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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고 살지?”
은퇴 보릿고개 넘는
3가지 비법

글 · 이경은 조선일보 테크부 기자

매달 월급을 주던 직장을 그만둔다. 가진 재산이라곤 집 한 채. 국민연금은 10년 뒤에나 받는다. 50대 중반이 되면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다. “퇴직하면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아둔 재산이 없다면 퇴직 후엔 빈곤 노인, 노후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 과연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예비 은퇴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3가지 키워드를 소개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연금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선 노후에 현금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연금 중심의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연금으로 확보해 두는 것이다. 만약 퇴직 후에 월급이 끊긴 상태에서 연금이 부족해지면 그땐 노후 파산 위험이 닥친다.

그런데 한국은 부동산 선호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은 전체 가계자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에 달해 주요국 중 가장 높았다. 반면 연금(보험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10.8%에 그쳐 주요국 대비 최저였다.



주요국 가계자산 구성 비교 2021 기준. 단위: %



하지만 노년기 삶의 여유는 깔고 앉은 자산이 아니라 ‘현금 흐름’에서 나오는 법이다. 늙어서 현금이 나오지 않는 부동산은 영양가 없는 덩어리 자산일 뿐이다. 매달 월세가 들어오는 수익형 부동산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자산 대부분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몰려있다면 노후 준비 측면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만약 은퇴 후에 자산 구조가 부동산에만 쏠려있다면 세금과 관리비 부담만 클 뿐이고, 당장의 현금 흐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만족도는 떨어진다.

보유 자산의 연금화를 계획하고 있다면, 구체적인 상품으로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세액 공제 혜택에 과세 이연 효과까지 있어 유리하다. 운용 수익이 아무리 많아도 연금을 받기 전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으며,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으로 잡히지도 않는다. 단 은퇴 후 연금으로 받을 땐 연금소득세(3.3~5.5%)를 내야 하고, 수령액이 1년에 1,200만 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 대상이 된다는 점은 알아둬야 한다.



2023 달라지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납입한도




직장인들이 현직에 있을 때 연금을 더 쌓도록 유도하기 위해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부터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대한 절세 혜택이 늘어난 것이다. 세액공제 한도는 작년까지는 연 700만 원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나이나 소득 상관없이 연 900만 원이다.

이렇게 올해 900만 원 한도를 꽉 채워 납입한다면, 최대 148만 5,000원의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무계획 소비 습관은 버려라

“느닷없이 닥친 퇴직과 은퇴. 닥쳐 보면 평소 생각하곤 영 딴판이다. 정말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직장인의 돈과 인생은 은퇴를 전후로 색깔이 바뀐다. 현역 시절에는 회사에서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그 돈으로 생활하니까 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은퇴 시점이 임박해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략 현재 생활비의 70~80% 정도만 쓰고 살면 되겠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자금이 부족하다 싶으면 은퇴 전까지 자녀 지원을 최소화하고 집 평수를 줄이는 등 대책을 찾아야 한다.

소득 공백 시기에는 고정 생활비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출이 줄면 준비해야 하는 은퇴 자금도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이때 절약 기준은 ‘건강’이다. 건강에 지장이 되지 않는 비용부터 줄여나가면 된다. 식비를 아끼겠다고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난방비를 아끼려고 안방에서 추위에 떨어야 한다면 건강이 나빠져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수 있다.

통신비가 가장 절약하기 쉬운 항목이고, 의류비나 취미·오락비용도 아끼기 쉽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면, 캘리그라피처럼 돈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 시간은 많이 소요되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반면 식비와 수도·광열비, 교제비 등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 무리하게 아낄 필요는 없다.

퇴직하면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플 때를 대비하고 싶다면 보험 가입이 필요하다. 다만 오래 전에 가입한 보험 상품들은 만기가 75~80세로 짧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100세 만기 상품도 많이 나오지만, 예전엔 75~80세가 보통이었다. 보험 만기가 길지 않다면, 소득 절벽을 버티기엔 불안하다.

의료비는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 없고 또 한 번 발생하면 단기간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만약 가입 중인 실손보험 등 보험 상품 만기가 75~80세로 짧다면 더 늦기 전에 만기가 긴 상품으로 갈아타기를 고려해 보면 좋다. 의료비는 우상향 곡선, 노후 자금은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대략 72세 시점에 교차하게 되는데, 72세 이후 의료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해서 따로 준비하기보다는 보험 만기를 충분히 늘려 대비하는 것이 낫다.

다만 보장 내용이 예전보다 나빠졌거나 자기 부담금이 늘어나 불리할 수 있으니 갈아타기 전에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보험 통합 조회 시스템인 ‘내 보험 찾아줌’ 서비스에서 보장 대상 질병과 보장 금액, 만기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참고로 암과 치매는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시에 닥친다. 이 경우엔 간병 비용도 많이 늘어날 수 있다.



점점 늘어나는 1인당 진료비 65세 이상 기준. 단위: 원

※ 공단 부담금과 환자 본인 부담금을 합한 금액





건강보험료 출구 전략을 짜라

퇴직자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을 실감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건강보험증’을 꼽는다.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새 건강보험증이 자택으로 배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재산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해서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직장 가입자일 때는 회사에서 절반을 내주기 때문에 3.5% 정도만 내면 되지만, 지역 가입자가 되면 부담이 7.1%까지 증가한다.

자녀 직장보험의 피부양자로 얹힐 수 있다면 좋지만, 작년 9월 건강보험공단이 제도를 개편하면서 피부양자 유지 조건(소득 기준 3,4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하향)을 대폭 강화해서 힘들어졌다.

만약 건강보험료가 직장 다닐 때보다 크게 올랐다면, ‘직장가입자 임의계속가입제도’를 활용해 보자. 최대 3년간 이전부터 내던 직장보험료 수준으로 보험료를 낼 수 있게 해준다. 퇴직 전 18개월 이내 기간 중 1년 이상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유지했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퇴직 이후 최초로 지역가입자로 부과된 보험료 납부 기한의 2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다. 만약 퇴직 후 다음 달에 받은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가 직장에서 일하면서 부담하던 보험료보다 높다면, 주소지 건강보험공단 지사에 임의계속가입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건강보험료가 부담되어 직장가입자가 되고 싶다면, 1인 법인을 세우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즉 내가 스스로 법인을 세우고 나를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법인 대표로서 월급을 받으니. 직장가입자가 된다. 1년 이상 법인을 운영해 보고 폐업하더라도 향후 3년간 직장가입자 임의계속가입제도를 활용해 과거 직장가입자일 때 냈던 건강보험료는 유지할 수 있다.



점점 늘어나는 1인당 진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