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퀘테레는 이탈리아어로 ‘5개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생경했던 외딴 마을은 바닷가 절벽 위를 걷는 낯선 체험, 격리된 해변에서의 호젓한 휴식 등이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의 숨은 휴양지였던 친퀘테레는 천년 세월을 간직한 땅이다. 들쭉날쭉한 해안 절벽을 개척해 포도밭, 올리브밭을 일군 전통적 삶의 방식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의 주된 사유였다.
친퀘테레는 밀라노, 피렌체에서 열차를 갈아 타고 서쪽 리구아나주로 두 시간쯤 달리면 도착한다.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닐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등이 친퀘테레가 품은 마을들이다. 벼랑을 등진 동네는 자동차로는 닿기 힘들다. 보트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포구에 내리거나, 두세 칸짜리 간이열차를 이용해 터널과 절벽을 지나야 만날 수 있다. 오붓한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길과 골목, 해변과 와인을 음미하는 게 친퀘테레를 즐기는 방법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트레일을 그들만의 언어로 ‘센티에로’라 부른다. 친퀘테레에는 해안선과 능선을 따라 총 120km, 48개의 코스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예전 노새가 다니던 길부터 새롭게 뚫린 절벽길까지 다채롭다. ‘센티에로 아츄로’로 불리는 마을을 잇는 코스는 약 10km로 6~7시간에 걷는 게 가능하다. 친퀘테레 트레킹은 유서 깊은 마을을 서성이며 더디게 호흡할 때 진면목이 전해진다. 2~3일 머물며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해변과 그들의 삶을 공유하는 느긋한 걷기 여행이 최근 추세다.
다섯 개의 마을 중 연인들에게 사랑 받는 곳은 친퀘테레 최남단의 리오마조레다. 열차에서 내리면 마을 터널길은 벽화로 단장돼 있고 입구에 종합안내소가 있다. 갈라진 벼랑 사이 좁은 비탈길과 리구아나풍의 가옥은 리오마조레의 대표 풍광이다. 꼬마들이 뛰놀고, 테라스에 흰 빨래가 펄럭이며 어촌마을 리오마조레는 낭만속으로 빠져든다. 이곳에서 하룻밤 보내는 연인들에게는 황홀한 일몰을 안겨준다.
리오마조레에서 시작해 마나롤라를 잇는 트레킹 코스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해안 길인 ‘비아델라모르’는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연인의 길로 유명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입을 맞추는 연인 조형물은 친퀘테레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곳곳에 등장한다. 낙석 사고로 비아델라모르는 현재 보수 중이며 2024년 여름에 다시 문을 연다. ‘베카라 가도’를 이용하면 리오마조레~마나롤라를 산길을 이용해 걸을 수 있다. 언덕을 연결하는 베카라 코스는 1시간 가량 소요되며 파노라마 같은 지중해 풍경을 선사한다.
절벽 위에 파스텔톤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이국적인 장면은 마나롤라에서 가장 선명하다. 엽서에 등장하는 친퀘테레의 가장 포토제닉한 사진도 마나롤라에서 찍은 것들이다.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70m 높이 해안 절벽에 마나롤라의 가옥들은 겹겹이 들어서 있다. 주위 산비탈은 계단식 포도밭, 올리브밭으로 채워진 단아한 풍광이다.
마나롤라역에서 포구를 잇는 골목은 앙증맞은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절벽 마을을 바라보는 뷰포인트에도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자리했다. 포도밭아래 테이블에서 친퀘테레 와인을 즐기는 것은 마나롤라에서 경험하는 최고의 호사다. 미식가들은 친퀘테레의 달콤한 ‘시아케트라’ 와인에 반해 ‘달의 와인’ 이라는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품격 높은 고립과 조용한 휴식으로 치장된 마나롤라에서의 일과는 이탈리아 명소 도시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찾아든다.
해질 무렵 창 틈으로 불빛이 하나 둘 새어나올 때면 마나롤라의 풍경은 더욱 아득해진다. 여행자들은 절벽길 길목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다. 매년 12월 초에서 1월 말 사이 마나롤라에서는 포도밭 언덕을 1만여 개 전구로 채운 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마나롤라에서 산비탈의 코닐리아까지는 포도밭, 올리브밭을 지나는 길이다. 5.4km 코스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볼라스트라의 마돈나 델라 살루트 교회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포도밭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이 펼쳐진다.
코닐리아는 친퀘테레의 다른 해변마을과는 모양새가 다르다. 해변이 아닌, 언덕 위 산비탈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코닐리아는 역에서 ‘라르다리나’로 불리는 380여 개 계단을 숨가쁘게 걸어 올라야 모습을 드러낸다. 역과 마을 사이에 셔틀 버스도 오간다.
코닐리아는 인적이 뜸해 걷기여행자들의 자취만이 유독 도드라진다. 사랑스러운 골목길에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산자락에 기대 사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고요하게 담긴다. 14세기 지어진 산 피에트로 성당, 포도밭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타 마리아 전망대 등이 둘러볼 만하다.
코닐리아에서 베르나차까지 에메랄드빛 해안을 내려서며 걷는 길은 친퀘테레 트레킹의 백미로 꼽힌다. 3.5km 코스에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다섯 개의 마을 중 가장 깊은 휴식으로 다가서는 곳은 베르나차다. 교회당과 성곽이 있고, 포구에 모래해변이 있는, 평화로운 풍경을 간직한 마을이다. 걷기 여행자들 역시 대부분 베르나차에서 오랜 시간 숨을 고른다. 마을 마르코니 광장 옆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오르면 중세 도리아성과 벨포르테 탑으로 연결된다. 망루에서 바라본 몬테로소까지는 3.6km 해안선 코스가 펼쳐진다. 다양한 식생을 만나는 해안선길(일부 구간 보수)이나 능선 코스로 우회할 수 있다.
친퀘테레 트레일의 종착지인 몬테로소는 가장 크고번잡한 마을이다. 한동안 낯설었던 자동차와 자전거가 오가는 풍경이 이곳에서는 익숙하다. 역 앞 ‘페지나’ 비치는 라구리아 지역의 인기 높은 해변이다. 포데스타 궁전, 수도원이 들어선 언덕 위 구시가에서는 매년 5월이면 레몬 축제가 열린다.
친퀘테레는 리오마조레에서 몬테로소까지 순방향, 역방향으로 걷는 게 가능하다. 편안한 산책길에서 힘겨운 산비탈 등산로까지 구간별로 난이도가 다양하다. 코닐리아~베르나차~몬테로소 구간은 ‘친퀘테레 카드’가 있거나, 입장료(7.5유로)를 지불해야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