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 흐름은 수수께끼 같은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경기 흐름에 대해서 침체를 당연시하는 시각이 대부분이고 기대요인보다는 여러 가지 불안 요인들이 더 많이 부각되는 모습이지만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기대치(컨센서스)는 지난 12월 0.4%에서 최근에는 1.0%까지 올라와 있다. 중국은 반대로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가 연초 이후 매우 높고 이를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치도 지난해 3% 성장에서 5% 이상으로 크게 높아져 있지만, 아직까지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은 시장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면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경기 역시 헷갈리는 흐름은 마찬가지다. 수출 부진은 수치로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최근 발표된 1분기 경제성장률을 보면 여전히 견조한 내수소비가 우리 경제의 역성장을 막아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고 이번 주 발표된 4월 소비자 동향조사를 보면, 언론을 장식하는 불안한 헤드라인들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지수는 2개월 연속 상승하며 지난해 11월을 저점으로 상승 반전 흐름을 더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실제 경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경제를 기준으로 본다면 1년 동안 450bp 넘게 기준 금리를 올리고 여기에 더해(비록 지방은행이지만) 은행 파산 사태가 더해졌다면 대량의 실업 속에 미국 경제는 빠르게 경기침체로 빠져들고 인플레가 아닌 디플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시킨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이에 기인한 가계와 기업의 유례없는 초과 저축은 이 사이클을 팬데믹 이전보다는 훨씬 늦게 진행되도록 만들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연준과 시장참가자들의 괴리나 불확실성 역시 이에 기인한다.
중국 경기에 대한 것은 시차를 감안하지 않는 조급함이 실제 경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 봉쇄정책 완화 직후부터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는 계속 높아져 왔지만, 코로나 정책 변경이 실제 경제적인 수요 회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봉쇄정책이 완화된 직후에는 필연적으로 코로나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할 수밖에 없고 이 수치들이 안정권으로 접어들어야 사람들의 불안감도 낮아져 경제 활동을 본격화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확인했듯 정책 변경 후 이 기간까지는 3~4개월 정도 소요된다. 지난해 11월 말 중국 정책이 바뀌었음을 감안하면 실제 리오프닝 효과는 3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고 이를 지표로 확인하는 것은 4월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 효과 역시 4월 이후 본격화된다. 지난해 12월 중국은 중앙경제공작회의를 통해 경기부양정책으로의 선회를 언급했지만, 실제 집행은 3월 양회를 지나야 가능하다. 양회가 경제 정책 측면에서 보면 당해 성장률 목표치를 확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기 흐름은 최근 환율에 대한 우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기대보다는 우려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내용을 토대로 보면, 올해 우리나라의 경기 흐름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기대치가 0.4%에서 1.0%로 상향 조정되었고 추가 상향 조정 움직임에도 불구, 우리나라 올해 성장 전망치는 여전히 미국 성장률을 0.4%에 두고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중국 경제 효과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시각들은 아직 경기 변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지표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 경기의 본격적인 변화가 이번 2분기부터 본격화된다면 수출 지표를 필두로 한 우리나라 경제지표들의 변화 역시 이번 2분기 이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5월 이후 발표되는 지표를 보면서 기대와 현실을 맞춰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최근 이런 조짐을 우리는 기업체감경기지표(한국은행 BSI)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체감경기지표는 서베이를 통해서 작성되는데, 서베이 시점은 이벤트나 뉴스 흐름, 주가와 같은 가격변수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지표가 작성되기 전에 경기 흐름을 빠르게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유용성을 갖고 있어 대체로 작성 주체의 기대가 반영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기업체감경기지표의 변화를 산업활동 동향이나 수출입 지표와 같은 실물지표를 통해 확인하고 향후 경기 추세에 대한 심증을 굳히게 된다. 다만, 이 사이에 시차는 해당 기간 동안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짧게는 한두 달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분기 이상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기업체감경기지표 내에서 전망치와 실제치의 차이에 주목한다. 과거 흐름을 보면, 경기 상승기에는 대체로 기업의 전망치보다 실제 기업의 업황 판단이 높게 나오는 반면 경기 하락기에는 그 반대로 전망치보다 실제치가 낮게 나오는 경향을 보인다. 경기가 전환되는 국면에서도 비슷하다. 최근 주목되는 변화는 기업체감경기지표 흐름이 상승 반전하는 와중에 지난 3월 이후 실제치가 전망치를 연속해서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지표들의 흐름도 비슷한데 종합지표의 성격을 갖는 업황 BSI뿐만 아니라 매출이나 신규수주 등은 전망치와 실제치 모두 상승 반전된 가운데 실제치가 전망치를 상회하고 있다.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은 가동률이나 신규수주 항목은 전망치가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지만, 실제치는 상향 조정되며 전망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경기에 대해 여전히 불안해하고 이 때문에 잔뜩 움츠린 경영을 하고 있지만, 실제 장사는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불안요인은 여전히 지속 중이다. 지정학적 문제를 논외로 치면 금년 중 금융시장을 가장 크게 흔들고 있는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시작된 미국 중소형은행들의 파산 사태이다. 초기에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때와 같은 악몽을 떠올리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대두되었지만, 사태가 확산되지는 않았고 시스템 위기로의 전이 가능성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은 크게 줄었다. 지난 리먼 사태와는 부실화된 자산의 성격과 규모가 다를 뿐만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으로 자본건전성에 대한 기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미국 은행 산업의 유동성 및 위기대응 여력이 크게 향상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미 연준 및 정부의 매우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은행 사태는 지금 수준에서 빠르게 봉합되고 마무리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적인 파산 은행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고 위기설에 휩쓸리는 은행들은 지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불안은 지속되고 당분간 변동성도 높은 상태를 지속할 수 있다. 금융시장 내 파산 위험이 잔존하고 불안한 투자심리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상승시킴에 따라 기업이나 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번 실리콘밸리은행이나 크레디트스위스 사태가 미국이나 유럽 경제를 침체 쪽으로 더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안국면이 당분간 잔존하는 것은 금리 때문이다. 최근 금융시장 지표 중에서 아주 특이한 것은 앞서 언급한 은행권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금융위기 때와 비교할 때 비교적 안정적으로 움직이는데, 유독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보여주는 MOVE지표는 금융위기 수준까지 크게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MOVE지수가 상승한 것은 꼭 은행 파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을 보면 미 연준의 가파른 기준 금리 인상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번 미국 은행 파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투자자산이 가장 안전성이 높은 미국 국채임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에 따른 대규모 평가손이 문제가 된 유동성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결국 금리가 하락 국면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고 이는 결국 향후 미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에 달렸다.
다만, 이런 우려 때문에 그동안 가파르게 진행된 미연준의 금리 인상이 이번 2분기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아직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잔존하고 미국 노동시장의 과열도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미국 지방은행들이 높아진 금리로 인해 파산 위험에 몰리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은 금리 인상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3월 미 연준의 점도표나 5월 FOMC 결과 및 파월 연준 의장의 언급 등은 가까운 시일 내에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금리인상은 종료될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우선 외환시장의 큰 변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원화는 엔화 등 주요국 통화 대비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커지고 향후 경기침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통화는 미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으나, 원화는 1,300원 이상에서 절상되지 못하고 절하 흐름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미 달러의 독주는 지난해 11월 미 연준의 긴축 속도가 조절되기 시작하며 본격화되었는데 그 시점부터 올해 2월 초까지의 시기를 보면, 원화는 지금과 반대로 주요 통화 대비 미달러에 대해 훨씬 더 가파른 절상률을 보여준다. 규모의 변화는 조금 있겠지만 수출은 부진했고 무역수지도 적자를 지속하는 흐름이다.
환율을 단기적으로 끊어서 서로 변동 폭을 비교할 때는 펀더멘탈 구조와 같은 추세적인 요인이 반영되기보다는 단기적인 수급 요인이나 금융시장 가격지표의 변동과 같은 단기적인 변수들이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두 국면에 나타난 서로 다른 원화의 모습 역시 계절적인 수급이 만들어낸 영향이 크다는 판단이다. 기업들의 결산 월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된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나 3월과 6월에 몰려 있는 일본 등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12월에 결산을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계절적으로 4/4분기에 밀어내는 수출의 양이 많고 결산을 위해 환전되는 원화의 수요도 상대적으로 많아 4분기는 국제수지도 다른 분기보다 양호하고 환율도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구간이다. 반면 12월 결산 법인이 많다 보니 대부분 3월과 4월 초 주총을 하게 되고 4월과 5월 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지급된 배당금이 빠져나가게 됨에 따라 이 시기 국제수지는 약해지고 환율 역시 다른 달에 비해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경향을 띤다. 이번 역시 이 경우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계절성을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원화 환율의 기본적인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다. 지난해 11월에서 올해 2월 초까지 가파르게 하락한 향후 미국 기준 금리에 대한 기대치가 그대로 원화 강세로 연결되었다면 2월 2일 이후에는 과도한 기대를 되돌리려는 연준의 정책 결정과 코멘트로 인해 기준 금리 기대치가 다시 상승하고 원화도 다시 절하되는 흐름을 보인다. 절상 국면에서 절상폭이 상대적으로 컸던 만큼 되돌림 국면에서 절하폭 역시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3월 중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미국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치는 다시 완화되며 대부분의 통화는 절상 흐름으로 전환되었지만 우리나라는 배당금 지급 등 계절적인 수급 요인으로 이 반전이 지체되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시장 센티멘트는 5월 금리 인상을 마지막으로 연준의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은 마무리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미국 기준 금리에 대한 시장 기대치 하락이 더 가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5월 배당금 지출 요인이 소멸하고 미국 기준금리에 대한 기대치가 추가로 하락하면 원/달러 환율도 빠르게 되돌려질 가능성이 높다.
2분기 원화 강세의 또 다른 요인은 중국 경제지표의 본격적인 회복 가능성이다. 3월 이후가 시기적으로 ‘리오프닝’ 효과가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릴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Re-boost’가 본격화되는 시기이며, 여전히 미국에 비해 크게 높은 기여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경제가 지난 해에 비해 1.5%pt 정도 성장률이 낮아진다고 해도 중국 경제성장률이 1%pt 이상 반등하면 수출과 경제성장률 모두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지난해 3% 성장한 중국경제가 올해 5% 정도 성장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0.2%pt 가깝게 늘어난다. 올해 연간 중국경제성장률 컨센서스는 5%대 중반 수준으로 올라왔고 2분기 경제성장률 기대치는 8%에 육박하고 있다. 이 수치들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 미 달러 약세는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상대적으로 원화는 강세를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적인 환율 수준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보다 강세 폭은 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인 저평가 폭이 크기 때문이다.
주요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와 원/달러 환율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현재 원/달러 환율은 두 환율이 만들어낸 추세선에서 위로 벗어나 있다. 미 달러의 상대적인 수준 대비 원화는 저평가 영역에 있음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모수가 되는 달러 이외에 우리나라 통화가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 위안화 환율과 일본 엔화 환율과의 상대적인 위치를 비교해 보면, 미 달러와 비교해 볼 때보다 훨씬 더 저평가 정도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신용위험을 감안한 환율도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 은행권 불안 등의 요인으로 높은 변동성을 보여주고 미국 은행들의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CDS Spread는 이전보다 상승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나라 CDS Spread는 매우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1,300원 이상에서 형성되었을 때 우리나라 CDS Spread가 300~400bp 이상에서 움직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 대외신인도와 환율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크게 벌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나친 저평가는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빠르게 평균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현시점에서 환율 1,200원 선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저항이 크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원/달러 환율이 1달러 당 1,200원 선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