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술 한 잔이 생각나는 저녁이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동료든, 친구든 누군가와 함께 퇴근 후 즐기는 한 잔의 술은 우리 삶의 낙이자 위안이다. 하지만 오늘은 술 한 잔을 마시는 대신 술을 직접 빚어보기로 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라는 전통주 막걸리. 요즘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전통주를 직접 만들어 먹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금호동지점 직원들이 오순도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업무 공간이 아닌 낯설면서도 색다른 공간이 선사하는 설렘에 직원들의 표정이 한껏 밝았다. 오늘의 원데이 클래스 신청자는 이영주 대리다. 그녀는 “팀장님, 동료들과 함께 이색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직접 술을 빚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라며 신청 계기를 전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양조장 집 며느리답다!”며 엄지를 세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강사가 전통주 한 병을 가져와 선보였다. 강사는 “빚을 술의 맛과 향이 비슷해 먼저 음미해보고 수업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쌀뜨물처럼 뽀얗고 맑은 술이 잔에 담겼다. 직원들이 잔을 모아 건배를 했다.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마치 소믈리에처럼 진지했다.
맛있는 술로 목을 축였으니 이제 직접 술을 빚어볼 차례. 앞치마를 두른 후 손을 깨끗이 씻고 술 빚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전통주의 기본 재료는 쌀, 누룩, 물이다.
이번에 빚을 술은 가양주 중에서 이양주다.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 상당수는 가양주로 만들어졌다. ‘집가(家)’에, ‘빚을 양(釀)’에, ‘술 주(酒)’이므로 ‘집에서 빚는 술’이라는 뜻이다. 이양주는 ‘두 번 빚는 술’이란 뜻으로, 밑술에 덧술을 더해 만든 술을 말한다. 효모증식이 목적인 밑술과 알코올 생성이 목적인 덧술은 전통주의 가치와 품질을 향상시켜주는 대표적인 술빚기 형식이다.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한 차례 발효시키면 단양주라고 합니다. 이 술에 쌀과 누룩을 더해 다시 발효시키는 것을 덧술이라고 하는데요. 덧술을 한 차례하면 이양주, 두 차례 하면 삼양주, 다섯 차례를 하면 오양주가 됩니다.”
강사는 전통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곡식과 누룩, 물이 섞여 끓어오르는 현상을 보고 ‘난데없이 물에서 불이 난다’는 ‘수불’에서 파생했다는 술의 어원부터 청주와 막걸리 등 전통주의 종류, 전통주에 들어가는 누룩 등에 대한 설명은 이색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
본격적으로 술을 빚는 방법도 소개되었다. 직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밑술은 36시간 전에 만들어 놓아야 해서 제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먼저 쌀가루를 채에 쳐서 곱게 걸러줍니다. 100℃ 이상 팔팔 끓인 수돗물을 쌀가루에 부어 잘 섞어주세요. 이를 범벅이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 실온에서 30℃ 이하로 식혀줍니다. 그리고 누룩을 넣고 다시 잘 섞어주세요. 누룩은 통밀, 쌀 등으로 만든 전통 발효제로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가 들어 있어요. 제가 사용한 누룩은 ‘진주곡자’입니다. 마지막으로 깨끗이 소독한 항아리에 넣고 입봉합니다.”
강사가 밑술이 든 두 개의 항아리를 가져왔다. 직원들이 “와~”라는 감탄사를 연이어 연발했다.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항아리를 열어 살펴보았다. 술 내음이 공기 속으로 금세 퍼졌다. 당화가 진행된 밑술은 마치 식혜 같은 모습이었다
직원들의 체험은 밑술을 망에 걸러내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커다란 항아리를 들고 밑술을 붓는 류지공 팀장과 장선웅 대리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항아리를 든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강사는 걸러진 밑술을 여섯 개의 그릇에 나눠 담았다.
다음 순서는 쪄놓은 고두밥을 식혀줄 차례. 고두밥은 손등을 댔을 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식혀줘야 효모가 죽지 않는다. 그런데 이 또한 주걱을 이용해 밥을 일일이 뒤집어가면서 작업해야 한다.
“전통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렇게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줄 몰랐어요. ‘그동안 술을 참 쉽게 마셨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이렇게 정성이 가득 들어가니 우리 전통주의 맛의 깊이가 남다를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안설희 과장의 말에 직원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빵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서비건 대리는 “빵을 만들 때도 효모를 넣는데, 전통주와 빵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작업하면서 느낀 점을 직원들에게 전했다. 류지공 팀장은 직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저 유쾌하고 즐겁다.
“근무할 때도 에너지가 가득한 금호동지점인데, 지금은 그 에너지가 두 배는 더 되는 것 같아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이런 시간을 가지면서 힐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두밥을 다 식혔으면 밑술에 넣고 밥알이 으깨지지 않게 손으로 잘 저어준다. 손으로 직접 저어주니 ‘손맛’까지 듬뿍 담기는 작업이다. 강사가 여섯 개의 항아리를 준비했다. 항아리에 술을 70%까지 붓고 뚜껑을 닫았다.
“내일은 골고루 한 번 저어주세요. 그리고 10일 정도 발효 후에 상태를 한번 확인해주세요. 술이 잘 발효됐으면 거르면 돼요. 거른 술은 ‘원주’라고 하는데, 도수가 높다 싶으면 술을 섞어 마셔도 됩니다.”
직원들은 끝까지 강사의 설명에 집중했다. 질문도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항아리를 꾸며주는 작업이 진행됐다. 직원들은 빚은 술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빚은 날짜를 적어주면서 10일 후에 만나게 될 술에 대한 기대감을 항아리에 듬뿍 담았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오늘 정성을 가득 담아 빚은 술이 잘 익어서 술이 ‘술술’ 넘어가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