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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CLOUD

화사한 꽃은 그만큼 일찍 진다

고흐의
‘아를의 꽃 피는 복숭아나무’

글 ·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 세종사이버대 교수
봄을 그린 그림들, 화사한 햇살과 따스한 대기를 표현한 그림들을 꼽자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아를의 꽃 피는 복숭아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고흐라는 화가가 주는 우울한 인상과는 달리 이 그림은 가벼운 분홍과 파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를의 꽃피는 복숭아나무,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 x 59.5cm, 크륄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고흐를 매료시킨 아를의 자연환경

봄의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대지에서 힘차게 뻗은 나뭇가지에는 분홍 복숭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꽃들은 나무를 활활 태우는 생명의 불길처럼 역동적이고 활기차다. 나무의 뒤편으로는 푸른 하늘이 있고, 그 하늘에는 부드러운 흰 구름이 소담스레 피어나 있다. 그림에 가득한 계절과 자연의 생명력이 보는 사람의 기분마저 가볍게 해주는 듯하다.

‘아를의 꽃 피는 복숭아나무’를 그리던 1888년 3월 무렵에 고흐는 파격적인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1888년 2월 말, 고흐는 2년간 생활하던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에 도착했다. 꼭 2년 전인 1886년 2월, 그는 화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고 파리로 왔다. 하지만 파리 생활은 쓰라린 기억만을 남기고 끝났다. 세잔, 에밀 베르나르, 툴루즈-로트렉 같은 동료 화가들은 작품에 대한 약간의 비판에도 결투를 신청할 만큼 극단적인 고흐의 성격에 넌더리를 냈다. 그림은 전혀 팔리지 않아서 동생 테오의 도움 없이는 집세를 낼 길도 막연했다. 결국, 동료들의 몰이해와 가난에 지친 고흐는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무작정 올라탔다. 열여섯 시간을 달린 기차는 다음 날 새벽, 아를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차했다. 이렇게 해서 고흐는 난생처음으로 지중해를 면한 프로방스 지역에 발을 디뎠다.

고흐가 막 도착했던 1888년 2월 말까지도 아를은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지중해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삽시간에 아를 전역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런던, 암스테르담, 파리 등 북쪽의 대도시나 가난한 탄광촌에서만 살았던 고흐는 프로방스의 온화한 날씨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에 금방 매료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하루가 다르게 사방에서 피어나는 봄꽃들이었다. 흰색과 분홍색의 향연 속에서 고흐는 절망을 딛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보았고, 이후 한 달 동안 열네 점의 꽃나무와 과수원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내면에서 화가의 영혼이 드디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고 있었다.


첫 스승에게 보내는 헌화

이해 4월 21일에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분홍색 복숭아꽃과 연한 노란색이 도는 흰색 배꽃이 특히 마음에 들어…구도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붓이 가는 대로 자유스럽게 캔버스를 터치하고 있어. 땅과 초록색 이파리 같은 다른 톤들은 일부러 아주 심플하게 처리하려고 해. 그래야 꽃과 하늘의 색감이 더 돋보일테니까.’

꽃나무를 그리는 데 한참 빠져 있던 고흐는 네덜란드에 있던 여동생에게서 사촌 매부인 안톤 모베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화가였던 모베는 고흐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했다. 고흐는 방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과수원 그림들을 뒤적여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복숭아나무 그림에 ‘모베를 추억하며(Souvenir de Mauve)’라고 프랑스어로 서명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모베의 유족에게 전해 달라고 테오에게 부탁했다. 고흐가 여러 장의 꽃나무 그림 중에 왜 이 복숭아나 무를 골랐는지는 어렴풋이 이해될 듯하다. 이 그림은 여러 과수원 그림 중에서 가장 밝고 환하며 봄의 분홍빛과 밝은 푸른빛이 캔버스 가득 넘치고 있는 그림이다. 심지어 나무가 심어진 땅마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한때 함께 그림을 그리던 스승이자 동료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흐는 슬픔 속에서도 자신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새삼 환희를 느꼈을 것이다.


꽃피는 아몬드 나뭇가지,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3.5 x 92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짧고도 찬란한 인생의 ‘봄’

2년 후, 귀를 자르는 자해를 하고 우울증이 깊어진 고흐에게 테오가 갓 태어난 아들(이 아이의 이름도 빈센트였다)의 방을 장식할 그림을 부탁했다. 이때 고흐가 그린 그림이 유명한 ‘꽃피는 아몬드 나뭇가지’다. 사랑하는 조카를 위한 그림을 그리며 고흐는 아를의 과수원과 꽃나무들, 빛나는 봄의 햇살을 떠올렸던 게 분명하다. 아를에서 맞은 1888년의 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테오에게 이 그림을 보낸지 반년도 채 안 되어 고흐는 피스톨로 가슴을 쏘아 세상을 떠났다.

화사한 꽃이 더욱 빨리 지는 자연의 법칙처럼, ‘꽃피는 복숭아나무’가 완성된 지 불과 2년 후에 이 그림 속에 가득히 피어오르던 생명의 불꽃은 덧없이 꺼져버렸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처럼 봄의 꽃들이 곧 떨어진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우리의 생명의 불꽃이 언제 꺼지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생은 더욱 아름답고, 동시에 더욱 엄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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