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낡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감성과 추억이 깃든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아니더라도 국물 한 숟가락에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가게들.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이 질릴 때면 집밥 대신 할머니 손맛 집의 노포들이 입맛을 달래준다. 유독 집밥이 그리운 날, 친근하면서도 푸근한 한마디에 마음마저 녹는다.
종로의 이문설농탕은 1902년 창립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담긴 식당이다. 대한제국 시절부터 이어온 이문설농탕의 긴 역사에 걸맞게 주인과 가게의 위치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원래 공평동 한옥식당에서 영업해오던 이문설농탕은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견지동의 현대식 건물로 이동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가게의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다가 1960년 유원석 여사에게 가게가 넘어가게 되었고 이후 유원석 여사의 아들과 부인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던 이문설농탕이지만 맛은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다. 유원석 여사는 이문설농탕을 넘겨 받으면서 고유의 조리법을 존중했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맛을 유지했다. 덕분에 이문설농탕의 단골손님들은 가게 주인이 바뀌어도 설렁탕의 한결같은 맛을 호평하며 가게를 방문하는 발걸음을 끊지 않았다.
양지, 머리, 마나, 볼기살, 우설 등 다양하게 들어가는 고기들과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설렁탕의 심심하고 담백한 맛은 이문설농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기름기 없는 담백한 맛은 흔히 생각할 법한 설렁탕과는 다르지만 다양한 소금, 후추, 파, 깍두기 등으로 간을 맞춰 먹을 수 있어 전통적인 원조 설렁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문설농탕만의 맛으로 많은 단골손님이 찾아오고 있으며 전통적인 맛을 느끼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손님도 아주 많다. 오랜 전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온 이문설농탕만의 신뢰도는 어떤 식당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자산이자 맛에 대한 자신감이다.
수원 행궁동에서 화성행궁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출출함이 가득 밀려온다. 오랜 역사가 담긴 행궁을 구경하고 나니 이왕이면 오래된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행궁동의 춘천메밀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맛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그 길이 험난해야 했다고 했던가? 경사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춘천메밀막국수는 그 위치가 상당히 높아 식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진땀을 빼게 만들지만, 막국수의 맛을 보는 순간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게 된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사리를 제외하고 8,000원인 막국수만 판매하고 있는 것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필요한 반찬들과 함께 나오는 막국수는 면과 소스, 오이, 달걀과 함께 나오는 단출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구성과 달리 어느 곳에서도 맛보기 힘든 독특한 막국수의 맛은 감탄을 자아낸다. 달콤하고 짭조름한 소스와 어우러지는 쫄깃한 메밀면으로 이루어진 막국수는 흔히 생각하는 막국수와는 다른 맛을 낸다. 특이한 맛에 놀라 한입씩 더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춘천메밀막국수에 중독되어 버린다.
이렇게 막국수에 중독되어 벌써 십 년이 넘도록 막국수를 먹으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가득해 식사 시간에는 항상 식당 앞에서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막국수를 먹다가 육수를 부어 즐기는 물막국수는 또 다른 별미다.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주방을 지키는 할머니의 손맛으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수원 춘천메밀막국수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이전에 장사하던 노포에서 지금의 건물로 이전하게 되면서 똑같은 장소에서 먹는 향수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맛으로 행궁동을 대표하는 노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에서 먹거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고 특히 제주도처럼 자주 가지 않는 여행지에서는 더더욱 중요하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먹거리와 풍경, 관광지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현지인들도 추천할 만큼 유명한 노포가 있다. 바로 선흘방주할머니식당이다. 선흘방주할머니식당은 아들과 어머니가 직접 농사를 짓고 채취한 건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다. 건강식으로 유명한 맛집답게 두부콩과 서리태공은 아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고사리와 단호박, 도토리는 근처 선흘산에서 채취한다. 흑돼지와 김치는 제주산을 사용하고 곰취, 삼채, 야채는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다. 그 덕에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하다.
참기름의 고소함과 나물들의 신선함으로 가득한 고사리 비빔밥부터 두부와 각종 채소로 푹 끓여 깨끗하고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두부전골, 진하고 고소한 콩국수, 곰취나물로 쌓여 독특한 외형과 향긋함을 보여주는 곰취 만두 등 다양하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담긴 메뉴들이 있다. 특히 곰취 만두의 경우에는 하루 판매량이 정해져 있어 늦게 식당을 방문하면 먹어보기 어려울 정도의 별미 중 하나다. 식당 내부는 널찍한 외부 공간을 자랑하지만 웨이팅이 생길 정도로 손님이 몰리기도 한다. 맛과 영양의 균형이 잘 잡힌 음식들은 마치 명절에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 맛볼 수 있는 가족을 위한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들과 닮아있다. 진짜 제주도의 로컬맛과 자연이 주는 편안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선흘방주할머니식당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수는 서민들을 대표하는 여러 음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먹거리다.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하고 따뜻하게 속을 채울 수 있어 특히 추운 날이 되면 국수가 생각난다. 김해에도 이런 마음의 서민들과 함께해 온 오랜 전통의 국숫집 ‘대동할매국수’가 있다. 대동할매국수는 1959년부터 김해 대동 오일장에서부터 국수를 팔아오며 김해를 대표하는 국수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80년 대동 오일장이 폐장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가게의 문을 연 주동금 대표는 변함없는 맛으로 같은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시간이 지나 2017년 주동금 대표의 조카 주징청 대표가 가게를 물려 받았지만, 여전히 대동할매국수의 맛은 변함이 없다. 주동금 대표는 구포국수의 자연 건조된 증면과 남해안에서 끌어올린 멸치, 김해에서 재배한 부추와 무로 만든 단무지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만드는 일 없이 자식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었고 주징청 대표 역시 이런 전통을 이어 나갔다.
적은 돈으로 한 끼 식사하기 어려운 요즘에도 대동할매국수는 5,000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손님들이 국수를 사 먹는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긴 세월을 이어 온 한결같이 진하고 구수한 맛이 담긴 국수에는 김해 사람들의 시간이 담겨 있다. 가난했던 시절 돈이 없어 국수밖에 사 먹을 돈이 없었다는 한 손님은 어느새 손자와 함께 대동할매국수를 방문해 함께 국수를 먹었다. 비워지는 국수 그릇만큼 따뜻한 정이 더해지는 대동할매국수는 앞으로도 김해 시민들의 곁에 한결같이 있을 것이다.
수원역 뒤편을 따라 펼쳐지는 수원역 로데오거리는 밤낮 구분 없이 사람들이 가득할 정도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중에서 9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일미식당은 오랜 시간 그 골목을 지켜왔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미식당만의 고향 냄새 물씬 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머리 고기와 내장이 가득한 돼지머리 국밥과 머리 고기와 내장에 순대까지 들어간 일미식당만의 순대국밥은 10,000원이라는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오랜 전통의 할머니 인심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득한 머리 고기와 내장들은 평소에 그릇까지 싹싹 비운다는 사람들까지 만족해할 만큼 푸짐하다. 양뿐만 아니라 잡내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국물과 어우러지는 국밥의 맛은 이미 수십 년째 식당을 찾고 있는 단골손님들이 보증하고 있다.
30년 전 유치원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방문해 김이 피어오르는 순대국밥을 먹었던 아이는 어느새 직장동료들, 자기 가족들과 함께 일미식당을 방문한다.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의 이곳에만 오면 추억들이 되살아난다는 한 단골손님은 뜨거운 국밥을 연신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을 싹 비워냈다. 요즘같이 쌀쌀한 날에 국밥으로 손님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다는 일미식당의 사장님은 예전의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 가격은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그래도 든든함과 배부름을 느끼고 가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국밥 그릇을 채워나가고 있다. 화려한 플레이팅도, 실내장식도 없지만 일미식당의 국밥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마 이런 마음이 담긴 푸짐함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