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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CLOUD

무수한 점으로 만들어낸 신비로운 공간

조르주 쇠라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글 ·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 세종사이버대 교수
런던 내셔널갤러리를 찾는 방문객들은 43번 방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춘다. 이 방에 전시되어 있는 조르주 쇠라의 그림 ‘아스니에르의 물놀이’는 보는 이를 센 강변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신비의 세계로 데려가는 듯하다.

점묘법으로 완성된 쇠라의 그림들

그림을 그린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는 후기 인상파로 분류되는 화가이고 그가 즐겨 그린 주제들인 파리지앵의 휴일, 센 강의 풍경, 서커스 등은 기존 인상파 화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쇠라는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혁신적인 기법을 들고나왔다. 그는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어 2차, 3차 색을 만드는 기법을 거부하고 그림의 모든 면을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작은 점으로 찍어서 채워나갔다. 우리가 ‘점묘법’이라고 부르는 이 기법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듯, 엄청난 집중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방법이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완성된 쇠라의 그림들은 가까이서 보면 무수한 점의 조합이지만 멀찌감치서 보면 색점이 서로 섞이며 혼합되어 여러 가지 색으로 보인다. 팔레트에서 일어나던 색의 혼합이 우리 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쇠라는 점묘법을 사용해 세로 2m, 가로 3m에 이르는 큰 캔버스에 두 점의 대작,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와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렸다. 이 두 작품을 그리는 데에 쇠라는 거의 4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두 그림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풍경이나 사람보다는 묘하게 비현실적인 분위기 그 자체다. 영국의 철학자 조지 무어는 쇠라의 그림이 고대 이집트 벽화의 현대판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아스니에르의 물놀이>, 조르주 쇠라,
1884년, 캔버스에 유채, 201x301cm, 내셔널갤러리, 런던

그림 속에 드러난 당시의 사회상

아스니에르도, 그랑자트섬도 19세기 후반 센강의 인기 있는 유원지였다. 파리지앵들은 휴일에 이곳으로 와 수영을 하거나 강변에서 휴식을 즐겼다. 그러나 두 장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아스니에르는 센 강의 왼편에 있는 유원지였고 그랑자트섬은 센강 오른편에 떠 있는 작은 섬이어서 배를 타고 가야만 했다. 그랑자트섬에 가는 사람들은 뱃삯을 내는 데 부담이 없는 중산층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동자 계층은 뱃삯을 낼 필요가 없는 아스니에르를 찾았다. 그래서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확연히 다르다.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에는 간편한 복장의 남자들과 멀리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이 있다. 반면,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는 모자와 양산으로 치장한 세련된 여성들과 데이트 중인 연인들이 등장한다. 기묘하게 비현실적인 이 두 그림에서도 경제적 차등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니에르의 물놀이’가 신비롭게 보이는 이유는 비단 이 그림의 독특한 기법 때문 만은 아니다. 그림 속 인물 중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남자들인 그림 속 인물들은 잔디밭에 누워 햇볕을 쬐거나, 물속에 들어가 있거나, 아니면 모자를 쓴 채로 앉아서 멍하니 강을 바라본다. 인물들 사이의 리듬감은 섬세하게 계산된 결과임이 틀림없다. 그림 속의 세계는 휴일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이지만 표정 없는 인물들은 우울하리만큼 조용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센 강변이 아닌 어딘가 고차원적인 세계에서 자신만의 고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1884~1886년, 캔버스에 유채, 207.5x308.1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국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쇠라의 작품들

쇠라는 자신이 창안한 혁신적 기법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891년, 쇠라는 불과 서른한 살에 디프테리아로 요절했다. 피사로, 시냐크 등 몇몇 화가들이 점묘법 그림을 시도해 보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두 손을 들었다.

쇠라의 죽음과 함께 그의 이름도, 점묘법이라는 기법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1930년대 초반, 2만 달러라는 헐값에 미국인 수집가에게 팔렸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소장되어 있다. 그나마 ‘아스니에르의 물놀이’가 유럽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의 미술수집가인 새뮤얼 코톨드가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코톨드는 내셔널갤러리위원회에 이 그림을 사들이라고 설득했고 이 그림은 1924년 영국으로 건너와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 고흐의 ‘해바라기’와 함께 내셔널갤러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점묘법이 이어진 곳은 엉뚱하게도 산업의 세계였다. 컬러텔레비전 브라운관이 3원색의 색점을 통해 다양한 색을 구현하는 원리는 점묘법과 놀라우리만치 똑같다. 쇠라의 점묘법은 예술과 과학이 만난 지점이며 세계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미술이 상징적으로 받아들인 사건 같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쇠라의 그림이 1880년대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었다는 점이다. ‘아스니에르의 물놀이’의 오른편에는 손나팔을 모아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이 부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소년이 백사십 년 전 과거가 아니라 아득히 먼 미래에서 온 인물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친 억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