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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특집

슬기로운 생각

Thank You

안녕하세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글 · 김유진
만남은 감사의 다른 이름이다. 당신의 배우자와 자녀가, 부모와 형제가, 친구와 동료와 이웃이 무사하다는 뜻이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 만남은 서로를 위해 마음을 크게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서운했던 감정은 잠시 덮고 서로에게 친절한 마음으로 다가서려 애쓰는 고마운 순간이다. 그런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저 빙긋이 웃으며 이 한마디면 족하다. “안녕하세요?”라고.

김유진 편집자 · 작가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20년간 도서를 기획 및 편집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도서관과 학교에서 글쓰기와 출판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쓴 책으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매일 하면 좋은 생각》, 《나를 가장 나답게》 등이 있다.


나는 누군가를 온몸으로 반겨준 적이 있었던가

요즘 실천하는 루틴이 하나 있다. 잠자기 전에 기분 나쁘고 속상했던 마음을 다 지우는 일이다. 나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이나 타인을 향한 서운함을 적당히(?) 잠재우고 그 시간까지 끌고 다닌 부정적인 감정을 없앤 뒤에 웃는 얼굴로 잠든다. 긴긴밤을 지나 아침이 되면, 눈을 뜨자마자 주섬주섬 ‘감사한 일’도 생각해본다. 나로서는 좀 낯간지러운 일이다. 유난히 피곤해 뭉그적거리는 아침은 ‘감사할 게 뭐더라.’ 하고 속으로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화장실이 급해서 후다닥 일어나는 날도 있다. 눈을 뜨자마자 해보는 ‘감사 인사’는 그 마음을 겨우 흉내 내는 정도이다. 사실 진짜 감사는 방문을 열고 나간 뒤부터 시작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우리 집에 온 아기 고양이 꽃님이 덕분이다.

꽃님이는 방문 앞에서 잠을 자다가 제 주인이 나오면 몸을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며 아침 인사를 한다. 내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꽃님아, 잘 잤어?” 하면서 턱과 뺨을 간질이면 꽃님이가 눈을 감고 웃는다. 매일 아침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몸짓으로 인사하는 꽃님이에게 고맙다.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온몸으로 반겨준 적이 있었던가. 그 고마움은 선배 집사인 제부가 해준 말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웃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얘네들은 그 한 가지만으로 제 할 일 다한 거예요.” 매일 아침 꽃님이와 만날 때 그 말이 떠오르면, 조금 전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억지로 감사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행복감에 빠져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낯선 목소리가 내 안에서 넘쳐 나온다.

“꽃님이, 궁모닝! 어이구 어이궁 이뻐라, 우리 꽃님잉. 안녕? 잘 잘쪄영? 아이궁 아이궁 좋아라. 좋은 아침이양.”

연인에게 속삭이듯 혀 짧은 소리로, 말끝에 이응(o)자를 잔뜩 붙여가며,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 말과 말 사이에 리듬을 넣어 평소보다 긴 아침 인사를 한다. 누가 보면 참 유난스러운 아침 인사도 다 있다 할 것이나 하루 중에 맞는 첫 만남의 환대는 조금 과해도 좋지 않을까?


인간관계에서 서운함이나 약간의 미움은 언제나 기본값이다.
그런데도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하며 잠시 웃는 것은
당신의 너그러움이 제 할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남은 서로의 무사와 너그러움에서 온다

이른 아침 꽃님이와의 반가운 만남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만나고 인사하는’ 일이 이어진다. 아침 강의가 있는 날이면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침에 분주하셨을 텐데 그것들 다 정리하고 오시느라 고생하셨고, 잘 오셨어요. 우리 이렇게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인사하는 동안 내 말투가 종교인의 설교로 들리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말로 애써 바꾸지 않는다.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음이 진심으로 기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일찍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이상이 발견되어 강의에 못 오는 사람도 있고, 오는 길에 접촉 사고가 나서 못 오는 일도 있다. 잘 나오던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빠지면 무슨 사정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러니 두셋이든, 열이든, 같은 시간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일상을 꼼짝 못 하게 할 심각한 문제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해결하고 치유 중인 ‘무사’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그 덕분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

가족과 만나는 자리는 어떤가.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늘 좋을 수는 없다. 사랑으로 가득한 관계가 아니라서 아쉽다는 사람, 가족 중에 이 사람도 조금, 저 사람도 조금 불편하다는 이도 있다.

나도 가족 중에 불편한 사람이 있었다. 그를 만나러 갈 때면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마음 단속을 더했다. 관계가 한참 좋지 않을 때는 심리서를 두세 권 읽고, 심리 관련 영상을 수십 개쯤 보고 나서 그를 만났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둘의 신경전은 늘 팽팽했다. 한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노력에 가려졌던 그의 노력이 보이는 계기가 있었다. 눈을 한 번 크게 떠보니 그도 그 나름대로 우리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전히 살갑게 지내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와의 만남에 부담이 없어졌다. 내 좁은 마음으로는 장족의 발전이다.

인간관계에서 서운함이나 약간의 미움은 언제나 기본값이다. 그런데도 얼굴을 보고 함께 식사하며 잠시 웃는 것은 당신의 너그러움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상대의 너그러운 마음도 힘껏 작동하는 중이다. 평생 우리는 서로의 너그러움으로 만남을 이어간다. 서로를 향한 ‘너그러움’ 덕분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평생에 걸쳐 반복되는 관계도 있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지만, 특히 친구, 동료, 지인 관계는 그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우리 곁을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가는 관계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갈등없이 관계가 끊어지고 사소한 일로 데면데면해진다. 잘 지내던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진다는 느낌은 여간해서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당황스럽고 서운해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이 관계가 얼마나 오래가겠어.’ 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멀어진 일이 있었다. 적잖은 충격으로 속을 끓이던 어느 날, 하도 답답해서 선배에게 털어놓았다. 선배는 그게 무슨 고민이냐는 듯 말했다.

“그 관계가 끝이라고 생각해서 힘든 거 아니야? 관계란 게 그러다가도 다시 이어지는 거고. 나는 몇 년간 안 봤던 사람도 언제든지 다시 연락할 수 있어.”

그랬다. 나는 좋았던 관계가 소원해지면 늘 ‘끝’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선배는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사 관계가 영영 끝난다고 해도 선배처럼 마음먹으면 모든 관계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때가 되면 관계에 부활이 찾아온다. 모든 관계가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선배는 언제나 지금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낸다. ‘지금 여기’의 만남에 감사하며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



만남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이지선 씨가 출연했다. 그녀는 20여 년 전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전신 55%의 화상을 입었다. 당시 이지선 씨가 탄 차를 들이받은 사람은 만취 상태의 운전자였다. 그녀는 그 사고로 평생 그 운전자를 향해 분노하고 죄를 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가 말했다.

“저는 ‘사고를 당했다가 아니라 사고를 만났다’라고 표현을 바꾸었어요. 제가 언제까지 피해자일 수는 없잖아요.”

그녀가 바꾼 것은 단순히 단어 하나가 아니었다. 불행한 사고와 헤어져 피해자로서가 아닌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녀가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서 늘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눈빛” 덕분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살아가는 데 초인간적인 힘을 내주며, 이 사랑의 만남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와 이웃은 감사 그 자체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만남만으로 감사합니다

만남은 감사의 다른 이름이다. 당신의 배우자와 자녀가, 부모와 형제가, 친구와 동료와 이웃이 무사하다는 뜻이니 이보다 고마운 일은 없다. 만남은 서로를 위해 마음을 크게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상대의 크고 작은 허물을 덮고 마음속에 솟아있던 미움의 혹을 줄여, 서로에게 친절한 마음으로 다가서려 애쓰는 고마운 시간이다. 모든 만남은 죽지 않고 살아난다. 다시 만나지 못해도 그 자체로 감사한 시간이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와 이웃은 감사 그 자체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감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존재와의 만남으로 우리가 변화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5월은 만남이 잦은 달이다. 가족과의 만남이 기다려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책임과 의무로만 느껴져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혹시 그 만남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잠시 감사를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 만남만으로 충분하다. 힘이 조금 남아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반갑게 인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반갑게 인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의 존재와 감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이른 아침 아기 고양이와 하듯, 요란스러운 인사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빙긋이 웃으며 “안녕하세요?” 이 한마디면 족하다.

‘안녕’은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행복의 시작과 끝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만났다. 우리의 만남을 허락해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자기 자신과의 만남에도 매일 웃으며 인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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