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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금융 시대,
혁신과 그림자 사이

글 · 정초원 <한경 머니>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금융의 만남은 글로벌 시장을 어떤 미래로 이끌게 될까. 전에 없던 ‘금융의 혁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한편, 시장에 더없는 혼란을 일으킬 ‘재앙’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AI와 금융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들여다본다.




글로벌 금융, AI 활용해 ‘레벨업’할까

생성형 AI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금, 금융권에서도 AI는 그 어떤 주제보다도 뜨거운 화두다. 사실 금융 업종의 AI 기술 활용은 오래전부터 거론된 이야기다. 이미 수년 전부터 챗봇, 상담 AI 등 대중 친화적인 영역에서 AI를 활용해 왔고, 업종에 따라 이상 거래탐지, 신용평가 등 주요 분야에서도 AI 기술을 업무에 접목했다.
그러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모건스탠리’는 챗GPT를 활용해 10만 개 이상의 리서치 자료를 분석한 AI 툴을 개발해, 재무관리사 300명을 대상으로 AI 툴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최근에는 내부 자산관리직원에게 AI비서를 제공해, 더욱 고차원적인 금융 투자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AI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또 ‘JP모건’은 대출계약서를 몇 초 만에 해석할 수 있는 AI 기반 계약 분석 도구인 ‘COiN 챗봇’을 만든 것을 비롯해, 4,000개에 달하는 AI 관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변화의 물결은 민간 금융사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행까지 가닿는 분위기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지난해 AI를 활용해 금융 위기를 조기에 경보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AI에 대한 금융 산업의 관심은 글로벌 투자은행 내 AI 조직 인사 정책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3월 모건스탠리는 오픈 AI와 협업해 챗GPT 기반 직원용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만든 제프 맥밀런 수석을 AI 정책 총괄로 앉혔다. 투자은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AI 부문을 조직의 핵심 무기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골드만삭스’도 아마존웹서비스(AWS) 기술 부분 부사장이었던 마르코 아르젠티를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임명해, AI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굵직한 투자은행들이 조직 내 AI 사령탑에 무게를 실으며 AI가 불러올 더 큰 변화에 대응하려는 모습이다. 방대한 자료 분석과 정리는 AI에게 맡기고, 고객을 관리하는 자문 업무에 힘을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아직 금융사들이 AI 기술을 혁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금융소비자들에게 익숙한 AI 서비스인 챗봇만 하더라도 단순 질문을 해결하는 데는 일부 유용하게 활용돼 왔지만, 사람을 대체할 정도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기술 환경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늬만 ‘디지털 퍼스트’를 실행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망분리 규제’가 꼽힌다. 망분리는 금융사 내부망에 연결된 전산시스템과 단말기를 외부망(인터넷망 등)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제도다. 외부 공격을 막기 위해 10년 전 국내 금융권에 도입됐다. 이 규제로 인해 국내 금융권의 해킹 피해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AI 등 디지털 기술 개발에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었다. 최근에는 망분리 규제를 합리화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AI 투자를 둘러싼 논쟁

2010년대 디지털 자산관리가 금융권의 화두에 오르면서, AI를 기반으로 하는 ‘로보어드 바이저(robo-advisor)’가 주목받은 적도 있다. 다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만능’은 아니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투자자가 선택한 로보어드바이저의 종류나 투자 유형에 따라 수익률은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는 일부 자산가가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투자 자문을 대신해주는 개념이라, 유수의 펀드매니저가 직접 관리해주는 포트폴리오를 압도하는 성과를 내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기엔 현재로선 어렵다. 안정적인 수준에서 장기 투자를 생각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그렇다면 AI 투자 시장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최근에는 AI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기초지수를 설계해주는 ‘다이렉트 인덱싱(direct indexing)’이 시장 흐름을 바꿀 새로운 물결로 거론되고 있다. 다이렉트 인덱싱은 AI를 활용해 개인의 투자 성향과 목적, 생애주기 등을 고려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해준다.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의 장점을 고루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AI가 제시하는 투자 전략과 분석을 바탕으로 ‘나만의 ETF’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ETF 못지않게 인기를 끌고 있는 서비스다. 가까운 미래에 국내 시장에서도 다이렉트 인덱싱이 대세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아,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컨설팅 업체 ‘올리버와이먼’에 따르면 글로벌 다이렉트 인덱싱 시장 규모는 2020년 3500억 달러에서 2025년 1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대화형 AI를 투자에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알레한드로 로페즈리라 미국 플로리다대 경제학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챗GPT를 통해 금융 뉴스가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결과 수익률 예측 방향이 기존의 무작위 예측 방식보다 훨씬 정확했다.






비용 대비 효율성과 리스크

한편으로는 AI에 투자했을 때 누릴 수 있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기술을 서비스에 제대로 접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높은 비용이 든다. 최근 이슈가 되는 초거대 AI, 생성형 AI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핀테크 업체를 비롯해 수많은 금융사가 너도나도 AI 기술을 도입했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무늬만 AI 기술’인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AI를 통한 업무 효율화는 장기적으로 금융 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사가 AI에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AI를 통해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큰 배경으로 자리한다. 다만 당장 큰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금융 서비스에 AI를 접목했다고 해서 단기간에 상품 수익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거나 고객군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AI 시스템이 고도화될수록 덩달아 높아질 운영 비용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챗GPT가 답변 하나를 내놓기까지 수 달러의 비용이 든다”면서 “컴퓨팅 비용이 눈물 날 정도로 커, 수익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AI의 고비용 문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초거대 AI는 어마어마한 전력 자원을 소모하는 ‘돈 먹는 하마’로 불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생성형 AI운용에 일반 서버 3000대를 사용하는 전력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연적으로 높은 자원이 사용되는 만큼 그에 따른 탄소 배출량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개별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별개로, 그만큼의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만큼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뒤따른다. 초거대 AI가 일으킬 혁신 뒤에는 그만큼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가장 큰 이슈는 AI의 신뢰성이다. 챗GPT에서 문제가 되는 ‘할루시네이션(환각)’이 대표적이다.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 이슈는 거짓과 진실을 적절히 섞은 가짜뉴스, 편향성, 일관성 결여 등을 포함한다.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보안상의 위험 또한 AI 기술적용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이슈다. 이런 이슈는 금융 분야 생성형 AI 알고리즘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가짜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예측을 잘못한다거나, AI 챗봇이 금융소비자에게 엉뚱한 투자 가이드를 해줄 가능성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다만 AI 활용 과정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한다면 ‘금융의 혁신’은커녕 ‘신뢰 훼손으로 인한 퇴보’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AI 모델이 내놓은 결괏값의 책임 소재와 문제 발생 시 사후 대응 프로세스 등을 미리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Profile.
글. 정초원 한국경제신문의 자매지인 <한경 머니> 기자다. 주로 경제, 금융, 투자를 주제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