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초원은 지평선을 끌어안을 듯 아득하다. 양고기의 향을 다스리는 ‘쌉싸울 나무’만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다. 알마티에서 차량을 이용해 동쪽으로 200여㎞, 황무지의 외딴 길목에 차른 협곡은 신기루처럼 자리했다. 협곡은 카자흐스탄 여행의 버킷리스트에 주요하게 등장한다. 기암괴석의 광활한 지형은 ‘중앙아시아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별칭을 지녔다.
차른 협곡은 수백만 년 세월 동안 강의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됐다. 주름 깊은 사암 군락인 캐슬밸리를 포함해 수십㎞ 협곡이 차른 강을 중심으로 곳곳에 이어진다. 가파른 골짜기의 높이는 300m에 달하는 곳도 있다.
검문소가 들어선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면 차른 협곡초입과 연결된다. 트레킹 루트는 협곡 위를 잇는 길과 한때 강줄기였던 협곡 아래를 걷는 캐슬 밸리 코스로 크게 구분된다. 어느 곳을 택하든 협곡이 빚어낸 기기묘묘한 지형을 눈앞에서 마주한다. 좌우에 병풍처럼 도열한 기둥과 바위들은 낙타, 독수리, 버섯 등 이채로운 모양을 지녔다.
차른 협곡의 대표격인 캐슬 밸리 코스의 총길이는 약 4㎞가량 된다. 20~30m 높이의 우뚝 솟은 바위가 걷는 길 내내 동행이 된다. 협곡의 폭은 옛 강줄기를 강변하듯 좁아졌다 넓어지기를 반복한다. 발밑을 감싸는 돌 부스러기들이 메마른 대지를 걷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거대한 바위 군락에 현혹돼 걷다 보면 트레킹의 클라이맥스인 바위터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쏟아져 내린 큰 바위들이 만들어낸 구멍은 소형트럭이 간신히 지나도록 아슬아슬하다. 눈을 돌리면 협곡의 낮은 땅에는 그들만의 삶의 온기가 스며있다. 차른 협곡 주변에는 수백 종의 식물과 독수리, 산양, 여우 등이 서식한다. 초원 속 거친 땅에 기댄 생명들은 갈증 나는 길의 소중한 반려자다.
2시간가량 진행된 하이킹은 차른 강을 만나며 긴 호흡을 정리한다. 고요한 강은 주름 짙은 암봉을 배경으로 청아하게 흐른다. 여행자들은 강물에 발을 담그고, 반전의 순간에 한동안 매료된다.
차른강을 기점으로 트레킹은 다양한 형태로 전이된다. 강 옆 오두막은 오붓한 소풍공간이다. 국립공원 보존을 위해 물과 음식을 판매하는 별도의 가판대는 없다. 되돌아오는 길은 걷는 대신 소형트럭을 이용할 수 있으며, 차른 협곡 조망 포인트가 위치한 윗길을 택할 수도 있다. 가파른 샛길을 따라 벼랑 위에 오르면 억겁의 바위 군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차른 협곡을 심도 깊게 즐기려는 여행자들은 다양한 체험에 도전장을 내민다. 차른강에서는 여름, 가을 시즌 협곡 래프팅이 진행된다. 캠핑을 하거나 전통가옥인 유르트에 묵으며 초원 위 별을 보며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국립공원의 협곡은 캐슬 밸리 루트 외에도 테미르릭 협곡, 우즌블락 협곡, 베스타막 협곡 등과 연결된다. 별도의 사륜구동 차량으로 이동한 뒤 인적 드문 오붓한 트레킹이 가능하다. 차른강과 협곡의 탁월한 조망 포인트인 블랙 밸리 역시 스텝의 지평선과 어우러진 아득한 풍광을 연출한다.
차른 협곡 하이킹은 톈산산맥에 기댄 호수들을 만나며 더욱 무르익는다. 협곡과 알마티 사이, 호수를 간직한 국립공원들과 연결된다. 카인디 호수는 옥빛호수 속에 고목들이 담긴 풍경이 아름답다. 1911년 지진으로 형성된 담수호는 줄기와 잎을 잃은 가문비나무 군락을 호수에 담았다. 숲속 카인디 호수까지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승마 하이킹이 가능하다. 만년설이 녹아내린 콜사이 호수는 3개의 호수가 해발 1,800~2,600m에 걸쳐 단계별로 이어져 있다. 마지막 호수까지 고산지대를 왕복해 걸으려면 하룻밤 묵는 일정이 소요된다. 호수 주변에는 위구르족이 살며, 유르트 가옥들이 마련돼 있다.
거점 도시 알마티로의 귀환은 다채로운 삶과 만나는 시간이다. 70년간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티는 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알마티의 해발고도가 평균 900m. 도시 주변으로는 만년설을 간직한 톈산산맥이 드리워져 있다. 숙소에서 눈을 뜨거나, 도심 어느 거리를 활보해도 눈 덮인 톈산산맥이 동행이 된다. 톈산산맥 너머가 바로 중국 우루무치 지역이다. 중앙아시아를 가르는 실크로드는 알마티를 거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부하라까지 이어진다.
톈산과 알마티 도심이 어우러진 풍경을 조망하려면 꼭토베 타워에 오른다. 알마티의 ‘남산타워’격인 꼭토베는 시민들에게 유희의 공간이다. 미니 동물원과 대관람차가 있고, 곤돌라가 웃음을 실어 나른다. 석양이 아름다운 꼭토베에서는 해가 지면 댄스파티가 열린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대국인 카자흐스탄은 130여개 다민족 국가로 러시아, 이슬람계, 위구르족, 고려인까지 다채롭다. 알마티 최대 전통시장인 ‘질료니바자르’를 방문하면 폭넓은 민족과 종교를 지닌 그들만의 문화가 낱낱이 드러난다. 소, 양, 말, 닭고기 외에도 코너 한편에서 돼지고기를 거래하며 당근김치, 김밥 등 카레이스키(고려인) 반찬을 판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이방인을 낯설게 대하지 않는다. 환대의 뜻을 지닌 바삭바삭한 ‘바우르삭’ 빵도 한번 쯤은 맛보게 된다.
알마티 도심 거리는 공원과 숲이 함께 한다. 중심가인 아르바트를 나서면 중앙박물관까지 숲길이 이어지고 질료니 바자르는 판필로프 공원으로 연결된다. 판필로프 공원의 젠코프 성당은 중앙아시아의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목조건축물로 추앙받는다. 1887년 지진을 견뎌낸 성당은 주변을 장식한 꽃들만큼 색의 조화가 눈부시다.
알마티 외곽에서는 톈산산맥의 만년설을 간직한 침불라크(2,300m)와 조우한다. 중앙아시아 최대 스키장인 침불라크는 여름, 가을에도 곤돌라로 올라 설원을 만날 수 있으며, 침엽수림 사이를 하이킹하는 체험이 가능하다.
차른 협곡의 대표 루트인 캐슬 밸리 코스는 약 4㎞가량 이어진다. 국립공원 주차장을 기점으로 편도 약 2시간, 왕복 4시간이 소요되며 돌아올 때는 소형트럭을 타거나 협곡 위 길을 택할 수 있다. 협곡 초입의 계단길을 시작으로 성곽처럼 펼쳐진 캐슬 밸리 군락, 바위터널, 차른 강 등을 경유한다. 트레킹은 4~6월, 9~10월이 적기이며, 트레킹 중간에 햇빛을 피할 공간이 부족해 넉넉한 물과 모자를 챙겨야 한다. 밤에는 기온이 낮게 내려간다.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 ‘Tary’ 레스토랑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알마티에서 차른 협곡을 둘러보는 별도의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