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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발길 닿는 길(해외편)

아드리아해의
중세 성벽 길을 걷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글 · 사진 서영진 
‘아드리아해의 진주’, ‘발칸반도의 낙원’.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수식어는 현란하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에 신기루처럼 떠 있는 성채도시다. 구도심과 바다를 품고 이어지는 성벽길은 도시가 지켜온 굳건한 세월과 함께 설렘을 더한다. 두브로브니크와 성곽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에서 조망한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 전경


붉은 지붕, 푸른 바다와 마주하는 길

두브로브니크의 성벽길은 눈부시고 매혹적이다. 성곽 안은 구도심의 붉은 지붕과 번들거리는 골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깥쪽은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성벽길 걷기는 두브로브니크의 유일무이한 체험으로 사랑받는다. 성벽 위를 걷기 위해 수천㎞를 달려와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10세기에 축성한 성벽은 13~14세기에 증축됐으며 15세기 오스만제국의 위협 당시 더 두껍게 쌓아 올려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성벽의 길이는 약 2㎞에 최고 높이가 25m, 성벽 두께가 넓은 곳은 3m에 달한다. 유럽의 성벽 중에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며, 성곽과 구도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성벽길 걷기는 도시의 지난한 역사와 함께해 뜻깊다. 성채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를 호령하던 중세 도시국가였다. 베네치아공화국과 필적한 유일한 해상무역국이었으며 700여 척의 상선을 보유하고 지중해를 붉은 깃발로 장악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 편입되기 전까지 뛰어난 외교술과 ‘자유’의 기치 아래 독립된 공화국을 유지했다. 성채는 도시의 안위를 위한 소중한 방어벽이었고, 유고 내전을 견뎌낸 버팀목이었다.


‘왕좌의 게임’의 배경이 된 성벽과 요새

성벽길은 육지와 연결된 필레게이트 혹은 바다와 이어진 플라체게이트에서 시작한다. 계단을 따라 올라선 성벽의 육지 쪽은 해자가 깊게 파여 있고, 바다는 난공불락의 위풍당당한 외관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성곽과 도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흡사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도시국가 ‘킹스랜딩’의 모습과 닮았다.

성벽길은 단순한 걷기 여행길이 아닌, 요새와 탑, 문 곳곳에 담긴 두브로브니크의 스토리와 사연을 만나는 길이다. 성벽 위에는 5개의 요새, 16개의 탑과 보루 등을 갖추고 있다. 필레게이트에서 걷기 시작할 경우 북쪽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육중한 건물이 민체타 요새다. 1464년에 완공된 요새는 육지 쪽 성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수려한 전망을 선사한다. 매년 7월 두브로브니크 여름 페스티벌이 열릴 때면 민체타 요새에는 국기 외에도 자유를 상징하는 ‘리베르타스’ 깃발이 게양된다. 두브로브니크는 15세기에 세계 최초로 노예 매매를 폐지할 정도로 시민의식이 높았다.

남서쪽의 보카르 요새를 기점으로 붉은 지붕 따라 이어지던 성벽길은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닷길로 색을 바꾼다. 보카르 요새 맞은편의 로브리예나츠 요새와 카누 탑승장이 있는 필레베이는 필레게이트와 함께 ‘왕좌의 게임’의 주요 촬영지였다. 성벽 남쪽 길은 탑과 보루가 드문드문 출현하는 좁은 성벽이 이어진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요트와 배들이 오가는 풍광들도 이곳에서 또렷하다. 구멍을 뜻하는 ‘부자’를 지나 성벽 아래 매달린 ‘부자’ 카페들은 외부와 단절된 낯선 모습이다.

사각형으로 세워진 남동쪽 성 이반 요새에는 해양박물관이 있으며 이곳 주민들이 즐겨 찾는 성벽 해변과 포르포렐라 등대로 연결된다. 구항구 지나 성벽 북쪽 길에서 바라보는 구도심의 골목들은 좁고 가파르다. 성곽 안 북쪽에는 슬라브계 주민들이 주로 거주했다. 성당, 박물관 등 주요 건물들이 들어선, 로마계 주민들의 남쪽 삶터와는 다른 풍광을 지녔다. 성벽에서 내려와 벽과 일상의 온기를 느끼며 성벽 아랫길을 다시 걷는 것 또한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성벽 북쪽에 자리한 민체타 요새

성 이반 요새와 구항구 풍경


일상과 중세 건축물이 공존하는 구도심

성곽 안 구도심은 플라차 대로(스투라둔)를 중심으로 개성 넘치는 삶들이 전개된다. 골목에는 이발소와 정육점이 있고, 빈터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며, 군둘리세바 구르쉬 등 아침 시장이 들어선다.

두 번의 지진 뒤에 재건된 플라차 대로는 석재와 대리석, 중세의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다. 대로의 랜드마크인 오노브피오스 분수는 15세기 초 건설됐으며 16개의 수도꼭지에 각기 다른 얼굴과 동물 문양이 이채롭다. 르네상스 양식의 성 그리스도 성당은 두브로브니크 여름 페스티벌에는 콘서트홀로 변신하며, 성당 옆 프란체스코 수도원에는 14세기 후반 문을 연 수도원 약국이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 있다.

성 내부에는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를 기념하는 성당과 스폰자 궁전, 렉터 궁전 등 유적들이 위풍당당하다. 스폰자 궁전은 성 안에 들어오는 상인들이 거쳐야 했던 곳으로 6개의 기둥으로 된 1층 화랑은 세공술이 도드라진다. 두브로브니크는 11~13세기 금, 은의 수출항으로 황금기를 맞았다. 총령의 집무실이던 렉터 궁전은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15세기의 조각 기둥이 견고하다. 귀족 중 선출된 총령은 1개월의 재임 기간 동안 사사로이 집무실을 떠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내부에는 ‘개인을 잊고 공공을 위해 고민하라’는 글귀가 라틴어로 적혀 있다. 성 이그나시에 성당 앞 바로크풍 계단은 ‘왕좌의 게임’에서 여왕 세르세이가 나체로 걸었던 대표 장면을 찍은 곳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매년 7월 초 50일간의 여름 페스티벌이 열린다. 유럽 각지에서 이방인들이 몰려오고 ‘자유’의 깃발 아래 오페라, 연극, 발레, 콘서트가 펼쳐지며 중세의 공간들은 축제의 현장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성곽 동쪽 구항구의 레스토랑들은 연희와 음악으로 채워지고, 유람선들은 화려한 불꽃 아래 바다 위로 밀려 나간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성곽을 벗어난 바깥 공간이 오히려 차분하다. 스르지산에 오르거나 플로체 지역의 언덕을 서성거려도 좋다. 비탈과 언덕에서 붉은 성곽과 푸른 바다의 윤곽이 한눈에 담긴다. 두브로브니크의 바다는 곳곳이 다이빙 포인트며 10월까지 따사롭고 평온하다.

구도심 플라자 대로의 종탑
성벽 사이로 조망한 아드리아해

바다와 함께 2km 이어지는 성벽길
성벽과 로브리예나츠 요새


두브로브니크 성벽길

두브로브니크 성벽길은 필레, 플라체 게이트 외에 구 항구 부두에서 시작할 수 있다. 약 2㎞ 코스로 요새, 카페 등을 두루 관람하며 걷는 데 약 3시간이 소요된다. 걷기 코스는 한 쪽 방향으로만 진행되며, 성벽에 오르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두브로브니크 카드를 구입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성벽의 역사를 들으며 걷는 가이드 투어, ‘왕좌의 게임’ 촬영장소를 방문하는 투어 등이 마련돼 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온 로브리예나츠 요새 등은 성벽길 밖에서 별도로 이동해야 한다. 여름철에 모자와 선글라스 등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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