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오락과 재밋거리가 넘쳐나는데 한국인들은 인생이 노잼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재미는 고사하고 대한민국 전체에 우울과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듯합니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은 그저 문자로 박제된 권리일 뿐입니다. 헬조선이니, 이생망이니, 존버니, 노답이니, N포세대니,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언어가 넘쳐납니다. 성별과 연령, 세대에 구별이 없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아픈 중년, 아픈 노년도 못지않습니다. 초경쟁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다행인 판국에 사는 게 재미있냐고 묻는 건 비아냥이거나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십상입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세계를 휩쓰는 문화강국인데 우린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얘깁니다. 세계 최고 자살률, 최저 출산율, 최고 노인빈곤율,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 등 우리의 불행을 입증하는 증거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해방과 종전 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야 절대빈곤과 배고픔이 문제였겠지만 경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은 배아픔이 문젭니다. 결핍을 모르는 풍요 속의 빈곤,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가 된 겁니다. 금수저, 흙수저 얘긴 배를 굶을 정도로 가난해서 생긴 얘기가 아닙니다. 경쟁에서 이긴 잘난 사람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문젭니다. 나보다 좋은 아파트,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비교로 작아지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문젭니다.
성공과 출세만이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는 우리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문젭니다. 개인적 차원 외에 사회적인 이유도 다양합니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집단주의 문화, 각자도생이 일상이 된 저신뢰 사회, 위계를 중시하는 서열 의식, 타인을 의식하고 눈치 보는 비교 심리 같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들입니다. 한마디로 우린 생존만 신경 쓰다 실존을 잃어버렸고, 타인을 신경쓰다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충분히 설명이 된 걸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유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행복과 재미를 비교 분석하면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를 하나 찾았습니다. 구글이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구글 트렌드’라는 빅데이터 서비스를 활용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는 키워드는 사람들의 관심사항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겁니다. 빅데이터의 위력은 이미 구글이 독감 예측, 미대통령 선거결과 예측에서 증명한 바와 같이 전문가들도 인정할 정도로 신뢰성이 높습니다. 행복도가 높은 나라들과 우리를 비교하다 문득 재미가 중요한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검색한 구글 트렌드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와 행복은 상호 역전적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행복과 재미는 같은 긍정 정서이면서도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행복 관심도가 높으면 재미 관심도는 낮고, 재미 관심도가 높으면 행복 관심도가 낮다는 뜻입니다. 행복도에 있어서 우리와는 상대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서구인들의 관심이 어떨지를 비교해 봤습니다. 최근 5년간 서구인과 한국인이 재미와 행복에 대해 보여준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서구인들이 행복과 재미에 대해 보여준 관심도는 우리와 극단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에 대해서는 기간 내내 상대 비중 100에 가까운 관심도를 보인 반면, ‘행복’에 대해서는 겨우 20언저리에 머무르고 있어 신기할 정도로 재미에 비해 관심도가 낮은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론 거의 다섯 배의 차이로 행복보다 재미에 대한 관심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그에 반해 재미와 행복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도는 서구인과는 상극이다 싶을 정도로 관심도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기하게도 재미와 행복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도는 서구인의 그것과 정확히 역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종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인간이면서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습니다. 이는 역사, 문화적 차이, 정치, 사회적 차이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한국인의 경우 같은 기간에 ‘행복’에 대한 관심도는 70에서 100 사이를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재미’에 대한 관심도는 20언저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구인과 정확히 역전된 형태로 거의 다섯 배 차이를 보였습니다.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이 그래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해보고 그 이유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데이터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되는 행복도 조사결과입니다. 매년 UN산하 기관에서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서구인들은 대체적으로 행복도가 다른 언어권 사람들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구글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행복과 재미에 대한 관심은
상호 역전적이었습니다.
위의 행복과 재미에 관한 관심도 데이터와 행복도 조사결과를 함께 겹쳐보면 의미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선 행복도가 높은 서구인들은 평소 행복보다 재미에 더 관심이 높습니다. 행복도가 낮은 한국인들은 평소 재미보다 행복에 더 관심이 높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논리적 추론이 가능합니다.
“첫째, 서구인들이 대체로 행복도가 높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평소 행복에 대한 관심이 낮기 때문이다. 평소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을 찾을 이유가 없어서다. 둘째, 한국인이 행복도가 낮은 데 비해 행복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건 평소 행복하지 않다는 걸 추정케 한다. 그토록 행복을 갈망하는 이유는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다. 셋째, 행복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역설적으로 행복에 무관심할 때 더 획득하기 쉽다. 넷째, 서구인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는 평소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고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평소 재미와 거리가 먼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좇는 대신 일상의 재미를 찾고 실천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목표를 성취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지 않고 산 게 원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안타깝게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뿐더러 원하는 목표도 이루지 못합니다. 삶에 대한 서구인과 우리의 태도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서구인들은 보통 사람들을 처음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뭘 좋아합니까?”(what do you like?), “당신의 취미는 뭡니까?”(what's your hobby?), “당신이 선호하는 건 뭡니까?”(what is your favorite?) 서구인들은 대개 상대방의 선호와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에 반해 한국인들은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몇 살입니까?”,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선호나 취향과는 하등 관계없는 개인적인 지위나 신분과 같은 것들에 질문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행복과 괴로움은 한 끗 차이입니다.
그 한 끗이 바로 재미입니다.
이를 보더라도 서구인들은 평소 무엇을 하면 즐거울지에 관심이 많은 반면, 한국인들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 소유와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행복이 즐거움과 같은 정서적 가치보다 외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 쏠려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또한 행복을 인생의 과정 속에서 얻어야 할 정서적 경험이라고 보기보다 달성하고 성취해야 할 목표와 같은 것으로 인식합니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입니다(Happiness ia a journey, not a destination). 그 여정을 채워가는 방법이 바로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을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경험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일생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괴로움을 행복으로 바꾸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幸)과 괴로움(辛)은 한 끗(ㅡ) 차이입니다. 그 한 끗이 바로 ‘재미’입니다. 괴로움을 행복으로 바꾸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삶에 재미를 더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