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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BRIEFING 1

뷰티테크(Beauty Tech)로
무장한 파우더룸

글 · 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융합대학원장
2015년 작 영화 ‘인턴’에서 은퇴한 노인 벤(로버트 드 니로)의 인생 제2막을 열어준 것은 30대의 젊은 CEO 줄스(앤 헤서웨이)였다. 벤이 경력직 인턴으로 취업한 줄스의 회사에는 놀랍게도 에스테티션이 상주하고 있었다. 직원 220명 규모의 중소기업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에스테티션을 채용한 것은 당시로서도(미국사회 내에서도) 상당한 파격이었음에 분명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2023년의 줄스라면 어땠을까.

뷰티산업에 스며든 인공지능

은퇴한 70세의 경력자를 인턴으로 채용하고,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야근하는 말단 직원의 컨디션까지 직접 챙기는, 게다가 트렌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패션계 스타트업 CEO라면 당연히 사무실 한편에 최신 뷰티테크로 무장한 파우더룸 정도는 마련해두지 않았을까. 혹은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거점 오피스 등이 일상화된 ‘오피스 빅뱅*’의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여 직원 각자의 집 또는 직무 공간에 마사지건이나 안마의자, LED 마스크 등의 다양한 헬스·뷰티디바이스를 비치하도록 배려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자 각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한결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이전으로’라는 말에는 단순히 수치적 지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와 지향, 삶의 양식 등이 내포된다.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가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소비자 개개인의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한 분야의 특수성으로 인해 뷰티산업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온라인 유통이 활발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았었다. 그러나 매장을 방문해 직접 샘플 테스트를 해본 후에야 구매를 결정하던 소비자들의 신중한 구매 행동은 코로나 이후 자신과 비슷한 피부 고민과 니즈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온라인 사용 후기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간 축적된 개개인의 데이터들이 다른 사람의 경험치를 대체하기에도 충분할 만큼의 빅데이터로 활성화되었다는 방증이다. 인간은 더 이상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자신과 비슷한 피부 유형과 피부 고민, 취향과 기호를 가진 소비자를 발견하고 그의 우수한 경험 사례를 골라내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망망대해에서 사금석을 채취하듯 필요한 정보만을 속속 골라 눈앞에 대령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3(미래의창)’에서 언급한 2023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평생직장과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급여보다는 복지와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플랫폼 노동자, ‘긱 워커(Gig Worker)’가 대세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실큰 페이스타이트 브로즈
출처 : 실큰(www.silkn.co.kr)

개개인의 데이터들이 다른 사람의 경험치를 대체하기에도 충분할 만큼의 빅데이터로 활성화되었다.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하는 AI 테크

달라진 것은 유통구조만이 아니다. 비대면 소비문화의 확산은 그간 상용성을 확신하기 어려웠던 미래 테크놀로지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뷰티디바이스 시장이다. 지난해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8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뷰티디바이스 시장은 2018년 5,000억원, 코로나 발발 3년 차인 2022년에는 2013년의 약 20배에 달하는 1조 6,000억 원 규모로 성장에 가속도를 붙였다. 종류와 범위의 다양성, 기술력 측면에서도 최근의 뷰티디바이스 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하게 진화 중이다.

과거, 병원 혹은 에스테틱에서 시술용으로만 사용 가능했던 피부미용기기를 홈케어용으로 간소화시킨 뷰티디바이스는 밀접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피부과 시술과 에스테틱 서비스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호기심에 구매해 놓고도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화장대 구석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일쑤였던 아이템들이 물때를 만난 것이다.

흥미롭게도 뷰티디바이스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는 품목이 아니었다. 국내에 처음으로 뷰티디바이스가 소개된 것이 지난 2001년 뉴스킨이 갈바닉 마사지기를 론칭하면서였으니, 그 역사가 그리 짧다고만은 볼 수 없으나 이후로도 대부분의 뷰티디바이스 제품들은 일부 마니아층 외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편의성과 화장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던 피부 고민을 보다 적극적으로 케어할 수 있다는 효율성을 지녔음에도 일반 화장품에 비해 가격대가 고가인 점, ‘서비스받는 즐거움’과 피부과 시술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는 소비자 니즈를 수용하기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발발 이후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피부과나 에스테틱의 방문은 조심스러워진 반면 마스크의 장기 착용 등으로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는 인구는 늘어나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홈케어에 대한 니즈가 크게 증가한 덕이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2019년 임지선의 ‘안면용 뷰티디바이스 사용실태 및 만족도에 관한 연구’에서만 보더라도 코로나19 발발 이전 뷰티디바이스에 요구되는 기능은 탄력과 리프팅이 압도적이었고, 최근 칸타 월드패널 디비전 뷰티사업부가 발표한 뷰티디바이스 트래킹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40% 정도가 리프팅을 위해 뷰디티바이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는 2023년 3월 한국미용학회지에 게재된 김의형과 윤미영의 연구 ‘피부 상태에 따른 홈 뷰티디바이스 선택속성 및 구매 의도의 차이’에서는 환경 문제와 코로나19로 예민해진 피부를 케어하기 위해 뷰티디바이스를 구매하려는 20대의 니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뷰티기기 시장 규모

자료 : LG경제연구원

최근의 뷰티디바이스는 단순한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피부를
상태를 진단하고 그날그날 필요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보다
똑똑하게 진화하고 있다.




초개인화 사회를 향해 진화하는 뷰티디바이스

홈케어용 뷰티디바이스에 사용되는 에너지원으로는 전류, 진동, 초음파, 전자기파, LED 등이 있는데 이에 따라 그 종류와 기능도 구분된다. 먼저 미세전류와 초음파를 활용한 제품들은 통증이 없고 비침습적으로 함께 사용하는 제품의 원료를 피부 깊은 곳까지 침투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세전류를 활용하는 제품은 대체로 0.5~1mA의 미세전류를 피부에 흘려 극성을 발생시키고 이를 이용해 유효성분을 피부에 밀어넣거나 노폐물과 피지 등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초음파 방식은 20kHz 이상의 낮은 주파수 초음파를 피부에 조사해 세포막을 느슨하게 만들고 그 사이로 유효 성분을 침투시키거나 1~10MHz의 높은 주파수 초음파를 영역대별로 조사함으로써 진피, 피하, 근막층 등의 피부층을 타게팅해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타게팅한 피부층에 따라 근육 이완과 통증 완화, 지방분해, 탄력개선, 리프팅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LED는 자외선과 가시광선, 근적외선의 영역대별 빛파장을 활용하는 것인데 자외선은 피부 진정과 여드름 케어, 가시광선은 콜라겐 생성 촉진과 탄력, 적외선은 근육 이완과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20~20,000Hz의 진동을 활용한 제품은 주로 클렌징과 마사지에 활용된다.

최근의 뷰티디바이스는 단순한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피부 상태를 진단하고 그날그날 필요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보다 똑똑하게 진화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AI, IoT, 증강현실, 바이오 등 첨단기술이 적용된 뷰티디바이스는 보다 정확하게 피부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맞는 스킨케어와 메이크업법을 제안하는가 하면 개인의 유전자까지 분석해 피부에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유전적 변화를 미리 체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으로서는 대체 불능의 영역으로 보이는 뷰티서비스 특유의 심리적 커뮤니케이션이나 라포 형성과 같은 다양한 감성적 접근까지 가능한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뷰티디바이스의 혁신성이 의료의 영역으로 오인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환경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선을 정하는 것 역시 미래 뷰티테크의 세계를 향유할 인류의 몫이다.


페이스팩토리 링크샷 고주파기기
출처 : 페이스팩토리(face-fac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