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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특집

IBK가 만나다

역사의 고마움은
좋은 질문에 있다

큰★별쌤 최태성

글 · 박성일 사진 · 이대원
바쁘다. 최근 그의 삶을 압축하고 에두른 표현이다. 고정 방송출연만 3개, 전국 지자체와 박물관에서 쏟아지는 강연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그럼에도 그는 넘치는 에너지, 균형 잡힌 관점,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역사가 암기 과목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한다. 왜일까. 복기해보자.


Q

방송, 강연, 출판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이 정도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요. 꾹꾹 눌러 담은 요즘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 채널S <다시갈지도> 등의 방송에 고정출연 중입니다. 전국 지자체와 박물관 같은 곳에서도 강연과 촬영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요즘 너무 바쁘네요. 진짜 이렇게 바빠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쁩니다. 아마 이게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몸이 다쳤을 거예요. 근데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너무 재밌습니다. 사실 저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힘든 걸 잘 모르나 봐요. 왜냐하면 이 자체가 저한테는 취미이거든요. 좋아하는 일이 취미이니 재미있을 수밖에요.

Q

딱딱한 역사가 아닌 웃음과 교훈이 가득한 감동의 강의로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특히 EBS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EBS 방송만 21년째 하고 있습니다. 오래됐네요. 소중한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체력적 · 경제적으로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EBS는 제가 출발한 곳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좀 잘나간다고 “그만두겠습니다!” 하는 게 뭔가 좀 불편하더라고요. 물론 EBS 나름대로 사정도 있고, 언젠가 저를 대신할 새로운 선생님도 오시겠죠. 학생들을 위해서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잘릴 때까지요(웃음).

Q

역사 공부 참 어렵습니다. 의미만 좇다 보면 너무 깊이 들어가고, 재미만 추구하지나 수박 겉핥기식입니다. 역사의 깊이와 재미,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걸어온 흔적들이잖아요. 그 흔적들을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모습이 발견됩니다. 그러면서 어떤 동질화가 될 때 거기에 몰입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요. 그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동화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또 그 사람의 어떤 사실들도 알게 되니까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도 찾게 되는 거죠. 역사 속 자신의 닮은꼴을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사실 역사의 뒷담화는 훌륭한 스토리텔링감입니다. 특히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하셨는데요. 역사, 왜 배워야 할까요?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딱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죠. 왜냐하면 우리가 운전하다 보면 가끔 백미러를 보잖아요. 백미러를 보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과거의 시간을 둘러보며 내가 앞으로 가는 이 시간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또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자본주의 비교사회의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괴감을 느끼며 상처받습니다. 그럴 때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계속 학습하고 확인하면서 자신의 내성을 기르는 거죠. 이러한 변화와 비교,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은 채 중심을 잡고 뚜벅뚜벅 길을 갈 수 있는 힘, 저는 그게 역사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21년간 현직 교사로서 교편을 잡으셨습니다. 이 시대 ‘선생님’의 참 의미,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선생(先生)’이라고 하는 글자는 ‘먼저 앞 시대를 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잖아요. 말 그대로 ‘선생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학생들,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길 안내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내가 지금 제자들한테 안내해주고 있는 이 길이 도대체 올바른 길인지, 이 시대에 부합한 것인지, 과연 시대 정신을 담고 있는 건지 등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몸으로, 언어로, 글로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고마운 인물도 참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고맙다”, “감사하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시간 속에서 그런 개념들을 찾는 것 같아요. 나와 동 시간에 살고 있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말이죠. 저는 역사를 한 사람이니까 수평적 시간 말고 수직적 시간 속에서 감사와 고마움의 의미를 찾았으면 합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을 수직적 시간으로 올라가다 보면 분명 출발점이 있을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내가 지금 이 시간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누군가의 출발’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고려 말 문익점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이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나라의 의복 문화는 물론 상거래 관행에 큰 변화를 일으키죠. 물론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노력은 우리에게 종합선물 같은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선물해줬습니다. 세종대왕도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분입니다. 훈민정음 역시 많은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소중한 보물이죠. 우리가 수직적 시간 속에서 그들과 연결되는 순간 최초의 패배자, 그들이 가졌을 고독을 떠올리다 보면 내 일상이 참 많은 사람의 고마운 시간 속에서 이뤄지고 있구나, 정말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이는 자연스레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수직적 시간의 관계 속 감사와 고마움의 행렬입니다.


Q

역사 속 롤모델과 현실 속 워너비, 그 동경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너무 감사한 사람은 저한테 좋은 질문을 가지면서 살 수 있도록 해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입니다. 이회영 선생을 포함한 6형제는 당시 엄청난 재벌이었어요. 남양주부터 걸어서 동대문에 들어와야 비로소 이분들의 땅이 끝난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땅을 갖고 있었죠.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약 3조 원가량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그 엄청난 재산을 일제강점기 경술국치 때 다 파세요. 그 돈으로 만주 가서 땅 사고, 학교 짓고, 군인들을 무상으로 교육하는 데 다 쓰죠. 정작 본인들은 돈이 없어 옆집에 옥수수를 구하러 다닐 정도로 궁핍했다고 해요. 범인인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분들은 삶을 좇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살았다는 사실을요. 그 질문이 뭐였냐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어요. 그렇죠. 우리도 딱 한 번밖에 살 수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요. 우당 선생처럼 ‘나는 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끝은 정말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좋은 질문을 간직할 수 있도록 깨우쳐 준 우당 선생이 저에게는 ‘역사의 선물’입니다. 저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큰★별쌤이 IBK 매거진 독자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낙관적인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일희일비하지 않거든요. 결국 다 잘 되어 있는 위치에 있더라고요. 이런 역사를 통해서 낙관적인 희망의 삶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결국 좋은 곳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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