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정신건강전문의 양재웅입니다. 현재 8년째 병원을 운영하며 진료하고 있습니다. 병원 외적으로는 4년째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코너 ‘깨끗하고 어두운 곳’ 게스트를 맡고 있고요. 정신건강전문의 양재진 형과 함께 유튜브 채널 <양브로의 정신세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서울시 홍보대사에 위촉되며 멘털 케어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편 2년 정도 출연하던 MBC every1 <장미의 전쟁>의 시즌 아웃으로 그동안 못했던 강연과 경제 공부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는 반려견을 키우면서 여러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 중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분들의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문제가 많았던 것 같고, 감염 그 자체적인 이슈로 인해 청결에 대한 강박증이 심해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기존과 달라지는 문화와 관계의 변화로 혼란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하루 종일 일상을 같이 보내야 하는 부부간의 갈등이라든지,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는 엄마들의 육아 고통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학교를 제대로 다녀보지 않고 원격 출석과 수업에 익숙해진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개학·개강 후 학교생활 적응을 어려워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 이렇듯 단절과 고립으로 인해, 기존에 없던 정서적 어려움이 많아진 가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단절의 당위성’이 주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상당수의 분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회식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간혹 ‘나는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확신을 강화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선택을 최고로 만들기 위한 자기최면 같은 노력인 것이죠. 어떤 결정이든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애초에 ‘후회가 전혀 없는 결정이란 것은 없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나 자신의 자책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다음번에 다가올 선택과 결정으로부터 회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하든 후회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절대고독’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효와 자식에 대한 애착을 비롯한 원가족의 중요성, 개인 이상으로 집단의 중요성이 너무 컸던 우리 문화권에서 익숙한 일이 아닙니다. 뇌에서 가장 많이 피로를 느끼는 활동이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중요하지 않은 결정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청바지에 검정 터틀넥을 교복처럼 입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또한 우리 뇌는 익숙한 걸 선호합니다. 효율성을 따져 기존에 하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려고 하면 역시 피로감을 느낍니다. 우리 뇌는 ‘결정’이라는 이 피로한 활동을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데, 오롯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야 하는, 익숙하지 않은 활동을 달가워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결정 과정에서 타인의 요구와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우리 문화권에서 훨씬 익숙하고 편한 길인 동시에 1차원적으로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식으로 자기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이라는 마음이 결국 나중에 큰 문제를 끌고 옵니다.
인생은 선택과 책임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어른스러워짐’이고요.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택과 책임에 익숙해지는 것, 다른 하나는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내용의 문장 같지만 생각해 보면 이 두 정의는 맞닿아 있습니다. 선택과 책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내 결정의 과정에서 타인의 바람이나 영향이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개인주의는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 ‘아싸’보다 ‘인싸’가 좋은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도 한몫합니다.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회사에서는 상사와 조직으로 확장되고, 사회에서는 친구, 언니, 형, 동생에게까지 확장되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선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에게 조금의 친절을 베푸는 것. 내 뇌에 피로감을 주더라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결과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길입니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결정과 책임지기를 반복할 때 인생을 억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후회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그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어른으로 살기 위한 두 가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내가 선택한 것들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많은 게 편해집니다. 예를 들어, 내 부모와 형제는 내 선택이 아니지만, 내 배우자와 자식은 내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정에서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우선은 결국 배우자와 자식도 타인이기 때문에 나와 경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 더 나아가 경계를 만들어서 나 자신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