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
‘할매니얼’
맛있는 먹거리의 기준은 세대마다 다르다. 평균적으로 20·30대는 달고 짠맛을 좋아하고, 40·50대는 삼삼하고 고소한 맛을 즐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맛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레트로 열풍이 우리 식탁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하면서 ‘할매니얼’이란 단어를 탄생시킨 것이다.
할매니얼은 할머니와 밀레니얼을 합친 단어로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옛날 음식에 요즘 감각을 더한 MZ세대를 뜻한다. 그 취향의 단편적인 예가 흑임자와 인절미, 약과 등을 활용한 디저트다. 유행에 민감한 MZ세대가 마카롱 같은 아기자기한 디저트가 아닌 약과, 개성주악 등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신선함’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선함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흑임자, 쑥 등이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맛임에도 불구하고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즐겁게 건강을 챙기는 헬시플레저 현상이 늘면서 할매니얼풍 디저트가 다른 음식에 비해 재밌고 건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SNS에도 할매니얼 관련 게시물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할매’를 검색하면 ‘할매감성’, ‘할매입맛’ 등 다양한 연관 검색어가 뜬다. 특히 ‘할매입맛’을 검색하면 5만 7천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올 정도다. 해당 해시태그로 올라온 게시물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쑥, 인절미, 약과 등을 이용해 만든 디저트다.
패션의 완성은 역시 클래식
‘그랜파코어’
먹는 것뿐만 아니라 패션에도 레트로 열풍이 불고 있다. 바로 ‘그랜파코어(Grandpa Core)’ 스타일이다. 할아버지 옷장에서 꺼낸 듯한 옷으로 멋을 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랜파코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한 스타일이란 뜻으로, 자신만의 멋을 발산하는 멋쟁이 할아버지들의 스타일을 말한다. 즉, 빈티지와 클래식 요소에 현대적 센스가 가미된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랜파코어의 가장 큰 특징은 니트, 스웨터, 옥스퍼드 셔츠 등에 클래식한 패턴이 곁들여진 모자, 넥타이 등의 액세서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노르딕과 아가일 등 독특한 패턴으로 꾸며진 스웨터는 그랜파코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언뜻 평범하고 올드해 보이는 그랜파코어가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편하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키치함에 있다. 또 실제 할아버지 옷을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높아 패스트패션을 지양하는 요즘 세대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 캐주얼 브랜드인 헤지스는 올해 1~2월 기준 그랜파코어 스타일의 대표 아이템인 케이블 니트와 반집업 니트, 카디건 상품 등 케이블 소재 니트류 판매량이 작년 대비 약 125% 성장했고, 스파브랜드 스파오에서 출시한 남녀공용 럭비 스웨트 셔츠 또한 작년 12월~올해 2월에 기록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을 편안함으로
메꾸다
할매니얼과 그랜파코어의 가장 큰 공통점은 편안함이다. AR과 AI, 메타버스 등 매일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실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있지만, 덕분에 끝나지 않는 업무와 소통 등으로 피로감은 계속 누적되는 중이다. 이에 휴식에 대한 MZ세대의 간절함 역시 신기술의 발전과 비례하게 상승하고 있다.
디지털 문명에 발맞춘 얼리어답터가 되고 싶은 동시에 디지털과 동떨어진 삶을 추구하는 양가감정 속에서 편안함을 제공하는 할매니얼과 그랜파코어가 새로운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열된 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갈증이 깔려 있다. 현실이 삭막할수록 사람들은 인간미를 추구한다. 때문에 빌딩 숲속 획일화된 유행템이 아닌 동묘 앞 풍물시장에서 본인 스타일에 맞는 구제 옷을 고르고, 을지로 옛 골목에서 할매니얼 트렌드가 반영된 디저트를 먹으며 자신만의 ‘힙’을 찾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세련된 것만 좋아할 것 같은 MZ세대가 할매니얼과 그랜파코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친근함과 편안함보다는 일종의 챌린지처럼 당시의 맛과 옷을 체험하며 현재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천편일률적인 유행 트렌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감성을 추구하는 MZ세대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복고와 뉴트로 감성에 대한 MZ세대의 열광은 계속될 것이란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