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BK 컬쳐

카툰으로 보는 역사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한
박두성의 ‘훈맹정음’

글 · 강일서 일러스트 · 유남영
일제강점기인 1913년 그는 돈을 모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땅을 사드려야겠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당시 관사를 제공해준다는 조건의 공고에 끌려 제생원이라는 맹아(시각장애인)학교에 교사로 지원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교육자로서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고 있는 한글 점자를 만들어 보급한 인물이다. 제생원에 처음 부임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각장애 아동들이 아직 우리 말도 한국어로 잘하지 못하는데, 점자를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자는 아예 한글로 된 것이 없었기에 그는 시각장애 아동들이 앞으로 겪을 아픔에 대해 고민하며 홀로 점자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더군다나 1919년에는 3.1운동의 여파로 일본이 맹아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못 하게 하자, 일본인 관리에게 “실명한 이들에게서까지 조선 말을 빼앗아 벙어리로 만들려는 것이오?”라고 편지를 보내어 일본인에게 저항하며 교육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어 1920년 그는 제자 8명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회’를 비밀리에 결성한다. 그리고 한글과 같이 누구나 배울 수 있게 쉬워야 하고 한글과 같이 점의 수가 적어야 하며,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한글 점자의 원칙을 세우게 된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눈이 멀었다 하여 우울하여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라며 그들을 위로한다. 또 소외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 훈민정음을 구해 한글 창제 원리를 공부하며, 각막염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1926년 당시 훈민정음 반포일로 추정되는 11월 4일, 전국 맹인학교를 통해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취지문을 발송하며, 드디어 7년 만에 훈맹정음을 세상에 반포한다. 그는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 시각장애인들을 찾아다니며 시각장애인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그렇게 63개의 점자 ‘훈맹정음’은 남북한 모두가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으며,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고 있다.



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