼 이번 산행을 위해 활짝 피어난 모임이지만 또 다른 인연을 통해 계속해서 만남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라산이든 충주의 계명산이든 어느 산자락에서 이번 봄의 소백산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