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야산(931m) 자락의 문경선유동은 고운 최치원이 신선처럼 거닐었던 곳이다. 고운은 봉암사에 드나들면서 가까운 문경선유동을 찾아 아홉 절경을 찾아 ‘선유구곡’을 새겼다고 한다. 출발점은 운강 이강년 기념관이다. 운강은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으로 동학농민운동과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주·가평·인제·강릉·양양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린 명장이다.
기념관 앞쪽으로 ‘선유동천’을 알리는 큰 비석이 서 있다. 이곳을 출발해 40분쯤 걸으면 선유구곡의 1곡인 안개에 싸인 바위, 옥하대(玉霞臺)가 나온다. 옥하대는 신선놀음의 시작점으로 절묘한 이름이다. 이어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희고 큰 반석 위에 올라선다. 수십 명이 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여기가 2곡 영사석(靈槎石)이다. ‘신령한 뗏목 바위’라는 뜻으로 반석을 뗏목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영사석을 지나면 시멘트 도로를 만나는데, 그곳 길섶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붙잡는다. 큰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쿡 찍어 놓은 듯하다. 이것이 ‘장군손바위’로 선유구곡에서 수련하던 선인의 자취라고 한다. 다시 계곡을 따르면 거대한 펜션 건물이 나타나 눈이 휘둥그레진다. 펜션 앞의 계곡이 3곡 활청담(活靑潭)이다. 긴 암반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휘파람을 불며 흘러내리는 듯하다.
펜션 앞의 다리를 건너 다시 계곡을 따르면 넓은 잔디밭이 있는 닫힌 집으로 들어선다. 잔디밭 앞에서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곡이 전부 반석인 4곡 세심대(洗心臺)가 여기다. 발 담그며 잠시 쉬었다가 가기 그만이다. 바위에 전서체로 쓰인 ‘洗心臺’ 글씨는 춤을 추듯 아름답다.
다시 길을 나서 우람한 소나무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5곡 관란담(觀爛潭), 6곡 탁청대(濯淸臺), 제7곡 영귀암(詠歸岩)이 차례로 나온다. 이어 오솔길이 끝나면서 다시 만나는 계곡은 온통 암반이다. 여기가 선유구곡의 하이라이트인 8곡 난생뢰(鸞笙瀨)다. 여울 흐르는 물소리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생황(笙簧)이 연주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8곡 위로 보이는 바위가 9곡 옥석대(玉舃臺). ‘옥 같은 돌’이란 뜻이 아니라 ‘옥으로 만든 신발’을 말하며, 이는 득도자가 남긴 유물이라고 한다. 옥석대 위쪽에 도암 이재(1680~1746)를 기리는 학천정(鶴泉亭)이 자리한다. 학천정뒤 바위에 새겨진 산고수장(山高水長) 글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학천정에서 20분쯤 더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벌바위골이 나오면서 걷기가 마무리된다.
높은 산꼭대기에 편안히 올라 백두대간 풍광을 즐기고 싶다면 단산 관광모노레일이 적당하다. 단산(956m)의 약 1.8㎞ 구간을 상행 35분, 하행 25분간 오르고 내리는 8인승의 느리고 깜찍한 모노레일이다. 평균경사 22도에 최고 경사는 45도에 이르다 보니 느려도 짜릿한 구간구간을 만나고, 사방으로 트인 통창 밖으로 조령산과 주흘산 등 백두대간의 명산이 쉼 없이 펼쳐지니 느려도 호탕하다.
상부 승강장에서 빤히 마주보는 언덕이 활공장이다. 단산 패러글라이더 체험은 워낙 인기가 좋아 가을까지 예약마감 상태다. 비록 체험은 못 하지만 대리만족을 즐길 수 있다. 마침 엄마와 딸이 체험을 준비하고 있다. 복장을 갖추고 강사와 함께 바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어느 순간 바람 한 가득 안고 부풀어 훌쩍 땅을 박차고 오른다. 그 순간이 이렇게 매혹적일 줄이야. 마음은 패러글라이더 따라 창공을 유영한다.
술향에 이끌리는 사람이라면 오미나라를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설립된 ‘오미나라’는 친환경 생산 농가와 연계해 오미자와 사과를 주원료로 한 토종 와인과 증류주를 만든다. 연간 사용되는 오미자와 사과의 양이 400톤 이상이라 하니,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바람직한 기업상이라 할 수 있겠다.
오미나라를 만든 사람이 ‘한국 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종기 대표다. 대한민국 1세대 양조대표로서 다수의 국산 명품 위스키를 개발하며 증류주 전문가로서의 일가를 이룬 이종기 마스터는 은퇴 후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우리 농산물로 세계적인 명주를 만들겠다’는 그의 집념은 오미자의 주산지인 경북 문경에서 결실을 맺었다. 술은 관능적 매력을 가져야 하며, 오미자의 색과 향기, 맛은 그에 적합했다.
와인 발효실과 병 숙성고, 증류시설 등을 견학하다 보면 막바지로 갈수록 술이 고파지기 마련이다. 대망의 시음장으로 들어서면 쾌재가 절로 난다. 세계 유일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오미로제 ‘연’으로 연을 맺고, 2022 한미정상회담 만찬주인 오미로제 ‘결’의 부드러운 결을 따라 25도 증류주 ‘문경바람’을 타고 이름도 예쁜 52도 ‘고운 달’에 착륙하면 어느새 볼 빨간 술꾼이 돼 있을 수도 있다.
선유동계곡은 선유동계곡 나들길 이정표를 따른다. 운강 이강년 기념관~학천정~벌바위 버스정류장, 5km 2시간쯤 걸린다.
문경단산관광모노레일 및 패러글라이딩 054-572-7273.
오미나라 054-572-0601
모심정(054-572-1846)은 가성비 좋은 한정식을 내놓는다. 하초동(054-571-7977)은 문경 대표 별미인 약돌돼지 고추장구이가 별미다. 새재식당(054-571-3766)은 다슬기 해장국이 시원하다.
문경온천 근처에 호텔과 모텔 등 다양한 숙소가 있다. 시설 좋은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054-559-2200)은 단체 여행객에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