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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필요한 이유

화이트큐브갤러리 정기화* 관장
금호동지점 고객

* 정기화 관장의 본명은 정명숙이나, 갤러리 관장 및 작품 활동 시에는 정기화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글 · 한율   사진 · 김경수

정기화 관장에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예술은 인간과 인간을 가깝게 이어준다며,
누군가에게 작품에 관해 설명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자신의 꿈에 그들이 예술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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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작품
  • #놀이의공간

미술에 대한 열망을 꺼내다

미술평론가이자 화이트큐브갤러리의 디렉터인 정기화 관장은 늦깎이로 미술 공부를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열정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조선대학교 미학미술사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녀가 만학도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렸을 적에 한옥에 살았어요. 어머니가 이불 홑청을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으셨는데, 그 하얀 홑청이 햇빛을 받으면 무지갯빛을 냈어요. 마루에 앉아 그 빛깔 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 예술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반대하셨어요. 예술은 배고픔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미술관을 즐겨 찾았어요. 전시 관람이 저의 정신적 놀이터였죠.”

서울로 대학을 간 딸은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미학미술사를 들으며 엄마를 떠올렸다. “미학미술사는 엄마에게 딱 맞는 학문”이라는 딸의 말에 큰 용기를 내어 도전장을 내기로 했지만 또 다른 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정기 교수님의 지도를 꼭 받고 싶었는데, 영어 미전공자는 시험에 불합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보를 듣게 됐어요. 그래서 40대 초반 영어과에 학부 편입해서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공부하는 치열한 삶이 펼쳐졌죠. 다행히 높은 학점을 받아 40대 후반에 진정으로 원하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기화 관장은 미학의 거장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헤겔(G.W.F. Hegel), 미술사의 거장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막스 드보르자크(Max Dvořák)까지 수많은 미학자와 미술사가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뵐플린의 양식사’로 석사 논문을 쓴 그녀는 박사과정에서 20세기 도상해석학의 거장 파노프스키를 통해 작품의 다양한 의미를 찾고 종합적으로 그림을 분석하는 자신만의 방식과 즐거움을 알게 됐다.

“돌이켜보면, 미술에 미쳤었던 것 같아요(웃음). 수업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까지 다 끝낸 후에는 글을 쓰거나 책만 팠어요. 내용이 어렵다 보니 읽고, 또 읽고 그랬죠. 힘들었지만,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미술, 청각으로 느끼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절규>를 감상하면서 조형과 색채가 소리로 전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정기화 관장. 이는 시각 예술이 청각적 감각으로 혼재되는 경험이었다.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불리는 <절규>를 관람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충격도 컸지만, 갑자기 머릿속에서 비명이 들려오는 환청을 경험했어요. 이후 그림을 볼 때면 노랫소리, 빗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등 청각적 요소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그림에서 ‘소리’를 찾는 건 그림에 생기를 더하는 그림 감상의 묘한 즐거움이더군요. 국내외 전시를 찾아다니면서 그림에서 청각적 요소를 찾는 저만의 작업이 시작됐어요.”

2019년 그녀의 첫 번째 책「 그림을 듣고, 화가를 읽다」가 탄생한 배경이었다. 책은 르네상스부터 20세기까지의 미술사에 걸작을 남긴 18명 화가의 작품을 청각적 요소에 주목해 분석했다. 미셸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는 군중의 함성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와 아름다운 춤곡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의 <농부의 결혼식>에서는 서민들의 축제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림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좀 편안하고 즐겁게 그림에 다가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어요.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정답이라는 게 없어요.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자기만의 풍성한 이야기와 감동을 만날 수 있어요.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를 많이 관람하면서 그림과 가까워져야겠죠. 본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요.”

즐거운 놀이의 공간, 화이트큐브갤러리

정기화 관장은 지난 2017년 광주시 서구 매월동에 화이트큐브갤러리를 오픈했다. 건물 3층에 자리한 갤러리는 그림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듬뿍 녹아 있는 공간이다. 또한 미술평론가로서 글을 쓰는 공간이자 디렉터와 작가, 작가와 감상자, 디텍터와 감상자 간의 간극을 줄이는 소통의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작가와 관람객이 부담 없이 놀이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네덜란드의 역사문화가인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유희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정의했어요. 개인적으로 호모 루덴스에 긍정의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문화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왜 돈이 안 되는 갤러리를 운영하냐고 묻는다. 정기화 관장은 그 질문에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갤러리에서 누군가에게 작품을 설명해 줄 때, ‘덕분에 전시에 재미를 느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이유다.

늘 새롭게, 도전하며 나아가고 싶은 마음

정기화 관장은 「고독한 진실, 그림으로 만나다」라는 신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 팬데믹으로 전시를 할 수 없었던 동안 써온 글을 선보이게 된 그녀는 다시금 설렘을 마주하고 있다.

“제가 보낸 지난 시간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 어떤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던 시간이었어요. 무슨 일이든 재미있고 즐거우면 지속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가 축적돼 자신만의 성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 제가 체득한 지론이에요. 덕분에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일은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꼭 해보라. 무슨 일이든 그 일이 즐거우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고 조언할 수 있는 인생의 선배가 되었죠. 그리고 제 지론은 저 스스로에게도 적용돼요.”

지금까지 정기화 관장의 삶은 멈추지 않고 늘 어딘가를 향해 나아갔다.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화이트큐브갤러리에는 송영학 작가가 그린 정기화 관장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강아지의 눈이 마음에 든다”며 애정의 눈빛으로 작품을 바라보았다. 작품 속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주인공은 새로운 무언가를 고뇌하고 갈구하는 정기화 관장의 분위기를 쏙 닮아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더욱 그러했다.

지금까지 정기화 관장의 삶은 멈추지 않고늘 어딘가를 향해 나아갔다.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길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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