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는 짧게는 3일, 길게는 한두 달 열어 이색 매장으로 이목을 끌고, 기업(브랜드)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지고 사라지는 임시 매장이다. 국내에서 팝업은 지난 2009년 유니클로·시리즈·구호 등의 패션 브랜드가 마케팅 수단의 임시 매장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온라인상에서 팝업창이 열렸다가 닫히듯, 한시적으로 열리는 매장이라는 의미다. 이후 10여 년, 현재 팝업은 패션을 넘어 식음료, 일상 용품, 심지어 아이돌 그룹, 기업 홍보에까지 활용되는 중요한 마케팅 도구가 됐다.
팝업 흥행을 뒷받침한 것은 소셜 미디어와 20·30 젊은 세대다. 어딘가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유튜브 등에 올릴 콘텐츠가 필요한 20·30세대가 단골손님이다. 팝업을 내면 이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주니 기업 입장에서는 훌륭한 홍보가 된다. ‘팝플레이스’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젊은 세대들이 팝업을 핫플레이스처럼 여긴다는 의미다. 이런 팝플레이스는 정해진 기간에만 열리는 ‘한정판’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이른바 ‘핫플 도장깨기’를 하듯 입소문 난 팝업을 순회하며 돌아다니는 젊은 층도 많다.
이노션 인사이트 전략본부에 따르면 ‘팝업스토어’ 키워드 언급량 추이는 지난 2011년 9,801건에서 2018년 15만 4,666건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잠시 주춤했다가, 2021~2022년 사이 115만 801건으로 회복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는 ‘팝업스토어’ 해시태그(#) 게시물이 47만 개 올라와 있다. ‘플레이스 아카이브’, ‘헤이팝’ 등 매번 바뀌는 팝업 스케줄을 알려주는 팝업 알리미 계정도 등장했다.
팝업은 잘 설계하면 밀도 높은 브랜드 경험 공간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진다. TV에 송출되는 광고가 대중들을 대상으로 약 30초 동안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작업이라면, 팝업은 길게는 한 시간씩 머물면서 브랜드의 A부터 Z까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팝업은 쿠팡·컬리·네이버 등 온라인 쇼핑 시대의 역설이다. 온라인으로 충분히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외려 오프라인 팝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의미에서다. 사실 최근 들어 오프라인 매장의 필요성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것을 조달할 수 있는 지금, 쇼핑 공간으로서의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도는 떨어졌다. 하지만 매출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는 데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이 있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줄 수 없는, 실제 손에 잡히는 생생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팝업은 작게 열어 신속하게 메시지를 던지고 사라지기에, 시시각각 빠르게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면 쉽게 잊히는 디지털 시대에 적합하다. 대형 오프라인 팝업은 길거리에 설치된 ‘옥외 광고’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성수동에 들어선 첫 명품매장으로 화제가 됐던 명품브랜드 ‘디올(Dior)’이 대표적이다. 주차장 부지에 임시 건물을 세우고 팝업 매장을 연 디올은 성수동에 오면 꼭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가 됐다. 실제 안에 들어가는 사람보다 밖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더 많다. 업계에서는 수십억 원의 예산으로 수천억 원의 광고 효과를 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야 하는 백화점도 팝업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팝업의 명가’로 불리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경우 지난해에만 250여 회 팝업을 열었다. 최근에는 특정 브랜드보다는 주로 슬램덩크(만화), 데못죽(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웹툰), 유튜버 다나카, 트로트 가수 영탁 등 캐릭터(지식재산권·IP)를 활용한 팝업으로 대중적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팝업은 기존 백화점 고객이 아닌, 젊은 신규 고객을 끌어모으는데 효과적이다.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MZ세대를 타깃으로 해 그동안 백화점에서 놓치고 있었던 젊은 고객을 새롭게 충성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팝업 매장 자체만이 아니라 인근 매장으로의 트래픽 유도에도 효과적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경우 팝업 인근 매장의 매출이 일반 백화점 대비 최대 7배까지 늘어났다.
극단적으로는 미래에 팝업으로만 채워진 백화점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설 매장을 열어 꾸려가는 데 비용이 점점 늘어가는 지금, 위험 회피를 위해서도 팝업이 더 유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배리 스카디나 미주지역 리테일 부문 총괄은 최근 인터뷰에서 “팝업스토어는 저비용과 저위험으로 시장과 제품을 테스트하는 데 탁월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오프라인 팝업이 흥행하면서, 리테일 업계뿐만 아니라 부동산 업계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실제로 팝업이 가장 빈번하게 열리는 서울 성수동 인근 부동산에서는 임대 대신 ‘팝업’, ‘대관’ 등의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달에 작은 브랜드까지 더하면 100여 개의 팝업이 들고 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성수동의 하루 대관 비용은 10평 기준 100~150만 원을 호가한다. 장소와 브랜드마다 조건이 달라 특정하긴 어렵지만, 일주일에 30~50평 정도의 공간을 쓴다고 했을 때 보통 3,000~5,00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팝업 수요가 늘면서 건물주들도 임대보다는 팝업을 선호하는 추세다. 아예 임대가 아니라 팝업으로만 건물을 돌리는 케이스도 많다. 월세 대비 수익이 높고,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제약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팝업은 임대차가 아니라 사용대차계약으로 임시 사용 계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팝업은 마케팅 비용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세를 베이스로 하기보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가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동네에 원하는 공간이면서, 짧게는 2~3일 잠깐 필요한 공간이므로 임대료의 두배 혹은 세 배를 줘서라도 진행한다는 얘기다.
팝업 전문 공간도 생겼다. 성수동 카페 ‘오우드’, ‘센느’ 등은 평시에는 카페를 운영하지만, 대부분 기간 공간대여 형태로 팝업을 유치하는 전문 팝업 공간이다. ‘베이직 스튜디오’, ‘칸’ 등 아예 전문 공간대여 업체들도 많다. 아예 팝업 공간을 임대한 뒤 이를 대여해 주고, 팝업의 기획과 운영까지 도맡는 팝업 중개 플랫폼들도 성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렌트’, ‘스위트 스팟’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팝업만을 위한 건물들이 늘면서 부작용도 나온다. 팝업·대관 현수막을 붙인 채 비어있는 건물이 일상화되면서 거리가 썰렁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집 건너 한 집이 팝업인 성수동은 언제 가도 ‘공사중’인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팝업 비수기인 겨울철에는 거리가 유난히 비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테일 전문가들은 짧은 기간 들고 나는 매장들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자라면서 거리의 색을 만드는 앵커 스토어가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해당 거리에 만들어지는 팝업도 어느 정도의 집객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