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 ‘가을인가?’ 싶으면 낮의 볕이 따가운 9월 초. 해발 700m가 넘는 오대산 자락의 새벽은 15도를 조금 웃돌 뿐이었다. 대신 낮에는 25도를 훌쩍 넘으니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때다. 날마저 맑아 아침부터 하늘이 더없이 푸르다. 월정사를 지나 장승같은 전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달려 도착한 상원사탐방지원센터. 전설의 ‘716’이 다시 모였다.
“오랜만입니다. 산에서 뵈니 새롭네요. 우리 ‘716’, 함께 오대산 산행을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오대산에 오르기 위해 모인 ‘716’은, IBK인이라면 누구나 알 듯, 여신관리부의 코드다. 한 부서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뭉친 이들이 모였다. 혁신금융부 김민수 팀장, 가산패션타운 김태규 팀장, 창원상남지점 강경보 팀장, 남동2단지기업금융지점 김성호차장, 강남대로지점 김광우 차장, 일산마두지점 오정환 차장, 본부기업금융센터 김형래 과장, 인천동부지역본부 구현익 과장 등 8명.
인연은 8년 전에 시작되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며 죽이 맞아 어울렸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하나둘씩 부서를 떠나게 되었지만, 인연은 계속 되었다. 현재 ‘716’ 부서에 근무하는 이는 없지만 그때 어울렸던 이들은 아직도 ‘716’의 이름으로 모인다. 모여서 웃고 안부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되는법, 이들은 시절인연인 셈이다.
“이번 산행 코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상원사탐방지원센터고요, 적멸보궁을 거쳐 오대산의 주봉, 비로봉에 오르겠습니다. 해발 1,563m입니다. 적멸보궁까지는 완만해서 산책하 듯 걸으면 되고, 비로봉 직전 마지막 400m가 조금 가파릅니다. 비로봉에서 능선을 따라 상왕봉을 거쳐 북대 미륵암 방면으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오대산과 산행 코스를 설명한 건 김민수 팀장. 그의 배낭에는 귀여운 곰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굿즈인 ‘반달이’다. 반달이는 ‘레어템’이라서 입고 소식이 전해지면 곧바로 품절된다. 고로, 반달이가 달린 배낭은 ‘산 좀 탄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팀장 역시 아이들과 함께 전국의 국립공원을 찾곤 하는데 오대산 거쳐 이제 태백산만 더 오르면 제주를 제외한 21개 국립공원을 모두 탐방하게 된다. 사실, 오대산행에 8명의 인원이 모인 것도 김민수 팀장의 설명이 달콤했기 때문이다.
“오대산은 되게 완만하고 길이 좋아서 초등학생들도 다 갈 수 있어.”
상원사에서 중대 사자암을 거쳐 적멸보궁에 이르는 동안은 그 설명에 공감을 표하며 안부와 농담이 오갔다. 적멸보궁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비로봉을 향할 때는 조금 다른 대화가 오갔다. “이런 길을 초등학생들이 오른다고?” “애들이 더 잘 올라. 몸이 가볍거든.”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냐!” “초등학생도 간다고 했지, 쉽게 간다고는 안 했어.”
퀴즈. 최근 IBK산에서 소개한 소백산(6월호), 치악산(9월호)과 이번 오대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산의 정상에는 ‘비로봉’ 정상석이 있다. 주봉의 이름이 모두 비로봉인데, 비단 이 세 산뿐 아니라 속리산과 금강산, 묘향산 역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비로봉이다. 유명한 산이 이 정도라면 전국에 얼마나 많은 비로봉이 있을까.
비로봉은 불교의 비로자나불에서 가져온 이름인데, 박물관에 가면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 비로자나불이다. 불교의 여러 부처 가운데 비로자나불은 광명과 지혜를 가리키는데 불교를 믿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다. 모든 봉우리가 최고의 봉우리가 되고 싶었을까. 봉우리 이름은 사람이 짓기 마련이니, 어지러운 시절 평온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깃든 이름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도 비로봉에 올라 바라본 사방의 풍경은 비로봉을 최고의 봉우리로 기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길은 상왕봉으로 이어졌다. 어렵게 오른 봉우리를 내려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이 나타났고 곧이어 상왕봉(1,491m). 능선을 좀 더 타기로 한다. 키 작은 관목이 우거진 등산로를 타고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자 고갯길 안부, 북대삼거리다. 상원사로 내려서는 길은 북대삼거리와 조금 더 가서 만나는 삼거리 두 곳이다. 다음 삼거리에서 방향을 틀기로 하고 팀을 나누었다. 선발대가 서둘러 앞서갔고 후발대는 컨디션을 조절하며 산행을 이어갔다.
“정지, 정지! 백! 돌아가서 북대삼거리에서 내려설게요. 앞 삼거리에 하산로가 없습니다.”
산에서는 경로에서 벗어나는 걸 ‘알바(아르바이트)’라고 하는데, 있어야 할 등산로가 없어 물러나는 것이니 알바도 아니지만, 선발대는 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후발대에 미안하고, 후발대는 앞서 고생한 선발대에 미안하다. 선발대가 다시 후발대를 지나쳐 하산을 서두른다. 후발대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선발대가 먼저 도착해 차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절의 인연이 보여주는 팀워크고, 시시때때로 만나 죽을 맞춘 팀의 합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다른 산과는 조금 다르게 오대산에 깃든 암자들은 ‘중대’니 ‘북대’니 하는 이름이 붙는다. 비로봉 오르는 길에 거쳐 온 중대 사자암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미륵암이 자리잡고 있다. 짐작하다시피 오대산이라는 이름 역시 다섯 곳의 암자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산자락에 깃든 다섯 곳의 암자가 연꽃의 모양이라고는 하나, 연꽃보다는 연꽃잎에 가깝다 하겠다.
조선의 일곱 번째 왕 세조는 괴질을 알았는데 물이 좋다는 오대산을 찾아 멱을 감았다. 동자승 하나가 나타나 세조의 등을 씻어주었고, 목욕을 마친 왕이 말했다.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을 하지 말거라.” 동자승도 말했다. “왕께서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말을 마십시오.” 왕이 놀라 돌아보았지만 동자승은 사라진 뒤였다.
산행을 이끈 김민수 팀장, 동네 뒷산 오르는 듯 오대산 자락을 탄 김광우 차장부터 불편한 발목으로도 차분하게 산행을 마친 김태규 팀장과 묵묵히 그 곁을 지킨 김형래 과장까지 ‘오대산 716’의 모든 멤버는 기분 좋게 산행을 마무리했다. 사실, 불평이 농담처럼 오갔지만 해발 1,500m 이상인 산이라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참가한 산행이었는데, 산이 온화하고 멤버들이 좋아서 예상 혹은 걱정보다는 수월한 산행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그렇다고 다음 모임도 산행을 하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1년은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고.
김민수 팀장은 태백산을 바로 다음주에 오르기로 했고 다른 멤버들은 깜짝 놀랐으니 당분간 다시 산에 오르자는 말은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목을 타고 흐르던 땀방울과 그 열기를 식히던 골짜기와 능선의 바람, 허벅지의 기분 좋은 피로감이 일상의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면 누군가 “혹시 다음 달 가지산에 가실 분 계실까요?” 메시지를 공유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