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끄트머리에서 봄이 곧 올 거라 말하는 동백이 척후병이라면, 아직 쌀쌀할 때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와 산수유는 봄의 전령이다.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게 벚꽃이라면 봄의 절정은 역시 연분홍 진달래다. 노랑의 개나리와 함께 주택가와 도심의 공원부터 오지의 산자락까지 봄으로 물들이는 건 개나리와 진달래다. 진달래를 닮은 철쭉은 6월, 곧 여름이라는 자연의 메시지다.
한 주가 지나 주말로 접어드는 금요일 밤. 자정을 조금 앞둔 시각, 배낭을 맨 이들이 을지로 본사에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꽃 보러 산에 가기 위해서다. 진달래가 한창이라는 대구 비슬산을 향해 50명 가까운 인원을 태운 두 대의 버스가 출발한 건 밤 11시 40분.
봄의 절정을 사무실과 집에서 뉴스로 접하기는 아쉬워 IBK人들과 함께 떠났다.
“지난해 4월에 혼자 비슬산 갔을 때 진달래 가득한 풍경이 참 좋았어요. 혼자 보기 아깝다고 생각해 산행지 결정할 때 협의해서 비슬산을 가기로 했습니다. 함께 하신 분들 모두 즐거운 추억 안고 오셨으면 좋겠네요.”
여신기획부 백상현 부장은 안전산행과 더불어 즐거운 산행을 기원했다.
늦은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서울 도심은 쉽게 빠져나갔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버스 안의 불은 꺼졌고, 우리는 잠에 빠져들었다. 깊은 밤을 날아 분홍으로 물든 비슬산으로!
어라, 잠깐 멈춘 휴게소에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 때문에 불안해하는 이는 없었다. 아침까지 비가 조금 내릴 걸 알고 가는 산행이었고, 구름 가득한 능선의 아름다움은 맑은 날에는 경험할 수 없으니까. 꽃 또한 구름과 어떻게든 어울리겠지.
대구에 도착한 건 새벽 4시. 산 들머리까지는 좀더 가야 하지만 산행은 밥심이 있어야 하는 법, 국밥 한 그릇씩 든든히 먹고 비슬산 입구 유가사에 도착하니 5시 40분이다. 해가 뜨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일상생활과 산행은 무리가 없는 ‘시민박명’의 시간. 바닥은 젖어 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고 멀리 산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있었다. 산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과 날씨다. 가볍게 몸 풀고, 단체사진도 한 방 찍고 드디어 출발.
비슬산은 해발 1,084m로 정상은 천왕봉이다. 흔히 대구의 산을 말할 때 ‘북 팔공 남 비슬’이라 한다는데, 거꾸로 말하면 비슬산의 북쪽은 대구이고 서쪽은 낙동강이며 동남쪽은 ‘영남알프스’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들머리는 대개 유가사 아니면 비슬산자연휴양림을 통해 오르는데 우리는 유가사에서 출발한다. 진달래만 구경할 거라면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도 되지만, 진달래를 저만치에 두고 바라보며 능선을 걷는 맛을 포기할 순 없으니까.
고진감래. 산에서 이 말은, 꽃을 보려면 일단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는 뜻이다. 유가사에서 천왕봉까지는 약 3.5km를 올라야 하는데 마지막 몇백 미터만 능선이고 능선까지는 계속 경사로다. 인원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소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선두는 구로동기업금융지점 신철민 차장이 이끌었고, 후미는 여신기획부 송하연 대리가 책임졌다.
“함께 산행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오늘은 저 혼자네요. 그 친구들과 함께 후미를 맡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산행을 했거든요. 올해 5년 차인데, 처음에는 사람들 많고 화려한 곳이 좋았는데 이제는 이런 자연으로 오는 게 마음도 편하고 좋더라고요.”
능선에 올라서니 가느다란 빗줄기가 바람에 날렸고, 그 사이로 간간히 진달래가 보였다. 잠깐의 능선 산책을 마치면 정상, 원래는 낙동강 줄기도 보이는 천왕봉이건만 사방을 진하게 에워싼 구름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운무가 가득한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룹으로 모여 간식을 먹는데 바람이 세졌다. 따뜻한 물을 나눠 마시고 능선을 따라 다시 걷는다. ‘고진’의 시간을 보냈으니 ‘감래’의 시간을 만끽해야지.
빗방울이 맺힌 분홍의 잎이 무거워 보이는 진달래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 모퉁이를 도는 찰나, 시야가 트이면서 건너편 산사면이 눈에 들어왔다. 흐린 날씨에도 진달래가 가득했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눈앞의 진달래도, 저 먼 곳의 진달래도 두루 좋았다.
“입행하고 나서 계속 산을 다녔어요. 지금은 은퇴를 했으니 OB라 해야겠네요. 산에 오면 친정 온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 좋고 마음 편하고. 예전에 비슬산 진달래를 봤을 때 내 인생에 그런 꽃 풍경을 본 게 처음이라 이번에도 왔어요. 그때랑은 다르지만 구름 낀 분위기는 또 달라서 좋은데요.”
“아내가 산행에 오면 저도 함께 와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앞으로도 아내가 오면 올 생각입니다. 와 보니 알겠어요. ‘참! 좋은 은행, 기업은행’이 광고 문구였는데, 왜 ‘참 좋은 은행’인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참 좋아요.”
의정부지점 우숙경 팀장은 산행에 자신이 없어 민폐 끼치는 걸 막고픈 마음에 남편과 동행을 했다는데, 남편이 더 오고 싶어한다고.
처음 산행에 참가한 이들에게는 녹록치 않은 산행이었다. 고객센터 최지선 대리와 장경화 대리는 평소 산행에 마음만 두었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어 신청하게 되었다고.
고객센터 최지선 대리는 “혼자 가긴 애매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1월에 눈꽃산행 할 때 장경화 대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간 이후로 두 번째 함께 오게 되어 너무 좋았다”고 밝혔다.
이에 장경화 대리는 “비슬산도 참 좋았어요.
5시간 넘는 산행은 사실 처음인데, 괜찮네요. 아마 다음 산행에도 가게 되지 않을가?”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진달래가 연분홍이라지만 보라에 가까운 꽃도 있고 흰색에 가까운 분홍도 있다. 그뿐이랴, 소나무에 남은 지난해의 잎은 짙은 녹색이고 이번 봄비에 싹을 틔운 새잎은 그야말로 신록이다. 여기에 편안한 능선과 여기저기에 우뚝한 암봉들, 봉우리를 둘러싼 구름까지 어우러져 풍경을 완성한다. 이들은 알까, 스스로가 ‘참 좋은 은행’을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걸.
“이야기도 많이 나누시고 사진도 많이 찍으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한 번 가본 산이나 코스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산이고 코스니까 새로운 기분으로 느껴보시길 권하고요. 그러면서 여러 세대가 좀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요.”
신철민 차장은 안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등반대장과 스탭을 믿고 재미도 즐기시라는 조언을 남겼다. 산행은 물론 안전이 우선이다. 안전하다면, 재미를 느끼고 추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저마다의 산을 오른다. 매일 성실하게. 사람마다 주어진 상황은 다르지만 저마다 최선을 다한다.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하고 구름에 가려 시야가 터지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능선에 서면 산들바람이 땀을 식히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면 널리 핀 진달래 꽃밭을 만나기도 한다. 오르막과 모퉁이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마다의 꽃 또한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