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실려 잘 알려진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의 이야기다. 필자는 동대문 길가에서 노인에게 방망이 한 벌을 주문했다. 필자가 보기엔 이미 완성되어 보이는 방망이를 노인은 깎고 또 깎았고, 필자는 차 시간 때문에 노인을 재촉했다. 하지만 노인은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방망이를 깎았고, 결국 필자는 차를 놓치고 말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로봇이 제품을 순식간에 찍어내는 지금 시대에 나무를 직접 깎고 모양을 만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천안의 한 공방. 건물의 문을 열자 진한 나무 냄새가 풍겨온다. 나무를 다루는 곳이라 그런지 탁자도 의자도, 선반과 작은 소품들도 모두 목재로 만들어져 어쩐지 고풍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벽난로에서는 나무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고, 공방 주인의 아들이 나무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를 풀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해질 쯤, 이 조용한 공방에 6명의 IBK인이 방문했다.
“오늘은 나무 도마를 만들어볼 거예요. 나무를 도마 모양으로 자르고, 사포질을 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각인을 하고 오일로 마무리 작업까지 할 거예요. 각자 미리 선택한 나무를 가지고 자리에 앉아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IBK인들은 편백, 캄포, 월넛 등 자신이 선택한 나무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이 모양을 미리 만들어놓은 학생들은 사포질부터 시작했다. 보다 입자가 굵고 거친 사포로 시작해 거친 절단면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면 다시 입자가 얇은 사포로 작업을 이어갔다.
“부지점장님! 사포질을 너무 열심히 해서 나무가 작아진 것 같아요!”
김예진 대리의 재치에 모두가 웃음이 터진다. 꽤 긴 시간 사포질이 이어지면서 팔이 아플만도 한데, 직접 쓸 도마라는 생각에 IBK인들은 힘든 줄 모르고 재미있게 참여했다. 오히려 향긋한 나무 냄새를 맡으며 사포질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힐링이 되는 것 같다는 IBK인들. 모든 것이 빠른 시대에 직접 나무를 깎는 이유를 찾는다면 지금 이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포질과 샌딩 작업이 모두 끝나자 어느새 도마 모양이 갖춰졌다. 편백은 정사각에 가까운 모양이었고, 캄포와 월넛은 가로가 조금 더 길었다. 이제는 준비된 나무 도마에 그림이나 글자를 새기는 ‘우드버닝’ 시간이다. IBK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 나무 도마에 어떤 모양을 새겨 넣을지 고민했다.
“저는 제 아이가 그린 우리 가족을 그려 넣으려고 해요. 아직 어려서 저와 남편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놓았지만 제가 처음 만드는 도마에 저희 가족이 들어간다면 무척 의미 있을 것 같아요.”
권미지 대리는 휴대폰으로 촬영한 아이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왜 이렇게 가족이 많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기가 아직 어려서 저를 3명, 남편을 2명 그렸어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캠핑에 빠졌다는 김예진 대리는 도마를 캠핑할 때 꼭 챙겨갈 거라며 도마에 캠핑용 텐트를 그렸고, 유일하게 월넛을 선택한 김혜민 대리는 꽃을 그렸다. 오늘 참여 신청을 한 황재용 과장은 아이의 뒷모습을 그렸다.
“우리 아이가 이제 1살이 되었는데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도마에 새기고 있어요. 물론 아이가 그린 그림은 낙서에 가까운 그림이지만 이 소중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서, 아이의 뒷모습까지 넣어서 도마에 그리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그림을 모두 완성하고 난 뒤 오일을 도마에 바르고 수업이 끝났다. 나무는 자른 단면을 보고 몇 해를 살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독특한 생명체다.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까지 생명을 유지하며, 계절에 따라 죽음과 탄생을 반복한다. 그래서 나무는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무가 나이테를 통해 세월의 흔적을 남기듯, 오늘 IBK인들은 나무 도마에 서로의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그려 넣었다. 그렇게 도마에 그려 넣은 소중한 순간들은 긴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