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봄이라기엔 아직은 이르지만 3월은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쉬는 날이지만 유명산자연휴양림 입구에 아침부터 까르르 웃음소리가 높다. 오랜 인연들도 만나고, 산에 올라 맑은 바람도 쐴 마음으로 젊은 IBK인 여섯 명이 모였다. 모두 입행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오랜 인연이다.
“모두 학교에서 만났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선후배 혹은 동기 사이로 알고 지냈죠. 먼저 입행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끌어주기도 했고요.”
퇴직연금부 박성목 대리와 프로젝트금융부 임준성 대리, 서소문지점 박성온 대리와 가산패션타운의 이건희 대리는 같은 학과 동기여서 신입생 때부터 친했다. 그러다 박성온 대리가 복수전공 수업에서 김혜영 대리를 만났고, 과 동아리에 박지은 대리가 가입하면서 지금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졸업 후 입행을 준비할 때도 서로 의지했고, 박성목·임준성·박성온·김혜영 대리가 먼저 입행한 후 이들의 조언과 노하우에 힘입어 박지은 대리에 이어 지난해 이건희 대리가 합류하면서 IBK인으로 ‘시즌2’가 시작되었다. 요컨대, 오랜 인연의 ‘찐친’이랄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서울 곳곳의 맛집을 탐방하는데, 구성원들이 밝고 에너지가 넘쳐 자전거나 스포츠클라이밍도 때때로 함께 즐기는 편. ‘IBK산’ 모집 안내를 보고 ‘춘삼월에 모처럼 등산이나 한 번?’ 아이디어를 박성목 대리가 냈다. 한산한 주차장에서 몸을 풀었다. 영상의 기온이지만 아직은 쌀쌀해 몸을 데워야 부상을 막을 수 있다. 등산로 입구의 지도 앞에 잠시 모였다. 박성목 대리가 코스를 소개한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능선길과 계곡길이 있는데, 우리는 힘든 능선길로 올라 편안한 계곡길로 내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죠?”
“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함께라면 어디인들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땐 몰랐다. ‘힘든 능선길’이 생각보다 더 힘들단 것과 ‘편안한 계곡길’이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유명산은 자연휴양림으로 잘 알려졌다. 휴식을 취하면서 산책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유명산 자체가 그리 만만한 ‘휴양림 뒷산’은 아니다. 정상 부분이 완만하고 인근에 너른 억새밭이 있어 그리 가파르다는 인상은 없지만, 해발 862m로 기본적으로 고도가 좀 있는 편이다. 북한산(835m)보다 높다. 이웃한 용문산(1,157m)에 비해 낮아 ‘순한 맛’ 이미지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본격적인 등산 코스로 손색이 없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장비 갖추고 몸 풀면 가족 산행지로도 좋은 산이니까.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간혹 가파른 경사가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암괴석의 ‘악산’이 아니라 흙을 밟으며 오르게 되는 ‘육산’에 속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만나지 못한 사이에 있었던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이야기들, 오래전에 함께 나누었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일 리가. 오르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모처럼만의 산행이라 숨은 턱에 차오르고 허벅지 근육은 비명을 지른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유머다.
“아! 힘들어. 누가 산에 가자 그랬어!”
“하,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래도 왔으니 좀더 기운을 내서 정상을 봐야죠!”
“이건 우리의 첫 등산이자 마지막 등산이야!”
내내 치고 오르는 오르막이라 그렇지 코스가 그리 길진 않다. 산행에만 집중한다면 1시간 남짓이면 오를 거리, 사진도 찍고 고프로도 찍어보고 하다 보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렇게 오른 정상.
정상의 맛은 인증샷이지.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줄을 설 필요 없이 거의 기다리지 않고 정상 기념사진을 찍었다. 준비해온 간식도 먹고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컵라면에 김밥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더구나 두어 시간의 산행 후 정상에서 먹는 거라면 거부할 도리가 없다.
준비한 라면과 김밥을 거의 먹어갈 즈음.
“잠깐! 하산하기 전에 잠시 축하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초코파이 어딨지?”
초코파이를 쌓고 나무젓가락을 꽂아 케이크를 만들었다. 김혜영 대리의 생일은 2월 29일.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년에만 생일이 있기 때문에 오랜 ‘찐친’들이 그 마음을 헤아려 깜짝 생일 파티를 마련했다. 산 정상에서 생일 축하 노래와 축하가 이어졌다. 윤년인 내년 생일 파티에도 이들은 아마도 함께 있지 않을까.
하산길을 계곡길로 잡은 건 힘든 산행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상상하며 편안하게 내려오기 위함이었는데, 아뿔싸, 아니다. 계곡이 제법 길고 가파르다. 정상에서 능선 따라 계곡까지가 1.6km,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 2.7km다. 그러고 보니 유명계곡은 무더운 시절에 물놀이 명소로 알려졌다. 계곡이 좋다는 건 길고도 깊다는 뜻, 해가 잘 들지 않는 곳곳에 아직 눈이 남아 있어선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아직 얼음이 남은 소는 짙푸른 색으로 그 깊이를 짐작케 한다. 유명계곡에는 세 개의 유명한 소가 있다. 널찍한 마당바위가 있는 마당소,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 소 옆 바위 밑에 박쥐가 살았다는 박쥐소. 한여름이었다면 이 시원한 계곡을 놓칠세라 첨벙거렸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박쥐소를 지나 철계단을 건너면 사방댐이 나오고 이내 산행이 마무리된다.
‘아, 힘들어’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즐거움은 그 이상이었던 건 ‘이짚부스터’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어머님이 싸주신 과일로 에너지와 함께 따스함까지 전해주었던 이건희 대리의 공이 크다. ‘이짚부스터’는 이건희 대리가 신고 온 운동화 ‘이지부스트’가 짚신을 닮아 동료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산행의 마침표는 역시 맛있는 점심일 수밖에. 맛난 닭볶음탕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는 산행 주최자 박성목 대리에 대한 성토와 그래도 내려오니 즐거웠다는 웃음이 반반이었다. 우린 알고 있었다. 우리 다시 함께 산에 오르지 못하리라. 며칠 지나지 않아 모임 채팅방에서 북한산에 진달래가 언제 어느 코스에 피는지, 일정은 되는지 이야기가 오갔다. 진분홍으로 물든 진달래능선을 다녀와 날이 좀 더워지면 유명계곡의 물줄기가 다시 떠오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