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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키 인플레이션’에 갇힌
세계 경제

글 ·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물가 잡힐까?’ 고물가에 시달리는 민생경제에 있어 가장 중대한 질문이 아닐까? 2022년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2024년까지도 쉽게 풀리지 않을 세계 경제의 숙제가 될 전망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직후, 물가 상승 속도가 가팔라졌다. 2022년 7월 한국 물가상승률은 6.3%에 이르며, 25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물가의 고착화

소비자물가 상승률(Headline Inflation)은 2023년 7월까지 2.3%로 가파르게 떨어졌지만, 이후 3.8%로 급격히 반등했다. 2024년 4월 물가상승률도 2.9%로 2% 목표 물가에 부합하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계절적 요인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한 영향도 작용했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유가나 곡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근원물가 상승률(Core Inflation)은 2024년 4월 2.3%를 기록하며, 기조적으로 물가 안정화에 접근하고는 있으나, 서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아 물가안정을 당장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월별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추이

자료 : 통계청



물가가 안 잡힌 채 ‘스티키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 끈적끈적하게 잡히지 않는 고물가 기조)’이 나타날 근거는 상당하다. 첫째, 중동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불안하게 전개되고 있고, 중동전쟁이 확전되는 양상으로 가게 될 경우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할 우려가 있다. 둘째, 사우디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OPEC+는 원유감산 조치를 장기화하고 있어 국제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셋째, 엘니뇨와 이상기후 현상으로 농산물 원자재 가격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넷째, 미국 내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파업 시위는 임금인상 압력으로 작용해 글로벌 물가안정 시점을 지연시켜 놓고 있다. 다섯째, 국내에서도 전기세, 가스요금, 버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고 있고, 이를 반영한 서비스 물가가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가상승률의 개념상 올해의 물가를 전년동월의 물가와 비교해 등락률을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2024년에는 기저효과가 빠지게 된다. 즉 2022년 상반기 동안 고조되었던 물가상승률의 흐름을 고려하면 2023년 상반기까지만 물가상승률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그 이후는 인플레이션 파이팅의 여정이 훨씬 어려울 수 있다.





고금리의 고착화

고물가는 고금리를 불러왔다. 고물가의 고착화는 고금리의 고착화를 불러온다. 2022년~2023년은 긴축의 시대다.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작한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는 0.25%였던 기준금리를 짧은 시간 내에 5.5%로 올려놓았다.


OECD의 주요국별 기준금리 전망

자료 : OECD(2023.9) OECD Economic Outlook



자연스럽게 관심은 향후 금리에 쏠린다. 2023년 하반기는 ‘기준금리 인상의 종료’가 시작되는 변곡점에 해당한다. 2024년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있을 것인지, 있다면 언제 있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기준금리 인하의 시점은 곧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가 될 것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즈(Financail Times)는 2023년 9월 ‘Higher for longer’라는 문구를 표지에 걸었다. 2024년 상반기까지는 목표하는 물가수준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겠다. 최근의 통화정책 기조를 반영한 명확한 표현은 ‘Higher for longer’다. 당분간은 높은 기준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다. 2024년 하반기에 물가 지표가 ‘확실히’ 안정화될 경우, 1~2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한다.





저성장의 고착화

고물가-고금리의 압력은 저성장을 더 고착화한다. 고물가-고금리는 경제성장에 제약을 가하기 마련이다. OECD는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2년 3.3%, 2023년 3.0%, 2024년 2.7%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3.8%~3.9% 수준을 밑돌아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할 것으로 판단했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기업이 어렵지 않을 수 없다. 원자재와 부품값이 오르니 수익이 악화된다. 기업의 자본은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으로 구성되는데, 타인자본 즉 빌린 돈의 대가(이자)가 높으니 적극적으로 신산업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다. 역동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없는 이유다.


OECD의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

자료 : OECD(2023.9) OECD Economic Outlook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가계도 어렵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금리 상황에 이자 상환 부담이 가중되어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들고 있는데, 물가는 한없이 비싸니 소비할 수 없다. 고물가 기조가 유지되는 한 실질소득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텅장’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도, 이자나 공과금 등이 빠져나가면 텅텅 빈다는 의미다.
가계와 기업이 쪼들리니, 정부도 예산지출을 확장적으로 펼칠 수가 없다.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나오는 게 법인세고, 가계의 노동 및 소비활동에서 나오는 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아닌가? 경제 주체의 경제활동 수준이 수축되는 국면이기 때문에, 세수가 많이 걷힐 수도 없고 세출을 많이 늘릴 수도 없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장적으로 사용했고, 2024년은 재정건전성을 살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긴축재정을 계획할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정부지출도 쪼그라들기 때문에, 경제가 확장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티키 인플레이션,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스태그플래이션(Stagflation, 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경제 주체는 물가 상황에 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물가상승률이 정점을 찍고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물가 아직 안 잡혔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목표제하에 있다. 한국이나 미국 등과 같은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목표 물가는 2%다.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정점을 이미 통과했고, 미국도 하향 안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2%라는 목표 물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4년 상반기까지 2%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 제약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것이지,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것과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물건 가격이 100원→200원→300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가격은 각각 100원씩 올랐지만, 상승률은 100%에서 50%로 떨어졌다. 즉, 상승률이 떨어져도 가격은 같은 폭으로 올랐음을 이해해 볼 수 있다. 2024년 물가상승률이 다소 안정화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지만, 소비자들은 2023년에 경험한 비싼 물건 가격보다 약 3% 정도 더 높은 물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투자자로서는 시장을 균형되게 판독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시장의 과도한 기대감에 편승하는 것도 주의하고, 연준의 강한 경계감도 이해해야 한다. 글자가 아닌 행간을 읽어내야 한다.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시장과 연준의 입장 차를 판독해야 한다. 시장의 기대만으로도 자본시장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고, 주식은 심리지표이며, 시장에 선행하는 것이니 말이다. 2024년 중반기에는 ‘미국 기준금리가 곧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될 것이고, 이 시점에 자본시장으로 돈이 강하게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읽어내야 한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고물가-고금리는 기업의 신규투자를 억누르는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사업 의지를 고취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 한파나 폭설과 같은 계절적 요인과 설 수요가 맞물려 식료품 물가가 급등할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편, 끈적끈적한 물가 흐름에 고충을 겪고 있는 민생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소득층에 대한 세심한 정부의 대응책이 요구된다. 같은 물가 상승에도 엥겔지수가 높은 저소득층에게 그 충격은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소득이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어,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삶의 질을 유지하기마저 힘들다. 생계비 마련을 위한 대출에 의존하고, 이자 상환 부담은 가중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안전판을 확대해야 한다.






Profile.
글. 김광석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및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을 역임하고 있다. 유튜브 <경제 읽어주는 남자TV>를 통해 경제 전문 유튜버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