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확장된 지금의 우리에게, 루틴과 습관을 만들고, 이를 기록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나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고 싶은 열망과 함께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지금 현실을 사는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두 가지, 우리는 과거보다 오래 살고, 혼자 산다는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혼자’가 훨씬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혼자 산다는 것은 개인주의나 이기주의, 또는 히키코모리처럼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흐름 가운데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코로나 시대는, 서서히 꿈틀대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디지털의 생활화, 집이라는 공간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투자 등)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변화의 내용을 바꾸거나,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를 붙게 했을 뿐이다. 이 변화의 핵심은 바로 시간과 공간의 변화다. 그리고 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점점 더 혼자 살고, 오래 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여러 방법론이 시도되었다.
회사나 학교 등 제2의 공간으로 물리적인 이동을 하던 사람들이 온라인 수업이나 재택근무를 통해 강제적인 집콕을 하게 되었다. ‘집’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처음으로 온전히(온종일)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간 이용의 변화가 생기니 시간 활용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퇴근 후의 시간이나 점심시간 정도가 나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나의 모든 시간이 내가 관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주부나 학생도, 여가 생활을 즐기던 은퇴자도 마찬가지다. 어딘가에 오고 가고, 생산활동이나, 소비 활동을 하며 아침·점심·저녁으로 분절된 시간을 쓰던 사람들이 통으로 주어진 시간의 첫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시간의 주인이 된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금세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루틴이다.
루틴에 대한 언급은 소셜미디어상에서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급격하게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에 루틴은 운동이나 뷰티 등 특별한 영역에서만 쓰이던 운동법 또는 사용법을 지칭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루틴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루틴의 쓰임새는 어떻게 확장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첫 번째, 루틴 영역의 확장이다. 가장 많이 증가한 루틴은 모닝루틴, 새벽루틴, 저녁루틴, 수면루틴이다. 우리는 중요한 시간 단위에 루틴을 만든다. 통으로 들어온 시간을 우리 스스로 분절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생활과 마음을 효율적으로 ‘관리’ 하고 일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즉 나의 생활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있다.
시간을 통제하고, 습관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누구나 일찍 일어나서책을 보고,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술자리를 갖지 않고 집에 와서 취미활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실천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핑계 없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사회적 분위기가 모두 준비되었다. 통제의 방법은 나와의 약속을 리추얼화 하는 것이다. 아침에 해야 하는 모닝 루틴으로는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 정리하기, 물 한잔 마시기, 명상하기, 저녁루틴으로는 스트레칭하기, 명상, 감사일기, 수면루틴으로는 음악듣기, 인센스 켜기, 독서하기 등의 항목들이 모두 그 시간에 꼭 해야 하는 자신의 리추얼이 된다. 이러한 의식들, 리추얼들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나의 루틴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들이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나에게 해주는 양식같이 좋은 일들이 나의 몸과 마음과 정서를 살찌울 것이라 믿는다.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관리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더 나아진 모습을 요구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듦으로써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불안을 줄이고자 한다. 종교의 리추얼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의식을 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고 불안을 통제하듯이, 나의 인생을 그렇게 잘 재단하고 통제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 루틴을 행하는 세대의 확장이다. 지금의 Z세대를 휩쓸고 지나간 단어가 있다. 바로 ‘갓생’이다. 갓(GOD)처럼 모범이 되도록 열심히 산다는 뜻이다. 지금의 10대와 20대는 학업을 중심으로 모든 일상생활을 쪼개어, 스케줄을 세세히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갓생살기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체크 리스트가 있다. 그러면 오늘 내가 몇 개의 리스트에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내일은 더 많은 동그라미를 치기 위해 노력하기 쉬워진다. 사소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일상의 일들. 작게는 물 마시기부터 러닝을 3킬로 뛰는 것까지. 나의 성취감과 직결된다.
비단 Z세대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지금 새벽루틴과 관련한 대상 중 가장 많이 증가한 세대는 바로 4050이다. 4050에게 새벽루틴은 동기부여다. 2020년부터 대한민국을 휩쓸고 간 미라클모닝챌린지는 새벽 4시든 5시든 정해진 새벽 시간에 일어나서, 일찍 모닝 루틴을 실천하는 것을 지속하는 챌린지다. 이를 더 디벨롭 시킨 것이 514챌린지다. 1020에게 갓생이 있다면 4050의 많은 참여를 유도한 514챌린지는 한 달에 14번 이상 5시에 일어나 새벽을 깨우는 인증 챌린지다. 4050 중에서도 특히 ‘나’를 잃었다고 느끼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나의 발전을 위해 쓰는 시간’을 가지게끔 유도하여 인기를 끈 모닝 챌린지 중 하나다. 인생의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에게 주는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성장가능성에 대한 열망을 챌린지로 만들어 습관화한 좋은 예시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대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한 챌린지 인증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514챌린지의 성공 요소는 나와 동류라고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의식이었다고 평가된다. 화상으로 새벽 5시에 만 명이 넘게 접속하는 모습을 보여준 514챌린지처럼, 꼭 만나지 않더라도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함께한다. 그리고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힘을 내며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학습하고 있다.
셋째, 루틴의 핵심 요소이자 방법론은 기록이다. 모든 도전이나, 루틴이나, 챌린지는 모두 기록될 수 있어야 하고, 기록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전하고 꾸준히 하는 모습을 매일매일 기록으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큰 성취감을 느낀다. 매일 남긴 기록들은 그렇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소중한 아카이브가 된다. 매일의 힘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취를 인증하는 방법들로 가장 좋은 것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기록이다. 최근에는 블로그가 다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블로그는 벌써 20년이나 된 소셜미디어다. 처음에는 정보공유를 목적으로 이용되던 블로그가 이제는 일기처럼 쓰이고 있다. 사진을 중심으로 나의 기록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라면, 블로그에는 자세하게 나의 루틴과 생활을 기록한다. 사진으로 기록하기 좋은 인스타그램은, 런데이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오늘의 기록을 바로바로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러한 기록들은 내가 얼마나 꾸준하게 임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도전을 지속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와의 약속을 공표함으로써, 도전이 힘들더라도, 매일 지속하는 것이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나를 향한 스스로의 칭찬이자 격려, 위로이고, 이는 나의 정서와 멘탈관리와 직결된다. 다른 일상의 우울함이나 힘듦이 있더라도 매일의 작은 성취감은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혼자 살고, 더 오래 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어떻게 잘 다독이며 살아갈 것인지다. 루틴을 만들고 기록함은 나에게 내가 주는 격려와 칭찬이다. 전 세대를 통틀어 좋은 습관과 루틴만들기를 통한 도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자기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도전이 비록 사소할지라도, 나의 생활을 더욱 단정히 하고, 나를 관리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의 인생을 이끌 수 있다면, 더 나은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기쁨일 것이다. 이러한 기쁨들이 모여 더욱 풍요로운 인생이 되는 것 아닐까.
이원희 『2023 트렌드 노트』, 『2022 트렌드 노트』, 『2020 트렌드 노트』, 『2018 트렌드 노트』, 『2017 트렌드 노트』 공저자.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데이터와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다. 일상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소중히 하는 라이프스타일 분석가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