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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해외)

‘쉼’이 깃든,
은둔의 바다와 숲

말레이시아 티오만

글 · 사진 서영진

바람 부는 날,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선다.
원시의 섬을 잉태한 낯선 바다는 고즈넉하고 가슴 설렌다.
말레이반도 동남단의 티오만섬으로 향하는 뱃길에는 ‘은둔’의 바다와 숲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 #말레이시아
  • #티오만
  • #트레킹
산과 숲, 고즈넉한 바다가 어우러진 티오만의 깜뽕(마을)

산호 해변과 어촌을 간직한 섬

티오만은 따사로운 어촌과 산호 해변, 무성한 생태 숲을 간직한 섬이다. 섬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섬’에 선정된 수려한 과거를 지녔다. 랑카위, 페낭 등 말레이시아의 대표 섬들이 명성을 누릴 때, 개발의 수혜에서 한발 물러선 채 흙 속 진주처럼 감춰져 있었다.

티오만은 말레이반도 동남쪽 메르싱 일대의 60여 개 화산섬 중 맏형 격이다. 무역항에서 배낭족의 아지트로 변신한 팅기섬, 해양 레포츠의 명소가 된 시부섬, 라와섬 너머로 듬직하게 자리 잡았다.

메르싱에서 1시간 30분쯤 쾌속선이 달리면 엔진 소리만큼 가슴 뛰는 티오만에 닿는다. 휴가철에 섬들을 빼곡히 메우던 단체 관광객을 이곳에서는 만나보기 힘들다. 티오만은 유럽 배낭족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트레킹이나 다이빙을 향유하는 은밀한 아지트다. 제임스 앨버트 미치너 원작의 옛 영화 <남태평양>의 실제 촬영 무대가 된 섬은 매혹적인 풍광을 지녔다.

화산섬 티오만은 폭 19km, 길이 38km인 호리병 모양이다. 중앙에는 말레이반도 해안에서 가장 높은 1,038m 구눙카장산이 우뚝 솟았고, 해변을 따라 10개의 크고 작은 깜뽕(마을)이 이웃 마을과 격리된 채 바다를 바라보며 들어서 있다.

티오만의 해변과 마을은 대부분 섬 서쪽에 둥지를 틀었다. 섬의 관문인 테켁 마을에는 예전 국제선 비행장이 있었고, 메르싱에서 페리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대표 깜뽕이지만 거리에는 요란한 쇼핑 골목 대신 살가운 섬마을 분위기가 묻어난다. 마을 옆 해변에는 바다거북 보호구역이 조성돼 있다. 인근에서 부화돼 성장한 거북들은 산호바다를 가르며 신비를 더한다.

살랑, 겐팅, 페누바, 에어르바탕 등 작은 깜뽕들은 고즈넉한 해변과 소소한 방갈로를 지녔다. 살랑 마을 건너편, 코럴 아일랜드는 산호초를 품은 무인도로 티오만의 투숙객이 찾아드는 명소가 됐다. 살랑 깜뽕과 페누바 깜뽕 사이의 몽키 베이는 티오만섬 최고의 에메랄드빛 바다로 사랑받는다. 몽키 베이의 산책로는 에어르바탕, 파누아 베이를 거쳐 해변을 넘나들며 2시간가량 연결된다.

섬의 관문인 테켁 마을의 망중한
테켁 포구에 정박한 보트들

열대우림 가르는 에코 트레킹

티오만의 탐미는 다이빙, 스노클링 등 바다놀이에 머물지 않는다. 섬이 안겨주는 뜻밖의 선물은 에코 트레킹이다. 모험심 충만한 세계 각지의 청춘들이 이 섬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 역시 숲 트레킹 때문이다. 섬을 걷다가 원시의 열대우림과 이구아나, 폭포수를 만나는 이채로운 체험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테켁 깜뽕에서 동쪽 주아라 깜뽕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무성한 열대우림 너머 숲과 바다에 기댄 마을을 들여다 보는 묘미가 있다. 구눙카장 산을 바라보며 섬 남쪽의 트윈 픽스 봉우리를 아우르는 트레일은 구름과 봉우리가 뒤엉킨 몽환적인 경관이 곁들여진다. 주아라 마을에는 야생 둥지에서 거북이 알을 수집해 부화를 돕는 프로그램을 이방인 대상으로 진행한다.

암벽등반 마니아들은 ‘용의 뿔’로 불리는 700m 높이의 트윈 픽스 봉우리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섬 최남단의 무쿳 깜뽕이 용의 뿔 등반의 베이스캠프로 다양한 루트가 마련돼 있다. 무쿳 마을을 경유하는 코스는 청아한 폭포가 경이로움을 더한다. 무쿳과 아사 마을 사이, 아사 폭포는 열대우림숲 한 가운데에 10단 폭포가 화강암 바위로 쏟아지는 절경을 자아낸다.

티오만섬 전체는 해양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자연의 보고다. 이구아나 등 희귀한 동물과 산호바다의 열대어들을 일상에서 조우한다. 열대기후에만 드물게 서식한다는 라플레시아꽃이 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화산의 흔적이 깃든 카르스트 지형들은 섬의 세월을 묵묵히 강변한다.

섬 서쪽 마을들은 노을에 몸을 기댄다. 하늘과 바다가 붉게 달아오른 아득한 광경은 티오만의 휴식에 정점을 찍는다. 노천바에 앉아 말레이식 밀크티인 ‘티 타릭’ 한 잔을 기울이면 오붓한 일과가 고요하게 마감된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번잡한 호객 행위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열대우림 사이에 숨어 있는 아사 폭포
조호르바루의 힌두교 사원

반도 끝 접경의 도시, 조호르바루

티오만에서 벗어나 북적이는 말레이시아와 조우하려는 청춘들은 조호르바루로 향한다. 메르싱이 속한 조호르주의 주도인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와의 국경도시다.

말라카 왕국의 전통을 계승한 도시는 ‘JB’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싱가포르와 이어지는 둑길 코즈웨이는 경계와 소통의 의미를 지닌다. 조호르바루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낮이면 임금이 높은 싱가포르로 일하러 간다. 주말과 밤에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값싼 물건들을 쇼핑하기 위해 조호르바루로 건너오거나 술집이나 클럽에서 여흥을 즐긴다. 싱가포르에 비해 조호르바루는 저렴하게 놀고먹기에 좋다. 메를린 타워 옆과 이스마일 거리의 야시장에는 노천식당과 술집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말레이, 중국, 인도어 간판과 세계 음식이 가득하다.

2차대전 때 요새로 사용됐던 술탄 이브라힘이나 황금색으로 치장한 빅토리아식 술탄 왕궁은 국경에서 가깝다. 툰 압둘라자크 거리에서는 이슬람 사원 외에 불교, 힌두교 사원과도 친숙하게 만난다.

갑판에서 기도를 드리는 어부들

섬 서쪽 마을들은 노을에 몸을 기댄다.하늘과 바다가 붉게 달아오른 아득한 광경은티오만의 휴식에 정점을 찍는다

몽키베이의 해질 무렵 풍경

티오만 깜뽕의 소박한 방갈로
  • Tip티오만섬 가이드

티오만섬은 조호르바루, 쿠알라룸푸르에서 육로와 해상 교통을 조합해 갈 수 있다. 조호르주의 메르싱이 대표 관문으로 메르싱 포구에서 티오만섬까지는 페리로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페리는 테켁 등 주요 마을을 순회하며 정박한다.

티오만섬에서의 마을 간 이동은 수상택시를 이용한다. 근거리는 바다카약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섬 서쪽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빌려 탈 수도 있다. 테켁 깜뽕에는 골프 코스를 지닌 고급 리조트가 위치했으며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는 살랑과 에어르바탕 깜뽕에 다수 있다.

마을 해변에서 스노클링, 다이빙 체험이 가능하며 현지에서 장비를 대여해 준다. 티오만은 5월부터 8월까지 건기로 여행하기 적합하며, 10~1월은 파도가 높아 숙소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섬은 면세구역으로, 이슬람 지역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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