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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컬쳐

발길 닿는 길(국내편)

피란민 애환 서린 달동네,
핫 플레이스로 뜨다

부산 흰여울길

글 · 사진 진우석 
세월이 얄궂다. 피란민 애환이 서린 달동네 흰여울문화마을이 부산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봉래산(394m) 허리에 자리한 마을에는 예쁜 카페와 골목, 영화 촬영지,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다. 특히 노을이 아름답기에 느지막이 찾아 노을과 야경을 동시에 감상하면 금상첨화다.

마당 같은 바다를 품은 달동네 마을

부산 이야기를 할 때 영도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 남쪽에 자리한 작은 섬으로 중앙에 봉래산이 봉긋 솟았다. 6·25 전쟁을 겪으며 육지에 자리 잡지 못한 서민들이 뿌리를 내렸는데, 봉래산 남서쪽에 자리한 흰여울마을도 실향민이 정착한 마을이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좁지만, 바다를 마당처럼 거느린다.

흰여울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거나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곧바로 마을로 들어선다. 우선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센터를 들러보는 게 순서다. 영화 기록관, 영화 포토존, 마을 주민들 사진 전시 등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이 뜬 이유 중 하나가 영화 촬영지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영화가 <범죄와의 전쟁>과 <변호인>이다. 특히 <변호인>에서는 주인공 진우(임시완 분)의 집이 있었다.

흰여울길은 흰여울문화마을을 둘러보는 길이다. 딱히 코스가 정해진 건 없으므로 안내센터부터 마을 허리쯤에 이어진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둘러보면 된다. 아울러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송도전망대, 흰여울터널, 절영해안산책로를 차례로 걸어보는 걸 추천한다. 안내센터를 나와 바다 조망이 시원한 길을 따라 걷는다. 바다에는 커다란 화물선들이 점점이 떠 있다. 이 너른 바다가 선박들의 묘박지(錨泊地)다. 묘박지는 화물선이 부산항에 정박할 차례를 기다리는 장소다. 화물선들이 여기서 하루 이틀 머물면서 화물을 싣고 떠날 날을 기다린다.

흰여울문화마을 아래로 파란 페인트가 칠해진 절영해안산책로가 이어진다.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센터의 간판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센터 1층 영화기록관은 마을에서 촬영한 영화를 소개한다.


송도가 부럽지 않은 ‘이송도’

흰여울길을 걷다 만나는 골목, 카페, 전망대 등 곳곳이 포토존이다. 골목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포토존에서 젊은 연인들은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책방인 손목서가와 마을에 하나뿐인 점방도 인기 장소다. 손목서가 앞마당은 바다 조망이 일품이고, 점방에서 파는 냄비 라면을 바다 배경으로 찍으면 기막힌 뷰맛집이 완성된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진우의 집은 커다란 카페로 바뀌어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메인 로드에서 뻗어나 가파르고 좁은 골목으로 올라 보는 것도 좋다. 비좁은 계단에 앉으면 골목 끝으로 바다가 보이는 이국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이송도전망대가 있다. 건너편의 송도가 잘 보이고, 말이 좋으면 거제도와 대마도까지 잘 보인다. ‘이송도’란 말이 여기 남아 있어 반갑다. ‘흰여울’이란 이름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빠른 물살의 모습에서 따 왔다. 본래 이름은 이송도 마을이다.

왜 영도에 ‘이송도’란 이름이 붙었을까. 마을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송도해수욕장이 1913년 국내 최초로 개장했다. 당시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이를 바라보는 영도 사람들은 우리 영도 해변도 송도 못지않다는 뜻으로 두 번째 송도 즉, ‘이송도’ 라고 이름 지었다. 세월이 얄궂다. 당시는 송도가 부러워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이송도가 부산 최고의 명소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이송도전망대에서 내려오면 흰여울터널을 만난다. 여기가 SNS에서 소개되고 소위 대박이 난 포토존이다. 터널 안에는 불빛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몄지만, 정작 포인트는 터널 입구다. 입구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찍으면 제법 근사한 사진이 나온다. 해가 질 때면 더욱 아름답다.

계단을 푸른 바닷속으로 꾸민 포토존
흰여울문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흰여울터널 포토존. 해가 질 때 찍으면 더욱 멋지다.


절영해안산책로의 해녀촌

터널 앞으로 이어진 해안길이 절영해안산책로다. ‘절영(絶影)’은 예전에 영도를 ‘절영도’라고 부르던 이름에서 나왔다. 흰여울문화마을의 또 하나의 걸작이 바로 절영해안산책로다. 부산의 갈맷길, 해파랑길 2코스가 모두 이 길을 따른다.

길바닥에 푸른 페인트가 칠해진 절영해안산책로는 철썩 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친구 삼아 걸을 수 있다. 산책하는 부산 시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걷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산책로의 이색적인 명소는 목~일요일 오후에만 반짝 문 여는 해녀촌이다. 해안에 돗자리를 몇 개 펴놓고 영업하는데, 해녀들이 직접 따온 싱싱한 돌멍게, 해삼, 성게 등을 내놓는다. 바다를 배경 삼아 해산물 안주로 가볍게 술 한잔하는 맛이 특별하다. 이곳 해녀들은 제주도에서 건너왔다. 부산에서 5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제주 사투리를 쓴다.

시나브로 해가 진다. 묘박지의 화물선들이 바다와 함께 붉게 물들고, 도시는 하나둘 불을 밝힌다. 이제 야경의 시간이다. 남항대교와 그 주변의 고층 아파트, 산비탈에 자리한 달동네 서민들이 밝힌 등불이 하나로 어우러져 근사한 부산만의 독특한 야경을 완성한다.

송도로 지는 노을. 묘박지의 화물선들도 잠든다.


흰여울길 가이드

흰여울길은 흰여울문화마을을 둘러보는 길이다. 코스는 주차장(버스정류장)~안내센터~ <변호인> 카페~이송도전망대~흰여울터널~절영해안산책로~안내센터 순으로 둘러보면 좋다. 걷는 시간은 1시간쯤 걸리지만, 넉넉하게 2~3시간쯤 잡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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