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찾은 산
소백산행을 마치고 다음 산행을 언급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내려가시죠”였다. “이렇게 힘든데 산은 무슨 산이냐. 다신 안 올 거다”라는 메시지가 눈빛으로 전해졌다. 근데 다시 모였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산에 다녔던 건 아니다. 지난해 소백산의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해서 다시 IBK산의 문을 두드렸다고.
일기예보 상으로는 비가 조금 내리다 그치고 오후에 갠다고 했는데,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비가 내린다면 맛보기로 조금만 내릴 것 같진 않다. 안 오기를 바라면서 몸을 푼다. 오면 맞으면서 가는 거고.
기업지원부 노재석 팀장이 스마트폰으로 국민체조 음악을 틀었다. 오래된 몸풀기 동작들이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트레칭과 워밍업, 산행 전 사전운동으로 훌륭하다. 산행을 기획한 청주율량지점 권재원 차장이나 오창지점 박수규 팀장은 다소 올드한 몸풀기가 익숙하면서도 웃음이 난다. 함께 온 당진지점 정범식 차장과 이성해 과장, 진천지점 임준영 대리, 외환사업부 김정겸 과장도 익숙한 듯 몸을 푼다.
이 중에서도 김정겸 과장은 산행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지난해 소백산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체중을 감량하고 집 근처 둘레길을 꾸준히 걸으면서 체력을 키워왔다. 천천히 가는 게 민폐랄 것은 없다. 즐겁고 안전하게 다녀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다만 스스로에게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다. ‘내가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한 번 가보자’, 이런 거지. 세상 많은 위대함은 도전정신과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천천히 가는 게 민폐랄 것은 없다. 즐겁고 안전하게 다녀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월악산국립공원의 히든카드, 금수산
금수산(錦繡山). 금수산이야말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대표적인 산이다. 오죽하면 이름이 금수산이겠는가. 정상부에 거대한 암괴들이 즐비한데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이 무채색의 암석과 조화를 이루면서 비단을 수놓은 듯하여 이름이 금수산이다. 게다가 주변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라 우뚝하고, 아래로는 충주호가 있어 일품의 경치다.
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는 까닭에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이정표도 곳곳에 있다. 탐방로는 크게 두 가지 코스. 동쪽에서 오르는 상학 코스와 서쪽에서 오르는 상천 코스가 있다. 상천 코스가 조금 더 길고 험한데, 궂은 날씨를 감안해 상학 코스로 오르기로 한다. 정상은 1,016m로 높아 만만찮은 산행이 예상됐다.
“우리는 일단 출발하면, 정상을 봐야 해! 그게 우리들의 산행이지.”
“그치. 비가 오네? 그럼 비를 맞고 가는 거지. 자, 우의 하나씩들 받아.”
“지금은 안 와도, 곧 오겠네요. 자, 가시죠. 정상까지 멀지 않습니다.”
한여름의 소백산도 쭉쭉 치고 나갔던 이들이라 망설임이 없다. 물론 날씨가 궂으면 산행에 많은 주의를 해야 한다. 바윗길이든 흙길이든 훨씬 미끄럽고, 체온조절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운동과 산행에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분위기도 워밍업을 하는 것이다. 즐거우면 고된 것도 덜하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텐션
탐방로는 평탄하게 이어진다. 나무로 만든 계단길이 연거푸 이어지다가 깊은 숲속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면 바위 구간이다. 암반 위를 쇠줄 잡고 오르는 구간이 아니라 크고 작은 바위가 널린 구간을 조심스럽게 계단처럼 올라야 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리 많지도 굵지도 않다. 되도록 비가 오기 전에 진도를 빼는 게 좋은데 너덜 구간이라 쉽지 않다.
너덜이 끝나면 곧바로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부터 정상까지는 숨을 돌리면서 천천히 가도 10~15분이면 된다. 문제는 능선에 이르기 전에 장대비가 시작됐다는 것. 다들 알아서 자기가 선 위치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공유한다.
“여기 미끄럽습니다. 나무 잡고 조심히 오세요.”
“오케이. 다들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천천히~!”
“비 맞으면서 산행하는 맛, 이거 괜찮네.”
드디어 정상. 기쁜 마음으로 하이파이브. 빗속을 걸어 오른 정상이라 조금 더 특별했을까, 1년 만의 산행이라 그랬을까. 작은 정상석이지만 함께 산을 오른 감동은 산줄기처럼 꿈틀댄다. 모든 일이 그렇듯,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텐션이다. 지치지 않고 웃으면서 해볼 수, 해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늘 그렇듯, 산행으로 느슨해진 텐션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자 이제 내려가자! 백숙 먹으러 가자!”
대부분의 산행은 차를 회수해야 해서 올라간 길을 돌아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금수산은 망덕봉삼거리로 능선에 올라 정상에 갔다가 금수산삼거리로 내려올 수 있어 지루하지 않은 산행을 할 수 있다. 물론 두 코스 모두 너덜지대가 있다. 그래서 결국 한두 명이 미끄러졌다던가 어쨌다던가.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볍기 마련이라 축지법이라도 쓴 듯 주차장에 이르렀다.
산행 후엔 도리없이 백숙
고된 탐방로에 비까지 제법 내려 몸은 몸대로 고된 것이 산행을 마친 후에도 몸이 으스스한 게 뭔가 따스한 국물을 몸이 원하는 것 같았다. 이건 백숙을 먹고자 하는 큰 그림이 아니라 내내 비를 맞으며 산행한 이들의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이다. 산행 시작할 때 봤던 백숙집으로 직행.
오랜만에 모여 산행도 즐기고 식도락까지 만끽한 충북회. 살아가는 일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쌓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그러면서 조금씩 깊어지는 것이라 어렵게 시간을 내 함께 보낸 하루가 소중하다. 물론 때론 나아가야 하는 길이 어렵고 험해도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 좋은 기억이 더 필요한 법이고.
금수산 INFO
- 주소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 입산
시간상시 개방 - 코스상학주차장 - 망덕봉삼거리 - 정상 - 금수산삼거리 - 상학주차장(약 5.6km)
- 문의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 043-653-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