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아이돌 그룹 PLAVE(플레이브)가 지난 3월 초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 MBC ‘쇼! 음악중심’에서 플레이브의 신곡 ‘WAY 4 LUV’로 1위에 등극했는데, 이는 버추얼아이돌 역사상 최초다.
플레이브의 그간 기록을 살펴보면 버추얼아이돌 팬덤을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긴 어렵다. 플레이브의 두 번째 미니앨범 ‘ASTERUM : 134-1’은 음반 초동 판매량이 56만 장을 넘어서며 자신들의 ‘커리어 하이’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플레이브는 또한 지난달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한 첫 단독 콘서트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성료해 버추얼아이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K팝과 메타버스의 확산으로 배출된 버추얼아이돌이 대중 사이에서도 인지도를 높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최근 K팝 산업에서 급부상한 버추얼아이돌은 사실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최초의 사이버가수 ‘아담’ 이후 2001년 5명의 실제 멤버와 1명의 사이버 멤버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나스카’, 2012년 보컬로이드(Vocaloid) 캐릭터가수 ‘시유’에 이르기까지 가상세계 아이돌에 대한 시도는 계속됐다.
국내 버추얼시장은 그간 2D 캐릭터를 좋아해왔던 팬층을 기점으로 서서히 인기몰이를 하다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버추얼아이돌 그룹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라이엇 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만들어진 ‘K/DA’, ‘이세계아이돌’ 등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 방송인 우왁굳이 프로듀싱한 버추얼걸그룹 겸 스트리머 그룹인 ‘이세계아이돌(이하 이세돌)’은 지난 2월 10일과 11일 이틀간 아프리카TV에서 데뷔 방송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첫 타자인 ‘비챤’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 순서인 ‘릴파’까지 약 5만 명의 평균 시청자 수를 기록했으며, 가장 마지막 순서였던 ‘고세구’의 동시 시청자 수는 7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 몰이를 했다.
앞서 지난해 ‘지스타2023’ 개막 첫날인 지난 11월 16일 넷마블이 지스타에서 이세돌 멤버 ‘릴파’와 선보인 무대 행사 온라인 방송이 트위치 한국 동시간대 스트리밍 시청자 1위를 기록했다. 같은 날 틱톡,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중계된 온라인 방송도 동시 시청자 약 1.6만 명을 기록하며 버추얼셀럽의 영향력을 톡톡히 증명했다.
가상아이돌의 성공사례가 쌓이면서 연예기획사들이 버추얼아이돌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월 25일 데뷔한 ‘MAVE:(메이브)’는 넷마블F&C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한 4인조 가상걸그룹이다. 메이브는 데뷔와 함께 ‘MAVE: 또 다른 세계’라는 웹툰을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웹툰에 연재했다.
다만 이들 버추얼아이돌이 AI 기술로 이루어진 ‘순수’ 버추얼아이돌이라면, 5인조 버추얼보이그룹인 플레이브는 결이 조금 다르다. 멤버마다 실제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다 현실과 밀접한 버추얼아이돌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모션트래킹과 실시간 렌더링 기술 등을 통해 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동작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에 몰입감과 공감대 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버추얼아이돌이 아이돌 스타의 음주운전, 마약 등 사건·사고나 ‘군백기(군입대 기간 중단)’, 열애설 등의 이슈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기성 팬덤에 염증을 느낀 팬층을 빠르게 확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투자 대비 성능도 뛰어나다는 점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버추얼아이돌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좋은 ‘브랜드’다. 특히 게임업계에서 버추얼휴먼은 인게임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나 영상 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 접목해 활용하기에 용이하다. 또한 디지털 아바타 스킨에서 의류와 액세서리 등과 같은 상품 판매까지 잠재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버추얼아이돌을 지원하기 위해 전용 상품을 구입한다. 성공적인 마케팅 선례는 버추얼아이돌의 시장 가치를 보여준다. 또 실제 아이돌이나 스타보다 통제 가능하고 비용도 저렴한 버추얼아이돌은 국내외에서 멀티 산업 브랜드의 파트너가 되었다.
중국 상하이 공과대학이 지난 2022년 발표한 ‘버추얼아이돌 특성이 소비자의 의류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버추얼아이돌의 인기도, 동질성, 관련성 및 의인화는 대규모에서 소규모까지 고객의 구매 의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중국의 많은 회사가 30개 이상의 현지 버추얼아이돌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라면서 성공적인 사례로 릴 미켈라의 패션 브랜드 콜라보를 꼽았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이자 팝 가수인 릴 미켈라는 설정상 19세 미국 LA 출신 브라질계 미국인 여성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304만 명. 유튜브 구독자 27만 6,000명, 인스타그램 게시물 광고 하나에 1,000만 원으로, 2020년 기준 한 해에만 벌어들인 돈이 130억 원으로 알려졌다. 릴 미켈라는 루이비통, 샤넬, 버버리 등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와 성공적으로 협력했다. 릴 미켈라는 수많은 패션브랜드 콜라보 외에 자신의 인기를 사회적 대의를 지원하는 데 사용해 비즈니스 가치와 사회적 신뢰도를 높였으며, 이로 인해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버추얼아이돌의 부상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다양한 산업에 걸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더현대 서울에서 한 달간 순차적으로 진행한 버추얼아이돌 세 팀의 팝업스토어에 10만 명 고객이 몰렸다고 밝혔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 2월 15일부터 3월 17일까지 ‘이세계아이돌’, ‘스텔라이브’, ‘플레이브’를 한데 모아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는데, 이 기간 동안 매출이 7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팝업스토어를 통해 버추얼 아이돌 그룹 멤버와 같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홀로그램 부스, 단독 영상 상영 등 오프라인 공간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메디힐은 지난 4월 새로운 브랜드 모델로 버추얼아이돌 플레이브를 발탁했다고 밝혔다. 버추얼아이돌로서 플레이브의 스토리에서 발견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이색적인 모델 선정의 배경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메디힐은 플레이브와 함께 향후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초 전 세계 최초로 기내 안전 비디오에 버추얼휴먼을 출연시켰다. 승객은 넷마블 자회사 넷마블F&C의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만든 4인조 버추얼걸그룹 ‘메이브(MAVE:)’, 승무원은 버추얼휴먼 ‘리나(Rina)’다. 다양한 연령대 및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고객 눈높이에 맞춰 버추얼휴먼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했다는 게 대한항공 측의 설명이다. 세련된 영상미로 승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시청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버추얼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을 결합하여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면서 경제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이머전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3조 원 규모인 가상인간 시장 규모가 연평균 36.4%씩 성장해 2030년에는 700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K팝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국내 버추얼아이돌은 한국을 넘어 다양한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 플레이브의 경우 2집 미니앨범으로 일본 오리콘차트 주간 앨범 랭킹(2월 26일~3월 3일)에서 14위를 달성하면서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메이브는 지난해 데뷔와 함께 공개한 타이틀곡 ‘판도라’ 뮤직비디오가 약 2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기는 등 국내외에서 빠르게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지화 노력과 전략적 파트너십이 이들의 글로벌 확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버추얼아이돌의 개발과 유지는 진보된 기술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과 모션캡처, AR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은 버추얼아이돌의 상호작용을 더욱 정교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적인 표현과 실제와 같은 움직임, 그리고 향상된 상호작용은 팬 참여를 심화시키고 장기적인 흥미를 지속시킬 것이다.
이러한 버추얼휴먼의 기술변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와 일상에 미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 전반에서 대응을 넘어 기존의 콘텐츠를 뛰어넘을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