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이 젖어 든 신촌의 한 스튜디오.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조명 빛을 받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자리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쯤 신현진 과장이 문을 열고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악보집 한 권을 쥐고 있었다.
“촬영 전 잠시 손을 좀 풀어도 될까요?”
신현진 과장이 미소를 띠며 물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어깨에 힘을 빼고 마음을 가다듬는 듯 보였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고 잠시 호흡까지 가다듬는가 싶더니 이내 맑고 청량한 피아노 소리가 스튜디오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의 열 손가락이 춤을 추듯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 순간,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스태프들은 그의 모습에 매료돼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신현진 과장은 ‘Stella Serenade’와 ‘Chopin Etude’을 연이어 연주했고, 스태프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그는 “긴장이 좀 되네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미소지었다.
“8개월 전부터 ‘피아노 선비(piano_seonbi)’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연주한 피아노 영상을 업로드하고, 또 클래식 음악을 추천하거나 공연 감상 후기를 올리고 있어요. 제 계정을 팔로워 하는 동료들이 추천해줘서 이런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피아노 실력은 몰라도 피아노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신현진 과장이 피아노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일곱 살 무렵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도 자신의 의지보단 엄마의 의지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체르니 30’을 끝으로 학원을 그만뒀다. 이제는 그의 머릿속에서도 희미해진 기억이다.
“행원이 된 지 3년 차 즈음 취미 하나쯤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 쳤던 피아노가 떠오르더군요. 집에 디지털 피아노가 있어서 시간이 나면 치곤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다시 배워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종각 근처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등록하고 일 년 정도 치다가 사정상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3년 전에 다시 시작했죠. 이제 피아노는 제 삶에서 뺄 수 없는 일부가 된 것 같아요.”
피아노를 시작하고 신현진 과장은 일반인 콩쿠르에 출전하는 뜻깊은 경험을 했다.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에 매달렸던 노력의 시간은 피아노와 더욱 친해지고 피아노를 더욱 사랑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학원 선생님이 정말 열정적인 분이셨어요. 선생님이 ‘일반인 콩쿠르에 나가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는데, 덥석 한다고 했죠(웃음). 콩쿠르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두 달 정도 하루에 두세 시간씩 ‘Chopin Etude’를 연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어요.”
콩쿠르에서 심사자들을 앞에 두고 연주하기란 쉽지 않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에 긴장을 했고, 그러다 연주를 틀렸고, 심사자들 앞에서 진땀을 빼야 했다. 그러나 ‘진정한 노력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여덟 명의 참가자 중 3등을 하며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수상보다 더 큰 기쁨은 따로 있었다. 콩쿠르 이후 귀가 열리며 피아노 소리가 더욱 자세히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피아노에 더욱 재미가 붙었다.
“어느새 행원 10년 차가 되어갑니다. 직장에서 10년쯤 되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경험을 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피아노는 치면 칠수록 내 실력이 느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내가 피아노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행복을 얻는 것 같습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육아에 힘써야 하는 신현진 과장에게도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시간은 넉넉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최대한 시간을 알차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쓰면서 연습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피아노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연습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을 때 신현진 과장도 막막했다. 하지만 노력하고 연습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을 뿐, 그러한 순간을 이겨내면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피아노는 바이올린이나 플롯 등의 다른 악기에 비해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다른 악기들은 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음악을 취미로 하고 싶다면 피아노는 정말 좋은 악기라고 생각해요. 현재 피아노를 치고 있는 분들에게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라는 곡을 추천하고 싶어요. 어렵지 않으면서도 참 예쁜 곡이어서 즐겁게 칠 수 있습니다.”
신현진 과장은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신 곁을 흘러가는 시간을 느낀다. 마치 명상을 하듯이, 그는 피아노 앞에서 몸과 마음을 한껏 열어 둔다. 그리고 자신이 연주하는 소리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낀다.
“3년 전 다시 피아노를 시작할 때, 10년 후에는 독주회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한다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800명을 조금 넘겼는데요. 팔로워 수 1만 명도 이루고 싶어요.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더 많은 분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신현진 과장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피아노 선율이 봄밤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의 얼굴에 환한 행복의 미소가 어렸다.
1.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그 무엇이든 한 번에 많은 양을 몰아서 연습하면 금방 지치게 된다.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연습하는 게 지치지 않고 오래 피아노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다.
2. 음악 전체에 집중하기 음악은 순간순간의 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울림이 이어져 만들어진다. 피아노 건반을 쳤을 때 나는 소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잘 들으면서 연습하면 음악이 더욱 재미있고 실력도 빨리 향상할 수 있다.
3. 디지털 피아노로 연습하기 요즘은 아파트나 공동주택에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옆집으로 새는 피아노 소리가 걱정된다면 디지털 피아노로 연습하는 게 가장 좋다. 늦은 밤에도 헤드폰을 끼고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어서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피아노를 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