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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카툰으로 보는 역사

끊임없이 도전한 거인
조선의 발명왕 장영실

글 · 박성일 일러스트 · 유남영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장영실(1390년경~?)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인 자격루를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인물이다.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조선 최고의 발명왕, 장영실. 재주 많은 종의 아들에서 종3품에 이른 그의 삶은 그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유교만이 세계의 질서로 여겨지던 시대, 조선. 천출로 태어나 평생을 노비로 살 뻔한 장영실 은 궁에 들어가 15세기 조선의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로 만들어 낸 천재 과학자였다. 실제로 장영실은 무언가를 만들다가 실패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는 동료가 망가진 기계를 수리하다가 실패했는지 한탄했다. 이때 장영실은 “내가 한번 해 볼게” 하며 기계를 손봤다. 장영실도 처음에는 동료처럼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다시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계를 완 벽히 수리했다.

“이걸 어떻게 해냈지? 자네 이 기계를 완벽히 수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실패해도 끊 임없이 도전했을 뿐입니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요.”

이처럼 장영실에게 포기란 없었다. 세종은 왕에 오르기 전부터 이런 장영실의 능력을 눈여겨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종이 장영실을 불러 말했다.

“짐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천문 관측기를 만들고 싶다. 네가 조선의 하 늘에 딱 맞는 천문 관측기를 만든다면, 농사를 짓는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나라에 큰 보탬이 될 터인데….”

장영실은 그길로 명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의 하늘과 딱 맞아떨어지는 천문 관측기인 ‘혼천의’를 만들었다. 세종의 총애를 얻은 장 영실은 이후 종3품 대호군까지 오르면서 많은 천문기구를 제작했다. 천문 관측기를 더욱 간 략하게 만든 ‘간의’, 청계천의 물 높이를 잴 수 있는 ‘수표’, 강수량을 알 수 있는 ‘측우기’ 등이 모두 장영실의 작품이다. 장영실의 도전정신 덕분에 조선의 과학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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