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BK 컬쳐

발길 닿는 길(국내편)

민족의 영산에서 맞는
장대한 운해 일출

지리산
노고단 트레킹

글 · 사진 진우석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올여름은 유난히 뜨겁고 비가 많이 내렸다. 그러나 날씨는 절기를 거스를 수 없는 법. 시나브로 하늘이 넓게 열리면서 가을이 찾아온다. 이때 높은 산에 오르면 여름이 가을로 바통을 넘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고단은 지리산 코스 중 난도가 가장 낮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노고단 꼭대기에서 신라 시대의 화랑,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호연지기를 길러보자.

노고단의 운해 일출. 해는 지리산 능선에서 떠오른다. 가을철 노고단에서는 운해를 만날 확률이 높다.


지리산 코스 중 가장 쉬운 노고단 트레킹

거대한 산국(山國) 지리산의 등산로는 거미줄처럼 많다. 지리산 대표 코스는 산행의 꽃으로 꼽는 주능선 종주다. 노고단~천왕봉까지 25.5㎞에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은 단일 산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높은 등산로다. 오르내리는 것까지 계산하면 총거리는 40㎞가 넘으며 2박 3일 걸리는 대장정이다. 성삼재를 들머리로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지리산 등산 코스 가운데 가장 쉽다. 성삼재 해발고도가 1,102m이기 때문에 절반 이상을 거저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가을철의 노고단 일출은 천왕봉 일출을 능가한다. 운해 덕분이다. 특히 가을철에 운해가 장관이라 놓칠 수 없다. 문제는 구례에서 출발하는 성삼재행 3시 50분 첫차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다행히 동서울터미널에서 23시에 떠나는 심야버스가 있다.

뒤척뒤척 쉽게 잠들지 못하는 심야버스는 노곤하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밤 풍경이 평화롭다. 잠시 졸았다가 깨니 버스는 힘차게 구불구불 이어진 성삼재 산악 도로를 오르고 있다. 컴컴한 성삼재에 내리자 한기가 덮친다. 옷을 껴입고 헤드랜턴을 켰다. 행장을 차리고 힘차게 스틱을 켜고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이 사라지자 어둠과 나뿐이다. 꼭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다. 옛 기억들이 떠오른다. 서울역에서 마지막 밤 기차를 타고 구례로 향했던 기억, 1990년 초반 지리산 능선에서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눈물 흘리며 올랐던 기억 등등. 그 시절 젊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자 산꾼 한 무리가 지나간다. 그들이 켠 랜턴이 도깨비불처럼 움직이면서 빛의 터널이 만들어진다. 어둠을 뚫고 전진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20분쯤 가면 갈림길을 만난다. 올라갈 때는 계단길, 내려올 때는 평지인 편안한 길을 추천한다. 나무 계단과 돌계단을 번갈아 오르면, 대망의 노고단대피소에 닿는다. 대피소 옆에 식당 공간이 있다. ‘밥 짓고 나누어 먹는 곳’이란 현판이 재미있다. 여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체력을 보충한다. 대피소에서 노고단고개는 불과 400m. 시나브로 견고한 어둠의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노고단고개에 오르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운해다. 구름바다를 뚫고 ‘지리산 엉덩이’로 부르는 반야봉이 우뚝하다. 구름이 자꾸 반야봉을 타고 넘는다. 구름이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노고단고개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탐방은 사전예약제를 운영한다. 미리 예약하면 보내준 QR코드를 찍고 들어간다. 나무 데크를 따라 오르는 길이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다 보면 대망의 노고단 꼭대기에 올라선다. 해가 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노고단 아래는 온통 구름바다다. 다행히 지리산 주능선 쪽은 구름이 없다. 멋진 일출이 펼쳐지리라.

노고단대피소에서 돌계단을 오르면 조망이 열리면서 노고단고개가 나온다.
노고단의 마고할미탑. 탑 위로 푸르른 가을 하늘이 펼쳐진다.


무넹기 전망대, 화엄사와 섬진강 조망 일품

반야봉 오른쪽 멀리 천왕봉의 머리가 살짝 보이는 데, 그 오른쪽이 제일 붉다. 시나브로 어둠이 사라지고, 지리산 능선을 뚫고 붉은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지리산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최고로 치지만, 운해 속에 펼쳐지는 노고단 일출도 뒤지지 않는다. 해가 뜨자 구름은 더욱 요동친다. 아~ 과연 노고단! 이런 장관을 만날 수 있어 황홀하다.

해가 뜬 이후에는 널찍한 데크에 누워 하늘을 우러렀다. 맑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가을 기운은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뜨겁고 비 많은 여름을 보냈기에 가을이 더욱 반갑다. 노고단에는 돌을 쌓아 만든 거대한 마고할미(노고할미)탑이 우뚝하다. 마고할미는 우리 신화에서 세상을 창조한 여신을 말한다. 그 여신을 지리산에서는 ‘마고할미’라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설문대할망’으로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노고단에 마고할미가 산다고 생각했기에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노고단에 한참을 머물다가 내려왔다. 노고단고개에서 산길은 지리산 주능선이 이어진다. ‘지리산의 엉덩이’라고 불리는 반야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저 문을 통과하면 능선 따라 반야봉과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종주는 다음 기회에 미루고, 성삼재로 내려간다. 하산은 계단길보다 걷기 쉬운 평지 길을 따른다.

풀섶에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가을을 재촉한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듣기 좋다. 무넹기 전망대는 꼭 들러보자. 지리산의 수려한 산세 속에서 지리산이 품은천년 고찰 화엄사와 섬진강이 한눈에 보인다. 설렁설렁 완만한 산길을 내려와 성삼재에 닿으면서 노고단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과연 산은 지리산이다.

노고단에 오른 유치원 아이들. 노고단 코스는 유치원 아이들도 오를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다.
가을의 전령인 벌개미취가 길섶에 가득 폈다.

무넹기 전망대에서 본 섬진강. 구례 들판을 적시며 유장하게 흐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지리산 노고단 가이드

성삼재~노고단 코스는 왕복 약 6㎞,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코스가 단순하고 길이 잘 정비되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노고단고개~노고단 정상 구간은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사전 예약해야 한다. 좀 더 길게 산행하고 싶으면 주능선을 타고 뱀사골로 내려온다. 성삼재~노고단~뱀사골, 거리는 약 18㎞, 9시간쯤 걸리는 힘든 구간이다.

교통

노고단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23시 출발하는 성삼재행 심야버스를 타야 한다. 구례공용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 가는 버스는 주중(월~목) 9:00, 14:20, 주말(금~일)은 8:40, 10:20, 14:20, 16:20 운행한다.

맛집

구례는 들판이 넓은 데다 섬진강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먹거리가 풍부했다. 전통적으로 산채정식을 잘하는 집이 많다. 화엄사 입구 예원(061-782-9917)은 지리산 산나물이 가득한 밥상을 내온다. 구례 시내 서울회관(061-782-2326)은 반찬 40여 가지의 산채정식을 내온다.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